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연말이다.

2008년을 마무리하며 무엇을 해야할까, <미디어스>의 고민도 깊었다. 모든 미디어는 매해 거의 엇비슷한 고민, 엇비슷할 수밖에 없는 기획을 책상에 올려놓고 그걸 어떻게 남다르게 포장할까 하는 숙명적 실존적 어려움에 봉착한다. 미디어스도 다르지 않았다.

이번 ‘주말, 그리고 말랑한 미디어’는 ‘2008 미디어의 모든 것’을 3꼭지로 요약한다. 무리한(!) 압축에 따른 내상도 만만치 않음을 미리 밝혀둔다. 신문, 방송, 인터넷을 각각의 울타리 삼아 강추, 비추, 스타로 나눠봤다. 미디어스의 노력을 통해 당신이 2008 미디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잠깐이라도 더듬어보는 이유를 찾을 수 있기를.

◇ [강추]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경향신문 기획 기사 ‘강추’ (곽상아 기자)

끝없이 터지는 온갖 이슈를 그대로 따라가기 바쁜 기사에 질리셨는가? 정부 정책만을 그대로 ‘받아쓰기’ 하는, 명비어천가형 기사에 질리셨는가? “세상 돌아가는 꼴 보기 싫어 신문이나 방송이나 꼴도 보기 싫다”는 분들께 올 한 해 <경향신문>이 보여준 기획기사 시리즈를 강력 추천한다.

▲ 11월 27일자 경향신문 1면.
현재 진행중인 특별기획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부터 ‘정부수립 60년, 국가를 묻는다’ ‘등록금 1천만원 시대’ 등등. 올해 경향신문은 사회의 굵직굵직한 문제를 밑절미에서부터 조명해내고 이를 통해 해결책을 강구해보는, 긴호흡의 ‘완소 기사’를 선보였다. 경향신문, 이러다가 진보신문의 최강자로 꼽혔던 <한겨레>를 넘어설지도 모르겠다.

11월27일부터 시작된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시리즈는 가슴속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회의를 억누르고, ‘효율과 경쟁의 극대화’를 주요 가치로 삼으며 올 한 해도 미친 듯이 뛰어온 당신과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사다.

1부 ‘무너지는 시장 만능 신화’, 2부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한국’, 3부 ‘미국 모델 그 파국적 종말’, 4부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5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 6부 ‘문제는 정치다’ 등으로 구성되며, 현재 1부가 진행중이다. 싼이자로 외국돈을 무작정 끌어쓰다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아이슬란드,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현지 취재부터 미국 월가에서 일했던 한 재미동포의 생생한 경험담까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8월에 연재된 ‘정부수립 60년, 국가를 묻는다’(제216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부문 수상)는 정부수립 후 60년에 이르는 현대사의 주인공들이면서도 산업화와 고도성장의 그늘 아래 머물렀던 중동 건설 노동자, 여공, 운동권 출신의 386세대 학원장 등을 조명하며 우리에게 ‘국가의 의미’를 묻는다. 조정래씨의 소설 <한강>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실제 모델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지난 1월 말부터 약 한달간 연재된 ‘등록금 1,000만원 시대’(제210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부문 수상)은 ‘사람잡는’ 등록금으로 고통받는 시민들의 삶을 다뤘다.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사례만을 평면적으로 보여주는 걸 넘어서 양극화된 학자금 지원, 호주·미국 등 외국의 등록금 제도 등을 짚었다. 돈을 쌓아놓고도 캠퍼스 설계 등 온갖 황당한 이유로 등록금을 올리는 대학들의 실태가 까발려지는 대목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반짝반짝 빛이 난다곤 하나, 사실 경향신문의 ‘완소’ 기획기사는 다루는 주제부터 어느것 하나 가볍지 않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탓에 눈에서는 눈물이, 입에서는 한숨이 푹푹 나올 뿐이다. 하지만 경향신문이 제시하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우리사회의 각종 문제들도 조금씩 풀릴 날이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


◇ [비추] 강력, 그러나 불길, 윤석민 칼럼 ‘PD수첩과 광우병…거짓의 몽타주’
(안영춘 기자)

<미디어스>가 꼽은 올해의 신문 부문 ‘비추’는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쓴 <조선일보> 7월7일치 시론 ‘PD수첩과 광우병…거짓의 몽타주’다. 단 한 편의 칼럼으로 한 해를 가름하는 것은 소박하다기보다 눈이 밝다고 해야 옳다. 어떤 스타에게도 단역 신인시절은 있다지만, 될성부른 떡잎을 아무나 알아보는 건 아니다. 이 칼럼은 신문 칼럼에 있어서 하나의 강력한, 그러나 불길한 징후다.

▲ 7월 7일자 조선일보 30면.
매체 빅뱅의 시대, 신문의 설자리는 ‘양의 대지’가 아니라 ‘질의 마루’여야 한다. 방송 따위, 인터넷 나부랭이가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 높이의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몽타주’ 같은 영상편집 이론쯤은 문화면이 아니라 오피니언면에 수시로 언급돼줘야 한다. 윤 교수는 신문 오피니언면에서 ‘좌빨 프로그램’을 ‘좌빨’이라 부르지 않고 ‘그 거짓의 몽타주’라고 부름으로써 신문 칼럼의 눈높이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 칼럼의 진정한 탁월성은 개념어 사용에 있지 않다. 이 칼럼 스스로가 온전히 몽타주 문법으로 구성돼 있다는 걸 발견하고 나면 전율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윤 교수의 설명을 따르면, 몽타주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그럼에도 목적은 엄폐되고 과정만 드러나야 한다. 호수 위 고니처럼 발을 동동거릴지언정 표정만은 우아해야 한다. 속으로는 적개심이 끓어올라도 ‘좌빨’이 아니라 ‘그 거짓의 몽타주’라 불러 마침내 ‘좌빨’로 보이게 해야 한다.

윤 교수는 ‘몽타주=파괴적 선동물’이라고 설명했다. 그 설명방식 자체가 매우 몽타주적인데, 사실 몽타주 자체는 좋고 나쁜 게 없다. 커트와 커트를 이어붙여 서사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영상편집인 이상 어떤 영상물도 몽타주를 비켜갈 수 없다. 관건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느냐이고, 문제는 어떤 의도로 사용하느냐이다. 윤 교수는 PD수첩이 나쁜 ‘의도’로 ‘효과’를 극대화했다고 주장하기 위한 ‘의도’로 ‘효과’를 극대화하는 글쓰기 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그의 성취는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신문에서 시(時)절을 논(論)하려면 그 정도 높이는 갖춰야 한다. “PD수첩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호소한다”는 표현을 쓸 만큼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 효과를 높이려 한 노력도 가상했다. (그의 ‘아끼는 방식’은 참으로 몽타주스럽다.) 그러나 그의 글은 ‘좌빨 색칠하기’의 직설화법을 피해갔을 뿐, 직설화법보다 과격하고, 단정적이며, 선동적이었다. 세련된 매카시, 그 교묘함이, PD수첩을 그다지 아끼지 않는 이들에게도 참으로 불길하게 다가온 2008년 한 해였다.

◇ [스타] 눈부신 그녀들, 소울드레서 (정영은 기자)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좀처럼 송년회 분위기가 잘 안나는 어수선한 시국이나, 그럼에도 격동의 2008년 신문을 둘러싼 사건들을 돌이켜봤다. 올 한 해로 한정해 키워드 ‘신문’을 넣어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연관 검색어로 세트메뉴(?)인 ‘조중동’이? 조중동, 하니까 문득 촛불 시민들의 ‘불꺼라’는 야유와 ‘조중동 OUT’ 스티커로 뒤덮였던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사와 동아일보사 정문, 그 스펙터클한 광경이 불쑥 떠오른다.

촛불로 뒤덮인 광장의 특별한 기억들을 되짚어 보니, 편파왜곡 보도로 분개한 시민들이 촛불집회 취재 기자들의 신분증까지 요구하던 살벌한 풍경들도 있고, 조중동 평생 구독 거부를 선언하며 행진하던 시민들도 있고…. 아! 기억 한 켠에, 아름다운 행동파 그녀들이 반짝이고 있다!

지난 5월 중순 ‘미국에서 수입되는 쇠고기와 미국사람이 먹는 쇠고기는 다릅니다!’, ‘국민의 건강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정부가 책임지고 재협상하십시오!’ 라는 제목으로,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신문 1면 하단에서 눈을 번쩍! 뜨이게 했던 ‘의견 광고’가 있었다.

▲ 5월 17일자 한겨레 1면에 실린 '소울드레서' 회원들의 광고.
아, 눈부신 그들, 소울드레서는 국내외 패션정보 전반에 관심 있는 20~30대 여성들이 모인 포털 다음 카페 내 커뮤니티였으니! 그 광고 마지막 줄 ‘다음 까페 소울드레서(cafe.daum.net/SoulDresser) 8만 회원들은 올바른 언론사를 응원합니다’는 문구로, 당시 미디어스 편집국 기자들은 모조리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져들었더랬다!

이후 소울드레서의 입장에 동조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의견광고는 계속 이어졌다. 미국 프로야구 토론 사이트인 엠엘비파크(mlbpark.com)와 마이클럽(miclub.com) 회원들도 각각 모금운동을 통해 경향신문 1면에 ‘우리는 잘못된 미국산 쇠고기수입을 반대합니다’라는 의견 광고를 내보냈다.

올해 소울드레서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각각 1700여만원, 4400여만원, 1천여만원을 십시일반 모아 모아, 민영화 반대와 촛불집회 지지 등의 신문 광고를 실었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날에는 어느 매체에 소울드레서 이름으로 수박 수십통을 보내왔다는 미담도, 업계 전설로 모락모락 전해지고 있다.

행동파 대인배 ‘소드(소울드레서 회원을 일컬음)’님들은 언론사 응원광고 취지에 대해 “촛불을 아무리 들고 소리쳐도 제대로 보도조차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올바른 언론사를 지지한다”는 멘트를 날려주셨다. 그저 당신께 건네고픈 한 마디는… “멋져부러~!”

하여, <미디어스>는 ‘2008 신문 지면을 빛낸 스타’로 언론 바로 세우기의 든든한 응원군인 ‘소드’님들을 꼽아볼란다~! 짝짝짝!

‘소드’님들의 “작은 목소리가 큰 울림이 된다. 바른 언론사 후원광고를 통해 올바른 언론사들이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받기를 바란다”는 희망대로, 불황의 늪에서도 바른 길을 가고자 고군분투하는 언론사들에게 내년 한 해에도 국민 여러분의 많은 애정과 관심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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