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은 고민했다. 권문세족과 무명의 방해로 양전(토지조사)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이대로 토지개혁을 한다는 것은 너무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러는 동안 권력에서 밀려난 권문세족들은 저자에서 백성들을 선동하며 이성계와 정도전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것을 해결한 것은 선동의 정치가 정도전의 불쇼였다.

분이의 연통조직을 동원해 정도전은 관아의 토지장부를 모두 모아 거리에 쌓았다. 딱 보아도 무엇을 할지 감이 잡히는 상황. 정도전은 백성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토했다. “정치는 무엇인가. 결국은 분배다. 누구에게 빼앗아 누구를 위해 쓰는가” 고려가 아니라 2016년에도 통하는 말이었다. 평생 가져보지 못한 백성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계민수전에 미련을 갖기보다는 당장 눈앞에서 토지대장이 불타고, 세금이 십 분에 일로 줄어든다는 정도전의 말에 환호했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정치란 것은 결국 실질적 효과보다 백성들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힘이 있는 한 마디의 말이 더 강력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 장면이었다.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의 실언과 망언이 난무하는 속에서 정도전의 연설은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정도전을 보며 이방원은 울상을 지었다. 이방원은 혼자 중얼거린다. ‘난 저 사내가 여전히 좋다. 빌어먹을.’

진짜 아닌 게 아니라 빌어먹을이다. 이 독백은 결국 정도전과의 미래에 대한 잔인한 복선일 것이니 말이다. 정도전과 이방원이 같이 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방원은 정도전과 다른 길을 가기로 결정한 상황이었다. 아니 이방원으로서는 그럴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이방원이 이성계의 아들이 아니라 무휼이나 이방지였다면 오히려 더욱 정도전을 믿고 따랐겠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 역사가 인간에게 던지는 잔인한 시험이 아닐까 싶다. 정도전과 이방원이 진정으로 의기투합하였다면 조선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그렇기 때문에 이방원의 독백이 이방원 본인이 느끼는 아쉬움보다 더 클 수밖에는 없는 일이다. 최근 ‘육룡이 나르샤’ 대사 중에서 가장 공감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역사에 가정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그 둘의 갈등과 반목이 빚을 비극이 시청자에게는 크나큰 볼거리가 될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남은 ‘육룡의 나르샤’를 어떻게 끌어갈지에 대한 힌트다. ‘육룡이 나르샤’는 아니 고려말기와 조선창업의 스토리는 제목을 어떻게 짓고, 어떤 가상의 인물이 등장하더라도 결국엔 정도전과 이방원이 지지고 볶아야 재미가 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육룡이 나르샤’는 그러지 못한 부분이 크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김명민과 유아인의 불꽃 튀는 카리스마 대결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부딪힐 때 더욱 불꽃이 튀는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은 ‘육룡이 나르샤’가 정도전과 이방원이라는 두 인물의 행보에 더욱 집중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지만 다음 주 예고를 보면 또 무명이다. 물론 지금 와서 갑자기 무명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무명의 존재는 너무 커져 있다. 문제는 무명의 존재는 말로만 묘사되어 있어 실감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명인지는 몰라도, 왠지 무명이 등장할 때마다 전개가 느슨해진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좀 더 정도전과 이방원에게 밀착된 스토리를 기대하게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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