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보다도 2008년은 미디어 정책이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해이다. 새 정권은 PD수첩 광우병 보도 관련 검찰 수사, KBS 정연주 사장 해임, 방송법의 대기업 진출 확대 시행령 통과, YTN 사장 임명과 기자 해고 등 셀 수 없는 이슈들을 터뜨려 촛불 시민들을 모이게 했고, 새롭게 구성된 18대 국회는 쟁점마다 여야의 격돌을 이어갔다. 이에 미디어스는 미디어 정책이슈의 최전선(?)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위원들을 만나 ‘18대 국회 문방위의 첫 해’를 돌아보기로 했다. 올해 여의도는 유난히 연말 분위기를 찾기 어려운 ‘전쟁’국면이라 인터뷰 섭외는 험난했으며, 다음 인터뷰 대상자와 약속을 잡을 수 있을 지도 불투명한 상황임을 미리 밝혀둔다. 편집자

이맘 때 쯤이면 ‘파란만장’ 혹은 ‘다사다난’을 꺼내며 송년사를 하게 마련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위원 중, 2008년 가장 격세지감을 느끼는 사람을 꼽아보면 누구일까.

일단 떠오르는 사람은, 지난 2월 MBC 사장 퇴임 후 4월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자리바꿈한 최문순 의원이다. 전국언론노조 초대 위원장 출신의 그에게 출마 당시 ‘폴리널리스트’라는 비판도 높았다.

안팎의 우려에도 “법과 제도를 통한 언론운동을 하겠다”며 국회의원이 된 그는 올해 유난히 촛불 집회에 자주 ‘출몰’해 의정 활동은 뒷전이 아닐까 싶었지만,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이 꼽은 국감 우수 의원으로 뽑히는 등 지속적인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쟁터와 같던 한나라당의 한미FTA 비준안 단독 상정 다음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최문순 의원 사무실을 찾았다. 당내 긴급 회의를 마치고 막 들어서는 최 의원은 기자출신다운 꼼꼼함으로 종이와 펜을 준비해 자리에 앉았다.

- 국회 사정은 차분히 한 해를 돌아보기에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연말을 맞이하여 국회 의정활동 첫 해를 돌이켜보자면 어떤가? 언론에서는 국감 스타 의원으로 칭하기도 했는데.
= 연말 분위기라든가 초선 첫 해 소감이라든가 국감 스타의원, 이런 것들이 다 무색하고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저 “한 번도 못 이겼다” 이것만 하나 남았다. 거의 1년 동안 형편없이 언론계의 자부심이 손상된 한 해였던 것 같다. 요즘 각종 언론관련 시상식 등 연말행사가 많은데, 행사도 미안하고 창피해서 잘 못 가겠다. 어제 YTN 해직기자 후원식에 가서도 뒤꼭지가 근질근질해서 혼났다. 이제 한나라당이 언론장악 7대 악법으로 언론계를 더욱 형편없이 만들어버리려고 하는데, 모든 걸 다 걸어서라도 막아내겠다.

- 문방위 활동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 번도 못 이겼다’인가.
= 가장 충격적인 일은 ‘KBS에 경찰이 투입돼서 의사결정구조를 바꾼 것’이었다. 군사정권 때에도 경찰이 방송사에 진입한 사례는 없었고 용납도 안됐다. 그러고도 KBS 새 사장은 아무 일 없는 듯 하고…. 이는 언론계와 문방위로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그 이후 민영 미디어렙 문제 등을 볼 때 감사원, 사법부, 법원까지 모든 독립기관이 독립성을 상실했다. 민주주의가 완전히 후퇴한 것이다.

- 최근 예산안, 한미FTA 비준 상정 등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합의 파기와 강행 등의 과정에 대해 ‘민주당이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높은데.
= 민주당은 ‘나라 어려운 데 협조 잘 안 해준다’와 ‘나약하다’는 이중의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여당과 심하게 대립해도 혼나고, 끌려가도 혼나는 딜레마에 있다. 결국 지금은 ‘민주주의와 국민’의 편에 확실하게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지율에 개의치 않고, 민주주의의 대원칙에 따라 뚜벅뚜벅 걷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초선 의원 입장에서 욕 먹는 민주당 활동에 대해 많이 답답할 것 같다.
= 돌파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안타깝고, 미안하고, 창피하다. KBS 사장 해임, PD수첩 사태, YTN 사장 임명과 기자 해고, 방송법 시행령 개정(대기업 방송진출 확대) 등 엄청난 문제들이 계속 터졌는데, 한 번도 못 이겼다. 지역신문발전기금도 예산처리에서 되치기 당했다. 너무 죄송하고 자괴감도 많이 가지고 있다.

- 민주당이 ‘한 번도 못 이긴’ 원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여대야소 구도 때문인가?
= 의석수 때문은 아니고, 한나라당에 대해 ‘설마 설마’하면서 선의를 가지고 평가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그리고 민주당이 ‘잃어버린 10년’ 프레임에 걸려서 자신감이 부족한 것 같다. 지난 대선과 총선 때 국민들에게 혹독한 심판을 받아서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상대에 대한 재평가도 하고, 우리 자신에 대한 재평가도 해야 한다.

- ‘설마 설마 했다’는 것은, 민주당의 안이한 태도를 지적하는 것인가.
= 민주주의 정부 10년을 지내면서 ‘정권을 내놓더라도 제도화된 민주주의가 다시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다’는 생각들이 정치권과 우리 국민들 사이에 꽤 넓게 퍼져있었던 같다. KBS 사장의 경우도 민주적 가치가 확립된 제도였다. 그래서 설마설마 했는데, 실제로 경찰이 언론사에 들어가서 기자들을 끌어낸다든지, 이런 일들이 ‘어, 어’ 하는 사이에 터졌다. 이제는 저쪽 실체가 ‘민주주의를 깨는 사람들’로 명확하게 드러났으니까, 우리도 재무장을 해서 다시 바꿔내야 한다.

- 한나라당이 예산안에 이어 법안 강행처리 방침이라 민주당의 보이콧이 계속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낸 미디어 관련 법안 7개에 대해 민주당은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언론장악 7대 악법’이라며 실력 저지까지 불사하고 있는데. 왜 ‘악법’이라고 보는지.
= 법은 7개지만 내용은 3가지인데 첫째는, 방송의 대기업과 외국자본이 방송을 소유할 수 있게 하고 둘째, 신문과 방송을 겸영할 수 있게 하며 셋째, 사이버모욕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케이블 등에 진출해온 대기업에게 보도채널과 지상파TV까지 열겠다는 것인데, 보도는 돈벌이하는 영역이 아니다. 신문·방송 겸영 역시도 현재 정치적으로 큰 신문사들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형평성으로도 안 맞는다. 사이버 모욕죄는 인터넷에 재갈 물리려는 의도다. 판례를 보면, 1년에 사이버모욕에 의한 판례가 1건 정도다. 그런데 피해자가 고발하지 않더라도 검찰·경찰이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려고 한다. 이 모두는 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악법’이다.

- 국회는, 토론을 거치는 협상의 공간이다. 이 때문에 상정조차 막는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상당한데.
= 국회라는 공간이 정상적으로 협상과 대화를 통해 논의될 수 있다면, 충분히 민주당의 입장을 담은 법안으로 토론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는 한나라당은 대화 의지가 없다. 한나라당은 예산안도 그랬고, 한미FTA 비준안 상정도 그랬고, 합의를 뒤엎고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한 채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있다. 홍준표 대표 등이 오는 23일까지 법안을 다 처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정상적인 협상이 불가능하다.

- ‘한나라당이 대화 의지가 없다’는 것은 문방위의 경우에도 해당되는지.
= 한나라당이 내놓은 법안을 보면, 신문·방송 소유 형태를 변형하는 내용이다. 어느나라든 이런 경우엔 공청회, 토론회 등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친 연구보고서 등을 첨부하게 되어 있다. 언론계 전체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충실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최근 미국의 미디어 소유권법도 이런 방식으로, ‘방송 소유구조를 바꿀 때 공공성이나 소비자 권리가 훼손되는가, 지역성·지역언론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등이 고려대상으로 돼있다. 그런데 정병국 의원이 이끄는 미디어특위라는 사적조직 같은 곳에서 절차를 무시한 채 법안을 발표했다. 미디어구조 전반에 관한 내용인데, 적어도 전문 상임위인 문방위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하지 않은가? 이건 비정상적이다.

- 정병국 의원 등 한나라당에서는 신·방 겸영 등이 세계적 추세라며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 신·방 겸영이 세계적 추세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일부 허용은 돼 있지만, 허용 기준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 미국의 경우 단적인 예를 들면, 같은 전파 구역 내에서는 겸영이 안된다. 이를테면 LA에서 신문사가 방송사를 가지면 안된다는 말이다. 신·방 겸영을 강력히 반대하는 사람이 바로 미국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다. 그는 미디어 소유 집중을 강력히 반대해, 미디어 소유권법 개정 작업에 대한 FCC 예산 지원 중단 방침을 밝혀왔다.
대기업이 방송진출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역시 거짓말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지상파와 보도채널을 제외하고 다 허용했다.
그런데 내가 주장하는 ‘신·방 겸영이나 대기업재벌의 방송진출 허용은 세계적 추세도 아니고 허용하면 안된다’는 얘기는 설명이 복잡하니까 아무리 말을 해도 잘 확산이 안 되는 것 같다.

- 한나라당 미디어특위(위원장 정병국 의원)는 신문·방송 겸영 허용을 포함하는 7개 미디어 관련법 개정에 이어 ‘공영방송법’도 조만간 내놓을 것이라던데.
= 지난 17대 국가기간방송법안을 이름만 바꿔서 좀더 구체화한 거다. 핵심은, KBS는 국가권력에 종속시키고 MBC는 시장권력에 종속시키는 2가지 방향이다. 수신료 인상하고 광고비율을 대폭 낮추겠다는 것인데, 내가 보기에는 실현 불가능하고 너무 엉성한 법이다. 광고 의존율이 80%에 육박한다. KBS1TV, KBS2TV, EBS, MBC 등 4개 채널을 대상으로 하면 지금 2500원에서 1만원 이상으로 더 올려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상황에서 국민들한테 방송채널 4개를 국민돈으로 먹여살리는 게 가능하겠나. 그리고 KBS 예산권을 국회로 가져오는 것과 같은 내용은 KBS를 다시 국영방송으로 환원시키겠다는 것인데, 시대 흐름에도 맞지 않다. 절대 안된다.

- 수신료 인상 문제에 대한 입장은?
= 물론 올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부담을 적게 하는 선에서 광고 문제와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방송사 구조조정이나 예산권 등과 연결지어서는 안된다. 수신료는 단순한 문제다. 돈 없으면 싼 프로그램 만든다. 한류시대에 걸맞는 고품질 프로그램이 나올 수 없다.

- MBC를 놓고 공영이냐 민영이냐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 MBC의 현재 구조와 방송문화진흥회 설치 등은 이미 87년 체제의 성과물로 나온 민주적 사회적 합의이다. 공영이냐 민영이냐는 이분법은 아주 옛날에 사라진 분류법이고, 현재 한나라당의 MBC 구조 개편 주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정치공세다.

- 민주당의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 한나라당이 대화 의지가 있다면 우리도 법안을 내놓아 논의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대안을 내놓고 협상에 들어가는 순간, 한나라당은 무장해제에 들어가는 식을 반복해왔다. 그래서 일단 7대 법안 상정부터 막겠다는 것이다. 오늘(19일) 아침 의원총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통과시키라고 지시내린 62개 법안 중 언론장악 7대 악법을 최우선으로 막는 데 당력을 총집중하기로 결정했다.

- 언론에 비추는 국회의원은 ‘쌈질’하는 이미지인데, 이에 대해 국민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 언론이라는 게 단순히 YTN 사장 문제 등 남의 회사 문제만이 아니다. 이게 나의 취직자리와 나의 노후보장 등에 직접 연결된 ‘내 문제’라고 봐주시면 좋겠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언론 다수는 ‘규제 완화, 기업의 효율성, 단기 이익 등의 단어들로 신자유주의를 유포하며, 공기업 효율성이 낮으니까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기사를 쏟아낸다. 그런 언론보도가 취직자리를 줄어들게 하는 근거가 된다. 결국 언론이슈가 사회전반을 대표하기 때문에, ‘국회의원은 늘상 쌈박질한다’는 비판에도 맹렬히 여당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특히 법의 경우는 더욱 중요하다. KBS 사장의 경우 정권이 바뀌면 다시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금 한나라당이 진행하는 법안들은 한번 무너지면 그 구조를 다시 바꾸기가 어렵다. 사이버모욕죄, 신·방 겸영 등은 국민들에게 항구적으로 영향을 미치므로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다. 이것 오랫동안 민주화투쟁을 통해 얻은 결과물이라 우리가 지켜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 언론관련 현안들은 연말을 지나 내년까지 계속될 것 같은데, 새해 계획이나 소망이 있는지.
= 언론이란 사회의 중요한 정신적 인프라이고, 공공재다. 우리나라 언론 전반의 특징은 영세성이다. 시장 크기가 작다 보니 과잉경쟁에 몰린다. 이러다 보니 효율성만 강조해서 기자들 임금수준이 낮아지고, 결국 국가의 정신적 인프라가 나빠지는 것이다. 따라서 언론에 대해 공적자금을 투입해 공공성을 강화시켜야 한다. 이런 것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지면 좋겠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과잉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 정부와 여당이 부디 우리나라 언론에게 당면한 문제를 정확하게 직시하고 진정성을 가지길 바란다. 이에 대해 여야와 시민단체가 함께 논의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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