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이 인간이라는데 오늘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를 통해 그 인간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정치다. 정몽주는 그 정치로 인해 평생 사제관계였던, 무엇보다 사대부로서 서로의 신념이 같다고 믿는 동지를 쳐냈다. 다른 것도 아닌, 정도전의 외할머니가 노비의 딸이었을지 모른다는 소문을 들춰낸 것이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다.

정도전은 이미 정몽주의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있었다. 비록 스스로 과격한 개혁으로 권문세족은 물론 왕족과 사찰의 미움을 사고 있었지만 정도전은 내심 탄핵당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몽주가 준비한 탄핵사유를 듣고는 정도전은 무너지듯이 눈물을 쏟아냈다. 어떤 심정이었을까? 당황스럽고 분노도 치밀었겠지만, 무엇보다 슬펐을 것이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가장 믿었고, 자신을 탄핵할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설득해야 할 정도로 정몽주에게 깊은 신뢰를 가졌던 정도전은 그 순간이 너무도 아팠을 것이다. 그리고 정치란 괴물에 대해 공포와 분노를 또 느꼈을 것이다. 아무 말 없이 정몽주를 바라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는 정도전의 얼굴에는 아주 깊은 절망이 비쳤다. 허무했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 허무를 모를 수는 없다.

정도전은 정몽주에게 감정을 가질 여력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맥이 풀린 채 화도 내지 못하고 체념한 정도전과 달리 그 상황을 극도의 분노로 받아들이는 인물이 있었다. 아니 이를 부득부득 가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훗날 정몽주를 죽이라고 지시한 인물. 아니 죽인 인물로 더 기억되는 이방원이었다.

그동안에도 이방원은 정몽주를 조선창업의 걸림돌로 여기고 있었지만 워낙 정몽주를 향한 정도전의 마음이 깊어 구체적인 살의까지는 갖지 않았다. 그저 경계하고, 의심을 거두지 않는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을 뿐이다. 그러나 정도전을 아주 비열한 방법으로 쳐낸 정몽주를 향해 이를 갈며 분노한 것은 거의 살의라고 읽어야 한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물론 정몽주의 선죽교 피살은 단순히 조선창업에 대한 하여가와 단심가의 화답의 결과만은 아니다. 평생 동안 믿고 의지하던 정도전을 쳐내기 위해서 차마 유학자로서는 해선 안 될 방법까지 동원한 정몽주라면, 고려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거기에 이성계 살해 모의는 당연히 있었을 것이고, 이차저차 이방원은 결국 정몽주를 죽여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정도전의 탄핵에 이를 가는 이방원을 보면서 마치 피리부는 사나이에게 홀리듯이 모두가 선죽교의 비극을 떠올렸다. 작가도 그것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이심전심 하나의 연상에 도달했다면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 게다가 그 순간까지 이방원은 정몽주 이전에 재상총재제를 구상하는 정도전을 먼저 쳐낼 궁리를 하던 이방원이 아니었던가.

그런 이방원의 생각대로라면 정도전의 탄핵은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방원은 왜 정몽주에게 분노했을까? 정확한 이유는 다음 회를 봐야 알겠지만 근본적으로 이방원의 성품에 기인한 감정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방원은 칼의 운명이다. 그렇지만 무지하지는 않다. 정도전은 그런 이방원을 폭두라 부르며 칼의 기운을 억눌러온 셈이다. 그만큼 이방원이 생각하는 정도전은 죽일 생각을 품고도 “여전히 저 사내가 좋다”라고 토로할 정도로 최고의 인물인 까닭이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그러니까 정도전은 이방원이 넘어야 할 산이지 결코 정몽주나 다른 누구에 의해서 다쳐서는 안 될 존재인 것이다. 묘한 애증과 집착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육룡이 나르샤> 속에서의 두 사람은 그렇다. 그런 정도전을 그것도 치졸한 수단으로 쳐낸 정몽주에게 이방원이 살기를 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포장을 하든 정몽주의 정도전 탄핵은 칼방원의 본능을 깨운 계기가 되고 말았다.

역사적으로도 과전법이 시행된 다음 해에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피살되었으니 정몽주의 정도전 탄핵은 이제 조선창업의 더 거친 정치적 격랑의 물꼬를 연 셈이다. 정도전, 이방원 그리고 정몽주 세 인물의 정치적 전쟁이 본격화된다는 것이다. 점입가경이란 바로 이럴 때 써야 제 격일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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