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를 부르짖는 ‘명박 군단’의 핵심 수뇌부들이 같은 날 서로 정반대의 말을 내뱉었다. ‘군단장’ 겸 ‘독전대장’까지 맡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돌격대장’을 맡고 있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두 주인공이다.

▲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는 패러디 이미지.
강 장관은 19일 오전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어려울 때일수록 옥석을 가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자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부동산 투기보다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때”라며 “자산 디플레이션이 일자리를 줄이면서 자영업자들이 생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여기엔 민간주택 분양가 상한제 및 전매제한제 폐지, 강남3구에 대한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해제 등을 밀어붙이겠다는 함의가 깔려 있다.

같은 날 대통령은 당선 1주년을 맞아 인천항 및 GM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업이 됐든 나라가 됐든 거품을 빼야 한다”며 “체질을 개선하는 나라만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언론 보도를 보면, 대통령은 “희생이 따라야 생존할 수 있다”는 말까지 한 모양이다.

불협화음도 이만저만 한 게 아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생각해 봤다. 방법이 하나 있다. 대통령 말마따나 “나라고 기업이고 거품을 빼고 옥석을 가려야 하지만, 부동산은 예외”라고 이해하면 수긍이 간다. 아니면 “다른 데는 다 거품이 있어도 부동산에는 거품이 없다”고 두 사람이 우기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독해법이다.

이런 비상식적 독해법을 동원한다고 해도 남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대통령이 “거품 빼자”며 ‘희생’을 강조한 말이 겨눈 목표물은 노동자였다. 강 장관의 “자산 디플레이션 방지와 일자리 지키기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겨냥한 대상은 자영업자였다. 자영업자에게는 부동산 규제를 몽땅 완화하고 그로 인한 투기와 거품이 우려된다고 해도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하는 반면, 노동자에게는 거품을 빼고 희생을 치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명박 군단의 수뇌부들에게는 같은 일자리라고 다 같은 일자리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일자리 지키기’에도 엄연한 위계질서가 있다는 얘기다. 이제부터 명박 군단 수뇌부들의 불협화음은 불협화음이 아니게 된다. 오히려 고도의 업무 분장에 가깝다. 노동자 때리기는 대통령이 나서서, 자영업자 감싸기는 강 장관이 나서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자영업자에 대한 분할 통치라고나 할까.

하지만 복잡한 의미 부여를 하지 말고 단순하게 독해하는 방식도 있다. 대통령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강 장관이 말실수를 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럴 경우, 자신의 말실수로 인해 대통령이 나와 같은 ‘좌빨’의 조롱거리가 됐으니 가벼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독전대장’의 독려가 한몫 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루 전인 18일의 일이다. 돌격 내각 구성을 다그치고 있는 대통령은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등 3개 경제부처를 대상으로 내년도 첫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독전사’를 낭독했다. “일을 적극적으로 책임지면서 하다가 실수하는 공무원은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게 핵심이다. ‘만수’가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문제삼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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