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보도가 퇴보하고 있다’. 최근 자주 들리는 얘기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돼 버렸지만, 과거 MBC·KBS·YTN이 각각 ‘마봉춘’, ‘고봉순’, ‘윤택남’으로 불리며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던 당시 SBS는 정반대의 입장이었다. 2008년 한미FTA 협상에 반대하며 벌어진 촛불집회 당시, 보도 내용에 비판받는 SBS 기자들의 처지는 가히 안쓰러울 정도였다.

MB정부 중반이 지나면서 SBS뉴스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다. ‘그래도 KBS·MBC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거였다. 물론 KBS와 MBC 뉴스가 상대적으로 후퇴한 측면이 컸다. 고봉순은 ‘김비서’로 바뀌었고 마봉춘은 실종됐다. 원인이 어떻든 간에 SBS 뉴스에 대한 평가는 얼마 전까지 나쁘지 않았다.

SBS 뉴스에 이상이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SBS 보도국장 등을 지냈던 김성우 전 기획본부장이 청와대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2015년 1월)라는 평가가 설득력 있다. 보도의 후퇴는 최근 뉴스를 보면 명백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소식을 전하면서 SBS는 “노동계와 야당이 반대하는 기간제 법안은 중장기 과제로 넘길 테니, 나머지 4개 법안은 이달 국회에서 꼭 처리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보도했다. 기자들이 쓰는 말로는 ‘장난쳤다’고 할만하다. 마치 <파견법>에 대해서는 여야와 노동계가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한일 위안부 협상 문제 또한 그렇다. SBS는 시종일관 박근혜 정부에서의 ‘진전’과 ‘성과’를 중심에 놓고 리포트했다. 가해국과 피해자가 있는 국가 간의 협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외교’의 문제로만 풀이했다. 피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반대 목소리를 보도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SBS, 삼성전자 백혈병 갈등 '9년 만에 최종합의'로 보도

SBS뉴스의 후퇴는 ‘정부에 대한 감시’ 기능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자본에 대한 감시’, 특히 삼성과의 미묘한 부분에서도 비판받고 있다. SBS <8뉴스>는 지난 12일 지상파 중 유일하게 삼성전자 백혈병 등 직업병 사태와 관련한 조정 결정을 보도했다. 내용은 ‘왜곡’에 가까웠다. 이에 앞서 연합뉴스 등이 ‘최종타결’로 보도했지만 협상 주체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측에서 “다 거짓말”이라는 내용의 해명을 한 상태였다. 중재를 하고 있는 조정위에서 조차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며 사과·보상 등 나머지 의제에 대해 협의를 촉구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이날 SBS 뉴스 제목은 <삼성전자 ‘백혈병 갈등’ 9년 만에 최종 합의>였다.

▲ 1월 12일 SBS '8뉴스'

SBS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한 직원들의 백혈병 피해 문제가 9년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면서 “삼성전자와 가족대책위는 이미 지난해 9월부터 사과와 보상절차를 진행해, 신청자 153명 가운데 103명과 합의했다. 오늘(12일) 예방대책까지 합의해 사과와 보상, 예방대책 3가지 사안에 대해 모두 합의하게 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다만, 시민단체 반올림은 예방대책엔 합의했지만 사과와 보상 문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단 입장”이라고 전했다.

‘반올림’은 삼성 백혈병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가장 주도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온 공식적인 협상 주체이다. SBS는 이런 설명은 빼놓고 ‘시민단체’라고만 표현하고 있다.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시청자들은 부정적인 편견을 가질 수 있다. 보도 중 ‘추가 보상’이라는 표현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SBS 뉴스의 이 보도는 “일부 피해 직원에 대한 보상 문제가 남아 있지만, 대다수 피해자 측과 합의가 이뤄진 만큼 9년 가까이 끌어오던 삼성전자 백혈병 사태는 사실상 마무리됐다”며 끝까지 삼성 편을 들었다. 삼성의 주장만을 그대로 받아 쓴 리포트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진실로 궁금하다. 삼성전자 백혈병 사태는 이제 일부 피해 직원 보상만 하면 끝나는 문제인가?

‘삼성’과 JTBC 그리고 SBS CNBC 보도

이 대목에서 기억해야할 부분은 ‘JTBC와 삼성’의 관계다. 중앙일보가 소유한 종편 JTBC에 대해 ‘삼성방송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삼성과 중앙일보가 '특수관계'이기 때문이다. 손석희 앵커가 JTBC보도부문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했을 때에도 “삼성 보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같은 우려는 현재 많이 불식된 상태다. JTBC의 삼성 관련 보도를 최선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여타 방송뉴스들과 비교해 비판적 기사가 많이 배치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삼성그룹의 노조와해 공작 문건을 유일하게 보도한 곳 또한 JTBC다.

▲ 1월 11일 JTBC '뉴스룸'

11일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는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거라고 볼 수는 없는 거죠?”라고 물었고 기자는 “그렇다. 지금까지 논의해 온 의제는 ‘사과’, ‘보상’ 앞으로의 ‘예방 대책’ 이렇게 세 가지이다. 이 중 예방 대책에 대해서만 모두 동의해 최종 합의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TBC 뉴스는 ‘반올림’에 대해서도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근로자였던 고 황유미 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뒤, 인권센터와 노동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만든 단체”라며 협상의 한 주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리포트의 제목은 <삼성전자 백혈병 ‘예방 대책’ 의제만 합의…내일 서명>이다.

SBS 삼성 백혈병 보도의 심각성은 SBS CBNC의 보도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같은 날 SBS CNBC <뉴스프리즘>에서는 <삼성, 백혈병 예방 대책 합의…‘보상·사과’는 미완> 리포트를 배치했다. 앵커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백혈병 문제가 9년만에 처음 당사자간의 부분 합의를 이뤘다”며 “일단 앞으로의 재해예방대책에 대해서 합의를 한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발병자에 대한 보상과 삼성전자 측의 사과에 대해서는 합의도출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했다. 뉴스의 마무리 또한 “재해예방대책에 한뜻을 모았다는 점에선 의미가 크지만, 사과와 보상에서는 양측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논란의 불씨는 계속될 것”이라는 문장으로 귀결됐다. SBS CNBC는 SBS의 지주회사인 SBS미디어홀딩스의 계열회사 SBS콘텐츠허브가 운영하는 경제전문채널(PP)이다.

▲ 1월 12일 SBS CBNC '프리즘' 뉴스

여기서 SBS와 SBS CNBC의 과거 일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2010년 9월 SBS 마감뉴스 <나이트라인>에 SBS CNBC 기자가 출연하는 고정코너가 생기면서 안팎으로 논란이 커졌다. 당시 SBS 구성원들은 “SBS 뉴스는 SBS 기자들이 만드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이라며 반발했다. 계열회사PP 기자가 SBS 리포트를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거였다. SBS CNBC는 경제전문채널로 SBS보다 ‘상업적’이기 때문에 지상파의 공공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 시민사회의 지적이었다.

SBS와 삼성의 과거 인연 다시 ‘소환’

상황이 이러니 SBS와 ‘삼성’의 인연이 다시 주목받는다. 언론개혁시민연대(대표 전규찬)는 <SBS의 삼성 편향을 우려한다> 논평을 통해 백혈병 문제 관련 삼성 측 교섭대표였던 백수현 전무와 메르스 사태 당시 SBS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관련 영상을 돌연 삭제했던 사건을 거론했다. 삼성전자 백수현 전무는 SBS출신이다. 백수현 전무는 1991년 SBS 개국 당시 입사해 보도본부 편집1부 부국장 등을 거치는 등 22년 간 방송기자로 생활했다. 이후 백수현 전무는 2013년 9월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실 홍보담당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방송매체’를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직업의 선택이야 자유라지만, 언론인들의 삼성행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백수현 전무의 경우, 삼성으로 자리를 옮긴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몸담았던 곳을 상대하는 자리로 갔다는 점에서 더 문제다.

▲ 7월 3일 SBS '8뉴스'. 최초 보도에서 삼성 이재용을 빼고 재촬영 및 재편집한 이후의 영상. 원 제목은 <치료 책임진다더니…결국 다른 병원>이었다.

그래서일까? SBS는 지난해 '웃픈' 상황까지 연출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가 확산됐다는 비판이 커지자 이재용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며 “환자는 책임지고 치료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은 환자들을 다른 병원에 이송하기로 결정했다. SBS <8뉴스>는 곧바로 <치료 책임진다더니…결국 다른 병원>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열흘 만에 이 약속은 번복됐다”고 보도했다. 이후 SBS는 리포트 제목을 <메르스 환자, 다른 병원으로 이송>으로 수정해 '톤 다운'하고 영상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부분을 삭제했다. 이 과정에서 앵커멘트를 재녹화·재편집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SBS 보도를 SBS CNBC 기자가 했으면 좋겠다고 해야할까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준 SBS의 비굴함은 오랫동안 삼성전자를 괴롭혀왔던 백혈병 사태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물론 SBS가 삼성 백혈병 사태를 ‘최종합의’, ‘종지부’라고 보도한 것과 메르스 사태 당시 행보를 비교하는 건 무리라고 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도 함부로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SBS가 최근까지 삼성 편향적 흐름을 보여온 것은 분명하다. ‘KBS·MBC뉴스보다는 SBS가 낫다’는 것도 이젠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SBS는 자사의 삼성 백혈병 문제 보도가 JTBC, SBS CNBC보다 “수준 이하”라는 평가를 어느 때보다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종편 그리고 계열PP보다 지상파인 SBS의 사회적 책무가 더 크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SBS 구성원들은 앞서 SBS CNBC 기자가 본사 뉴스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이를 다시 한 번 상기해야할 시점이다. SBS뉴스 시청자들로부터 ‘SBS CNBC 기자의 리포트가 오히려 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얘기를 들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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