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가 언론사들의 반대와 방통위 내부 비판에도 방송평가 규칙을 개정했다. 방송사 뉴스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의 공정성·객관성 심의 결과와 선거방송 심의결과를 방송평가 내 감점으로 반영하는 것을 현행에 비해 2배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새로운 규칙은 2월1일자 방송분부터 적용된다. 논의 과정에서 김재홍 부위원장은 “방통심의위의 심의가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만큼 이를 근거로 방송뉴스에 매기는 ‘감점’을 강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의결을 보이콧했으나 최성준 위원장은 의결을 강행했다.

지난해 10월 방통위는 방송평가 규칙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일부 종합편성채널과 지상파 방송의 ‘불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세월호 참사 당시 ‘오보’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방통위가 직접 나선 것이다. 방통위는 이를 위해 공정성 지수 개발을 위한 연구과제를 발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방통위 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산하 법정위원회인 방송평가위원회를 건너뛰고, 연구과제 결과가 나오기 전에 문제의 내용이 포함된 방송평가 규칙 개정안에 대한 행정예고를 강행했다. 방통위는 방송평가개선자문단을 구성했으나 ‘상견례’만 진행한 채 행정예고를 밀어붙였다.

핵심은 ‘공정심 심의에 따른 감점 강화’다. 방통위가 행정예고한 규칙 개정안은 ‘방송심의 관련 제규정 준수 여부 평가’ 감점을 전체적으로 1.5배 강화하고, 방송사가 공정성·객관성·재난방송·선거방송 심의기준을 위반할 경우 감점을 2배로 강화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방통위는 홈쇼핑사업자의 허위·과장광고에 대해서도 감점을 2배로 강화하기로 했다. 방통위는 또한 언론중재위원회가 정정보도 결정할 경우 6점을 감점하고 법원이 정정보도 판결을 내리거나 허위보도에 의한 명예훼손 판결이 날 경우 8점을 감점하는 ‘오보방지 노력 평가’ 항목도 신설했다.

최성준 위원장은 애초 지난해 의결하려 했으나, 허원제 상임위원이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퇴하면서 의결을 미뤘다. 이후 1월 김석진 상임위원이 허 전 상임위원의 ‘보궐’로 방통위에 들어오면서 방통위는 22일 방송평가 규칙 개정안을 의결안건으로 상정했다. 방통위가 지상파방송사업자, 전국언론노동조합, 종합편성채널 등의 의견수렴을 거쳐 22일 전체회의에서 내놓은 ‘수정안’은 애초 문제가 된 내용이 모두 포함돼 있다. 다만 수정안에는 ‘동일한 문제를 3회 이상 반복할 경우 감점한다’는 단서조항과 함께 ‘방송사 자율규제를 위한 제도에 대해 가점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지상파, 한국방송협회, 종합편성채널은 물론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반대 의견을 냈다. 정부여당과 야당 몫이 각각 6대 3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방송의 공정성 심의를 강화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위축한다는 게 반대 이유다. 방송평가 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방송사가 권력에 비판적이거나 의혹을 제기하는 리포트나 인터뷰를 내보내고 방통심의위가 이를 심의, 제재할 경우 방송평가와 재허가에 감점으로 반영되는 폭이 늘어나게 된다. 방송사 경영진과 데스크의 검열이 강화되고, 현장기자들이 자기검열과 위축효과가 강화될 것이라는 게 현장 반응이다.

김재홍 부위원장은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의결을 보이콧하고 퇴장했다. 그는 “방통위 사무처가 방송평가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고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이 다수결을 통해 의결안건에 상정하는 등 절차적 정당성이 없다”며 “연구용역을 수행한 한국방송학회가 공정성·객관성·선거방송 감점을 2배로 강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불공정 심의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축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재홍 부위원장은 이어 “오보, 막말, 선정 보도에 대해서는 (감점을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것에) 이견이 없다. 그러나 개정안 중 독소사항이 있다.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 그리고 선거보도에 대한 심의 결과를 벌점 2배로 강화한다는 것은 위헌적이고 민주주의의 가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방통위가 방통심의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면 안 되지만, 지금 (비판언론에 대한 표적심의와 일부 종편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는) 방통심의위를 폐지하거나 축소하고, 방송사의 자율심의로 전환하는 방안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근 방통심의위 장낙인 위원은 종합편성채널의 ‘막말’에 대해 낮은 수준의 제재를 결정하려는 것에 반발해 방송심의소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기주 상임위원은 “부위원장의 주장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헌법적 가치’를 이야기하는데 납득할 수 없다. (오늘 올라온 수정안은) 사업자들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대폭 수용했다고 생각한다”며 ‘다수결’을 주장했다. 그는 “방통심의위 구성과 운영에 대해 보는 시각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인정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해서 방통위에서 그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석진 상임위원은 되레 사업자의 의견을 수렴한 것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수정안에 추가된 ‘3회 반복’ 단서조항과 ‘가점’ 조항 때문에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선거방송을 지휘해봤다. 종편PP, 보도PP 등장으로 시청률을 무한경쟁한다. 자율규제는 절대 안 된다. 정부가 엄격한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기가 부적절하다고 하지만, 선거 앞두고 틀을 만들어줘야 한다. 방송사가 오보를 안 하고 편파방송을 안 하면 된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예단하지 말자”고 말했다.

최성준 위원장은 ‘의견수렴과 내부논의 결과가 반영된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으로 공정성 심의 결과를 2배 반영한다는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방송평가 규칙은 월별로 끊어서 적용할 수 있다.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다수결로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고삼석 상임위원 질문에 “방송평가 규칙은 원래 지난해 연말까지 개정해서 올해 1월1일부터 시행되는 방송에 대해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방통위 3기 정책과제와 2015년 업무계회에 포함돼 있기도 하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정책과제라서 수행해야 한다면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편, 종합편성채널 정책에 대한 종합 검토도 이루어져야 한다. 왜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방송평가 규칙을 개정하려고 하는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등) 다른 기관이 언론 자유를 위협할 수 있는 조치들을 하고 있고 여기에 방통위가 선거를 앞두고 방송평가 규칙 개정을 급하게 정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는 시기에 상임위원들의 반대에도 강행 처리하려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고삼석 위원은 “방송통심심의위원회가 왜 고무줄잣대, 이중잣대, 정치심의라는 비판을 받는지 추세를 살펴봤고, 실제 그런 추세가 관찰된다. 선진국에서는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제도가 거의 없다. 자율심의가 트렌드다. 인터넷 상 내용에 대해서도 반국가적이고 반인륜적인 것 외에 심의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심의는 이런 추세에 역행한다”며 “다른 안건에 비해 반대와 이견이 많다. 숙려할 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성준 위원장, 이기주 김석진 상임위원 등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은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의결을 강행했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반대했다. 결국 방송평가 규칙 개정은 찬반 3대 1로 의결됐다.

다음은 방송평가 규칙 개정 관련 방통위 보도자료 전문

방송평가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안) 의결

- 방송의 공적책임, 프로그램 품격 제고 등 방송서비스 질적 향상 유도 -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는 1월 22일 전체회의에서 「방송평가에 관한 규칙」일부개정안을 의결하였다.

이번 평가규칙 개정은 방송의 공적책임 제고, 막말·편파방송 지양을 통한 프로그램 품격 향상, 사회적 기여 프로그램 편성확대 등 방송법상의 공정성·공익성 가치 구현과 방송편성의 다양성·균형성 제고를 위한 사업자의 자발적인 노력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방송사업자의 막말·편파방송 등에 대한 문제제기는 국회·시민단체로부터 지속적으로 있어 왔으며, 개정안은 사업자 의견수렴, 행정예고(‘15.10.23. ~ ’15.11.16.) 등의 절차를 거쳐 마련되었다.

주요 개정 내용은 첫째, 시청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적은 운영 영역의 배점을 축소하여 방송의 품격을 제고하고, 편성의 다양성, 균형성을 강화하기 위한 내용 및 편성 영역의 배점을 높였다. 기존에 모든 매체에 공통으로 적용되던 운영 영역의 평가항목(4→3개)과 평가척도(12→8개)를 간소화 하였다. (붙임1 참조)

둘째, 막말·편파 방송 지양을 통한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과 공적책임 제고를 유도하기 위해 내용 영역의 ‘방송심의 관련 제규정 준수 여부 평가’와 관련하여, 동일 유형의 심의규정을 반복적으로 위반하는 경우에 감점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 방송사업자가 공정성·객관성·재난방송·선거방송 심의규정을 반복적으로 위반하는 경우 감점수준을 2배로 강화하고, 기타의 경우에는 1.5배로 강화.

- 홈쇼핑은 과장·허위광고 관련 심의규정 반복적 위반 시 감점수준을 2배로 강화하고 기타의 경우 1.5배 강화.

방송통신위원회는 제3기 정책과제(‘14.8.4.) 및 15년 업무계획(’15.1.27.)에서 방송의 공정성 관련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 방송평가에서 감점 수준을 강화하겠다는 정책방향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셋째, 매체별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및 위성방송의 ‘채널 구성 다양성 평가’와 홈쇼핑사업자의 ‘한국소비자원 민원평가’를 신설하였다.

마지막으로 “오보방지 노력” 평가항목 신설, 외주 관련 표준계약서 등 상생협력 노력을 평가하기 위한 “프로그램 등의 제작·유통상 공정거래 질서 확립 노력” 등 평가척도를 보완하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번 규칙 개정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막말·편파 방송의 감소를 통한 방송프로그램 품격향상, 방송사업자들의 오보방지 노력을 촉구하고 방송서비스의 질적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개정된 방송평가규칙은 2016년도 2월 1일 방송실적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공통 운영영역 개선안과 매체별 세부 배점표 (자료=방송통신위원회.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