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추적 60분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왜 중학교 2학년 여학생과 성관계를 가진 남성이 처벌을 받지 않는가였다. 그러나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았다. 나는 대한민국을 너무 높게 평가하고 살았던 것이다. 미드를 즐겨 보는 나는 미국에서 미성년자와의 성관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범죄로 인식되는지를 알고 있어서 당연히 나의 자랑스러운 나라 대한민국도 그 정도 수준은 될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30대, 40대의 남자가 14살의 어린아이,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과 성관계를 해도 강제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범죄가 아니었다. 교복을 입고 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법적용어로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쉽게 말해서 미성년자 성폭행죄가 성립하는 나이는 만 13세까지다. 그 나이를 하루만 넘겨도 강제성이 없는 한 남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술담배는 해롭다며 18세 미만에게 팔지도 못하게 하는 나라치고 성에 대해서 너무 관대한 현실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상한 일이 있었다. 이 아이가 하룻밤 사라진 날의 행적이 수상했다. 아이의 아버지가 실종신고를 했던 날 이 아이는 아파트 주차장, 빈 공사장 등에서 세 명의 성인남성과 함께 보냈다.

▲ KBS2 <추적 60분>

도대체 이 아이는 왜 세 명의 어른들을 잇달아 만난 것일까? 뭔가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 의심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 뿐이었다. 이 아이는 2차 성징이 시작되던 때에 2년이란 기간 동안 이모부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해왔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물론 이모부는 나중에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아이에게는 더 큰 폭력의 상처가 남았다.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는가.

현재 15세의 나이에 고작해야 8살에서 10살의 지적능력을 가진 장애를 안게 된 것이다. 지적장애. 그것이 하루에 세 명의 성인남자와 만나서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갖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한 정신과 의사는 어릴 적 겪은 지속적인 성폭력의 정신적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사한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은 스톡홀름 증후군과 같은 증상을 갖기 쉽다고 했다.

어리고 지적장애도 갖고 있는 아이는 어른들의 집요한 요구를 거절하는 대처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 속에서 못된 어른들이 자신에게 하는 짓에 대한 판단력까지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아이는 결국 부모에 의해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들어가게 됐다. 이 아이를 짓밟은 13명의 어른들은 법의 바깥에서 또 다른 어린 희생자를 찾아 헤맬 것이다. 뭔가 잘못 되도 너무 잘못된 현실이다.

▲ KBS2 <추적 60분>

지난해 27살이나 어린 여중생을 성폭행하고 임신까지 시켰다가 기소된 연예기획사 대표가 무죄로 풀려난 일이 있었다. 1, 2심 재판에서 9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환송되어 사회에 큰 충격을 준 바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결정적으로 미성년자 의제강간의 적용연령이 너무 낮은 이유였다. 만 14세면 중학교 2학년 정도다. 누가 생각해도 그냥 어린아이다. 그 아이에게 자신의 성 결정권이 있다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중학생과 성관계를 하려는 성인남자는 치밀하다. 추적60분에도 나왔지만 아이와의 대화를 휴대폰으로 녹취했었다. 그 녹취로 혐의가 없다는 판정을 받은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쨌든 어른들은 영리하게도 이 부실하기 짝이 없는 법을 농락할 방법을 마련할 줄 안다는 것이다. 법과 범죄자가 마치 공범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번 사건에 대한 분석을 한 경기대 범죄심리학 이수정 교수의 말이 이 부실하고 부조리한 사회에 던지는 일갈은 참 무겁다. “법이 없다고 범죄가 아니냐. 범죄인 거죠. 성폭력인 거죠. 이 피해자가, 이 어린아이가 당한 건 다 성폭력이에요. 법적으로 그것을 처벌하지 못할 뿐, 법이 없어서, 법이 부족해서 처벌을 못할 뿐 성폭력이에요. 그것을 제대로 처벌할 수 있는 국가가 선진국인 거지 처벌할 수 없는 국가는 선진국이라 보기 어렵죠”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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