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꽤 오래 전부터 불금 말고도 또 하나의 뜨거운 것이 있었다. 바로 응답하라 시리즈와 나영석의 예능. 그 중에서도 응팔의 열기는 가장 뜨거웠다. 그 응팔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응팔을 기대하며 티비를 켰을 것이다. 그렇지만 응팔은 이미 끝났고, 그 시간은 응팔과 전혀 다른 드라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응팔이 아니어서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김혜수, 조진웅, 이제훈 그리고 이제는 한국의 형사물 전문작가로 확고히 자리잡은 김은희 작가, 미생의 연출가 김원석. 어찌 보면 응팔보다 훨씬 더 화려한 진용의 드라마가 시작됐다. 장르물이 성공하기가 대단히 힘들다는 한국에서도 꽤나 힘찬 행보를 보여 왔던 김은희 작가와 얼마 전 <차이나타운>에서 강렬한 연기를 보였던 김혜수의 의기투합이 무엇보다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 tvN 새 금토드라마 <시그널>

<싸인>, <유령> 그리고 <쓰리 데이즈>까지 전에 없던 장르물의 시청률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를 다시 2년 만에 만난다는 것은 분명 장르물 마니아들에게는 응팔 이상의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다가 김혜수의 형사 연기라면 거의 흥분할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대와 흥분에 대한 응답은 아주 충분했다.

<시그널> 첫 회는 공소시효를 꼭 채울 때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초등학생 납치,살인사건의 목격자 이제훈과 이제훈이 무전으로 대화하는 과거 속의 형사 조진웅의 옛 연인이자 강력팀 형사 김혜수의 만남이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공소시효를 불과 몇 분 남겨두고 미제사건을 해결한 김혜수와 이제훈이 경찰조직으로부터 미제사건 전담팀을 꾸리게 된 후부터가 진짜 <시그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첫 회가 싱거웠을 거라 지레 짐작한다면 오산이다. 세상에 어떤 작가도 첫 회를 허투루 쓰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영화의 시작하고 5분과 드라마의 첫 회는 성패의 결정짓게 된다. 당연히 <시그널> 첫 회는 강렬했다. 과거 사건의 목격자에서 경찰에 냉소하는 경찰이 된 프로파일러 이제훈에게 맞춰져 있기는 했지만 김혜수와 조진웅은 적은 분량에도 조용히 무거운 존재감을 드러냈다.

▲ tvN 새 금토드라마 <시그널>

무엇보다 김혜수의 너무도 자연스러운 형사 연기에 주목하게 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형사물에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여형사 역할에는 피할 수 없는 클리셰가 존재한다. 그것이 강력반 형사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그 배우의 연기를 한정짓는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김혜수는 역시 달랐다.

김혜수는 그런 여형사의 전형에는 관심이 없다는 투로 자신의 차수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애써 터프하려고 연기하지 않아도 뭔가 본연으로부터 풍기는 터프함. 자연스럽다는 말보다는 자유로운 모습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연기였다. 의도와 인위로부터 자유로운 연기, 그것이 <시그널>의 형사 김혜수의 연기였다. 그래서 김혜수는 다른 여배우들과 달리 여형사가 아니라 그냥 형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시그널>은 그런 김혜수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보상이 될 만한 드라마라고 확고하게 말할 수 있다.

▲ tvN 새 금토드라마 <시그널>

어쨌든 그 결과 응팔 없는 금요일의 금단현상은 거뜬히 극복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그널> 첫 회를 성공적으로 장식한 중요한 인물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바로 진범의 존재. 이 진범은 짧게 그려졌지만 대단히 강한 인상으로 <시그널> 첫 회의 장르적 개성을 완성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이 배우의 이름은 오연아. 영화 <소수의견>에서 주목받았던 그 배우다. 짧고 굵은 역할을 해내는 조용한 카리스마를 이번에도 발휘해서 공소시효 20분을 남겨두고 체포당할 때의 야릇한 표정으로 시청자에게 오싹한 충격을 주었다.

<시그널>은 과거의 형사 조진웅과 미래의 프로파일러 이제훈이 무전으로 교신하며 미제사건을 풀어간다는 판타지를 갖고 있다. 작년 개봉했던 영화 <더 폰>과 모티브가 매우 비슷하다. 영화는 이 흥미로운 모티브를 살리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 실패를 이미 목격했기 때문에 <시그널>이 이 판타지를 현실감 있게 다룰 학습효과가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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