‘청소년’은 가장 급격한 위상의 변화를 맞이한 세대이다. 지속된 경제성장이 본격적인 사회문화적 변화로 나타나며, 언뜻 청소년의 삶의 질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된 듯 보인다. 그러나 최근 ‘청소년기본법 전부개정법률안’ 입법예고 등 법제도적 흐름을 보면 여전히 청소년을 보는 사회적 시각과 주체로서 청소년간의 사회적 긴장은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청소년보호위원회는 대중가요에 잇따라 청소년유해매체 판정을 내리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청소년에 대한 미디어의 입장은 무엇이어야 할까? 여전히, 청소년은 어른이 판정해주는 유해매체로부터 차단되어야 할 존재일 뿐인가? 청소년은 미디어에게도 매우 중요하고 가장 뜨거운 세대이다. <미디어스>와 <문화사회연구소>는 청소년보호법의 문화적 함의를 살피고 청소년의 문화적 권리와 청보법의 관계, 그리고 표현의 자유와 청보법의 관계를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영화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극중 간통죄로 몰린 강수연이 한 마디 내뱉는다. “아, 쪽팔리게 국가보안법도 아니고 무슨 간통죄야!” 이 대사를 요즘 말로 하자면 이 정도가 되겠다. “아, 쪽팔리게 국보법도 아니고 무슨 청보법이야!”

이 말들은 대략 두 가지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첫째, 국가안보를 위협할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형사 처벌된다는 것이 쪽팔리다. 둘째, 간통죄나 청보법 따위가 존재하는 이 따위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쪽팔리다. 그렇다. 이래저래 청보법은 우리를 쪽팔리게 만든다.

청보법이 시행된 것은 1997년. 헌법재판소가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제도가 위헌이라고 판결하자, 김영삼 신보수주의 행정부는 청소년보호법이라는 트로이 목마를 만들었다. 시행되자마자 장선우 감독의 영화 <거짓말>, 이현세 작가의 만화 <천국의 신화> 등등이 줄줄이 엮여 나간 것은 익히들 기억하고 있는 바이다.

청보법이 도입되기 전에는 각종 심의위원회가 민감한 예술적 표현에 대해 음란, 저속, 불순하다는 이유로 재단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전심의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검열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꼰대적 관행은 일보후퇴하면서도 새롭게 진화했다. 검열은 이제 창작자의 외부에 있는 어떤어떤 위원회 같은 곳에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 자신이 하게 되었다. 청소년 유해물로 판정되지 않기 위해 작가 스스로가 검열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청보법에 의해 솎아내진 표현물들은 이 법이 명시하고 있는 바대로 청소년의 정서와 건강을 위협하는 유해물·매체·환경 등이 된다. 달리 말해 <거짓말>, <천국의 신화>와 같은 작품이 마약이나 환각 물질, 유해업소 출입과 고용, 청소년 학대 등과 동급이 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보법은 계륵 취급을 받으면서 한동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함께 11명의 위원들이 보건복지가족부 산하에 자리잡으면서 훨씬 강력해진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청보법 개정안에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도입, 방송프로그램 편성 간섭 등을 명문화하면서 간을 보더니, 급기야 최근에는 대중가요 가사를 문제 삼아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셧다운? 셧업!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는 청소년이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온라인게임에 접속하지 못하게끔 하는 법안이다. 사실 이 법안은 게임이라는 문화적 표현물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광범위한 사회적 묵인에 기초해 있다. 사행적이다, 폭력적이다, 소비적이다, 중독적이다 등등의 말은 게임이라는 문화적 콘텐츠에 따라다니는 편견들이다.

온라인 게임 셧다운제는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청소년들은 밤 12시가 넘어서도 온라인 게임을 계속할 것이다. 주민등록번호 도용만 하면 간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소년들이 온라인 게임에서 다소 멀어지더라도 다른 게임 세상이 반겨줄 것이다. 온라인이 아닌 환경에서도 얼마든지 패키지 게임, 비디오 콘솔 게임 등을 즐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청보위 꼰대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청보법 개정안은 청소년을 더욱 더 유해환경에 몰아세우는 셈이다.

물론 이 개정안이 문제인 이유는 여차저차한 부작용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은 그 근간에 있는 청소년 주체에 대한 반인권적 관점 때문이다. 건강권, 수면권, 학습권…. 보건복지가족부가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말이다. 정말이지 그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서 무지하다. 이 모든 것은 신체 건강한 청소년, 열심히 공부하는 청소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성년들의 욕구에 불과하다. 권리는 능동적으로 획득하는 것이지, 위로부터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것이 아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을 두고 단지 의무라고 부를 뿐이다. 연령주의적 차별의식이 아니라면 도저히 상상 불가능한 발상이다.

백번 양보해서 셧다운제가 청소년을 게임중독으로부터 구출하자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과연 그럴까. 유감이지만 ‘글쎄올시다’이다. 게임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게임중독은 10대보다도 30대나 20대에서 더 심각하다. 그런데 그들은 단지 성인이라는 이유로 단죄를 받지 않는다. 10대는 단지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억압을 받을 뿐이다.

그런데 왜 하필 청소년들이 희생양이 되어야만 하는가. ‘청소년=중독’이라는 논리는 반대급부적으로 성년의 게임중독에 관한 논의를 은폐해버린다. 성동격서(聲東擊西). 청소년을 질풍노도에 빠진 이들로 취급함으로써 정상적인 사회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동시에, 성년에게는 면죄부를 주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적 시도인 셈이다.

가장 음란한 조직, 청보위

청보위는 지금 증명할 수도 없는 문제를 가지고 싸움을 걸어오고 있다. 청소년이 유해물·매체·환경에 중독되기라도 했나? 아니면 청소년이 그런 문화적 표현물로 인해 학대라도 받았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과연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그러할까?

▲ 동방신기의 <주문-Mirotic> 뮤직비디오.
이런 의문이 채 해결되지도 않은 채, 결국 비의 <레이니즘>, 동방신기의 <주문-Mirotic>, 솔비의 <Do it, do it>, 다이나믹 듀오의 <트러스트 미>와 <메이크업 섹스> 등이 첫 먹잇감이 되었다. 대개 선정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문제가 된 부분은 <레이니즘>의 ‘매직 스틱’과 ‘바디 쉐이크’, <주문-Mirotic>의 ‘너를 가졌어’와 ‘I got you under my skin’, <Do it, do it>의 ‘니 손길이 내 가슴까지 다 가져간다’ 등이다.

이 일로 인해 다이나믹 듀오는 아예 해당곡으로는 활동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방신기는 지난 10일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궁여지책 끝에 ‘너를 가졌어’를 ‘너를 택했어’로, ‘I got you under my skin’을 ‘I got you under my sky’로 바꿔 불렀다.

80만 동방신기 팬들이 들고 일어날 일이다. 우리 오빠들에게 광우병 쇠고기를 먹이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오빠들이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게 하다니. 기본적으로 오빠들이 나를 ‘택하는 것’과 ‘가지는 것’은 천지차이다. 오빠의 ‘피부 속에서 하나가 되는 것’과 오빠의 ‘머릿속에서만 하나가 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청보법 개정안은 창작자를 억압하는 동시에 청소년-여성을 억압하고 있다.

야광 요술봉을 돌리는 비의 퍼포먼스 역시 더 이상 가사와는 조우할 수 없게 되었다. 열혈 10대와 정신나간 20~30대 여성들이 ‘떨리는 몸’으로 그의 ‘매직 스틱’과 ‘바디쉐이크’할 상상이 원천봉쇄 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청보법 개정안은 일차적으로 창작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뿐더러, 궁극적으로는 청소년 주체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이번의 검열 사례가 철저하게 연령차별적인 동시에 성차별적인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단적으로 청소년을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원더걸스의 노래와 춤사위 역시 규제받아야 마땅하다. (덜 선정적인 가사이긴 하지만) 뭔가 말해달라고 자꾸 갈구하면서 어깨를 흔들거리고, 너만 원한다면서 골반을 씰룩거린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비, 동방신기, 솔비, 다이나믹 듀오 등에 비해서 나무랄 데 없이 섹시하고 선정적이다.

그러나 성인-남성이 청소년-여성에게서 섹스어필 받는 이상한 콤플렉스만은 유독 검열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반면 청소년-여성이 성적 감수성을 느끼는 것은 철저하게 검열당한다. 왜일까. 청보위의 관점에선 청소년-여성이 성적 대상이 되는 것은 봐줄 수가 있지만, 성적 주체가 되는 것은 결코 허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히 상징적인 원조교제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청보위는 (사회적으로) 연령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 가장 선정적이고 가장 음란한 조직이다. 청보법은 청소년-여성을 사회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주체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잠시나마 청보법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경로와 현재의 문화적 의미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사실 청보법은 예나 지금이나 청소년에 대한 모종의 강력한 사회적 합의 혹은 편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암묵적으로는 성적인 편견에 기초하고 있기까지 하다. 게다가 그 효과는 살펴본 것처럼 창작자의 예술적 표현을 억압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중들이 감수성을 표현할 자유 역시도 차단해버리는 방향으로 귀결한다.

원래 콤플렉스가 많은 사람일수록 남의 말에 신경을 많이 쓰는 법이다. 그리고 찌질이 같은 사람일수록 자기한테 나쁜 말은 하지 못하게끔 한다. 알다시피 지금 정권이 딱 그러하다. 쪽팔리다. 청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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