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의 김은희 작가는 다시 한 번 장르물의 황무지 한국 드라마 시장에 의미 있는 신호를 쏘아 올리고 있다. 우선 재미있다. 드라마에 있어 재미는 다른 무엇보다 우선하는 덕목이다. 그 재미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의미를 담는 것이다. 재미와 의미. 무모한 두 토끼몰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명작으로 기억하는 모든 드라마들은 재미와 의미 모두를 만족시켰다. 시그널의 시작은 일단 완벽하다.

드라마는 그대로 그 나라의 민도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그널의 등장과 또 그것에 강하게 반응하는 현상은 잠잠하기만 한 우리 사회지만, 사람들이 뭔가 깊은 속으로부터 들끓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그널은 단순한 수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명칭도 그대로 가져온 남부연쇄살인사건. 더 정확히 말하자면 화성부녀자연쇄살인사건. 공소시효에 대한 법이 바뀌었어도 이 사건의 범인은 처벌할 방법이 없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시그널이 이 사건을 다시 과거에서 끌어온 것은 “정의와 진실을 위해 그들의 시그널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과거에 두고 온 많은 진실들을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혀 놓고 있다. 지금 당장은 그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 그리고 잊혀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드라마는 공소시효가 없다. 시그널은 박해영와 이재한의 교신처럼 어쩌면 먼 미래에 보내는 시그널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시그널의 판타지는 어쩌면 염원이라고 바꿔 써도 무방할 듯싶다.

그런 염원의 의지는 3회 박해영(이제훈)과 이재한(조진웅)의 인상적인 철창 교신에서 잘 드러났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경찰이다. 경찰은 범죄자를 잡는 것이 본능이다. 그래서 1989년으로부터 무려 27년이나 지난 2015년에 한 형사가 과거의 한 형사에게 미제사건의 범인을 잡으라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아직은 마지막 희생자를 살릴 수 있다는 것에 더 매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어쩌면 그런 진짜 형사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고장 난 무전기가 존재한다는 것보다 더 판타지에 가까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박해영 같은 형사가 아니더라도 범죄자를 놓치지 않고 잡아주기만 해도 감지덕지가 아니겠는가. 어쨌든 시그널이 그냥 수사물이 아닌 이유인 동시에 시청자의 몰입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은 이재한이 형사이면서도 피해자라는 설정이다.

그것도 그냥 피해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가 연쇄살인의 마지막 희생자라는 점이다. 그것은 자신이 직접 당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이다. 그 고통은 그대로 시청자에게는 몰입의 화력을 높이는 것이 된다. 게다가 박해영으로부터 무전을 받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이 마지막 희생자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자신은 철창에 갇혀 있다.

철창에 갇혀 있으니 박해영이 하는 말을 들을 수는 있어도 송신 버튼을 누를 수 없으니 말을 전달할 수는 없다. 안타까움을 최고조로 만들어버린 대단히 영리한 설정이었다. 박해영이 하는 말에 이재한은 육두문자를 쓰며 반발하지만 실제로는 그 말을 하나도 허투루 흘리지 않고 듣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묘사였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결국 이재한은 고전적인 속임수를 써서 철창을 탈출했다. 만약에 그 마지막 희생자가 이재한이 짝사랑하는 여성이 아니었다면, 또한 일방적으로 수신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듣고 말하기가 자유로웠다면 이런 긴박감은 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과연 박해영이 그토록 간절하게 전하려 했던 희생자를 구하는 문제만 남았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4회가 방영될 시간까지가 정말 길게 만 느껴질 수밖에는 없다.

과거와의 무전교신이 된다는 판타지의 핵심은 과거의 재구성이다. 그 재구성은 살인을 재구성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수사물에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판타지를 모티프로 설정한 것은 범인을 잡는 것보다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둘 수 있다. 그렇다면 이재한은 범인은 놓쳐도 사랑하는 여인을 연쇄살인의 희생자 목록에서 지울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결과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과연 박해영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화이트보드의 희생자 리스트는 또 한 번 바뀔 것인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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