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의 몸은 추위로 멍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카이의 심장은 눈의 여왕의 입맞춤으로 차가운 얼음이 되어있었으니까. 카이는 날카로운 얼음 조각을 맞추어 단어를 만드는 퍼즐 놀이를 했다. 그의 놀이는 ‘차가운 이성’이었다.

카이는 얼음 퍼즐로 무수한 글자를 만들었지만, 아무리 해도 완성시킬 수 없는 단어가 있었다. 그것은 ‘영원’이라는 글자였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눈의 여왕’ 중에서

▲ tvN <응답하라 1988>

헤어졌던 순간은 그저 눈뜨면 사라지는 긴 밤일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날에 최택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그녀에게로 돌진했다. ‘그럼 지금은?’ ‘어색하겠지.’ 서로를 완전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6년의 세월을 지배했을 덕선의 대답은 ‘그런데....’라는 미련으로 충분했다.

▲ tvN <응답하라 1988>

서로의 마음이 애초에 하나였음을 확인했던 밤, 최택은 수면제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잠들 수 있게 되었다. 덕선은 언니에게 양보해야 하는 둘째딸의 포지션에서 더 이상 결핍을 느끼지 않는다. “왜 나만 덕선이야?”라고 자책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래서 최택은 서로가 숨겨야했던 마음을 6년이라 셈한다. 1988년은 메아리에 불과했던 소년의 고백에 그녀가 눈뜨게 된 시발점이었으니까. “덕선아, 넌 어떠냐고.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거 말고 너,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남이 널 좋아하는 거 말고, 네가 누굴 좋아할 수도 있는 거야” 그 순간, 해답이 되어 나타난 최택. 덕선은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응답하라 1988’은 소녀의 부재가 곧 결핍이었던 소년과 응답할 대상자를 찾지 못해 결핍되어 있었던 소녀의 이야기다. 이미 완전했음에도 자각하지 못해 분리된 상실감에 번민하다 융합으로 결핍을 채우는 응답하라의 러브 판타지.

▲ tvN <응답하라 1988>

겨울로 상징되는 최택에게 덕선은 따스한 온기이자, 번민하는 밤을 재울 수 있는 영원이다. 제7화 그대에게, 덕선은 마니또 게임에서조차 짝을 찾지 못해 ‘난 사랑 받을 자격도 없는 아이’라며 자책하고 최택은 약의 힘을 빌려 고통을 잠재우려 하고 있었다. 뒤늦게 ‘덕선’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발견한 최택은 한겨울에 눈처럼 하얀 반팔 티셔츠를 입은 채 그녀에게 달려 나가면서도,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선물 뭐 갖고 싶어? 다 사줄게.” 스스로를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아이라고 생각하는 성덕선에게 최택은 전부를 주겠다고 말한다. 그 말의 울림이 마치 프러포즈와 같아서 마취된 듯 멍해있던 덕선이었다. 날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소녀에게 아무렇지 않게 전부를 주겠다 말하는 소년.

▲ tvN <응답하라 1988>

“최택, 너 지금 1월인 건 아냐?” 1월에 얇은 옷을 입고 덕선과 골목길을 거닐다 핀잔을 들으면서도,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웃기만 하던 그때도 최택은 이미 얼어붙어 '추위를 알지 못하는 소년'이었다. 덕선은 “너 안 추워? 아우, 넌 애가 예민한 건지 둔한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요.”라고 툴툴거린다. 그로부터 6년 뒤, 같은 골목에서 그는 한겨울에 얇은 옷을 입고 걸어 나오는 덕선의 차가운 몸을 그의 코트로 감싸 안아주었다.

"너 안 추워? "아.... 따뜻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이성의 최택과 끓는점을 넘어버린 덕선의 열정이 하나가 되어 완전한 온도를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다.

▲ tvN <응답하라 1988>
▲ tvN <응답하라 1988>

통속적인 프러포즈와 웨딩마치를 대신한 최택의 눈물 맺힌 ‘사랑해’는 응답하라 러브 판타지의 기원을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메아리에 불과했던 소년의 고백이 응답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되었을 때, 환희에 들떠 ‘사랑해’하고 불러보는 순간의 뭉클한 감동은 그 무엇과도 비견될 수 없었다.

▲ tvN <응답하라 1988>

눈의 여왕은 카이에게, 네가 퍼즐을 풀어 영원이라는 단어를 맞출 수 있다면 결핍 없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얼음성에서 풀어주겠노라는 약조와 함께. 소꿉친구 겔다는 카이를 잃어버린 상실감에 번민하다가, 결국 얼음 궁전에 갇힌 그를 찾아 나선다. 얼음성에 갇힌 카이를 찾아가는 겔다의 여정. 마침내 그를 찾아낸 순간, 겔다가 흘린 기쁨의 눈물은 카이의 눈에서 얼음 조각을 빼내고 그의 겨울을 녹인다. 겔다의 봄이 카이의 겨울을 녹일 때, 영원이라는 낱말이 완성되었다.

▲ tvN <응답하라 1988>

"무슨 뜻인데?"
"...영원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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