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조중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한 그룹’으로 싸잡아 비판을 받곤 하는 보수신문들 사이에도 서열이 있고 이에 따른 품격과 수준의 차이가 존재한다. 18일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벌어진 충돌을 다루는 오늘자(19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설 얘기다.

먼저 한나라당이 막아놓은 회의장 문을 뚫기 위해 망치와 전기톱을 동원한 민주당과 민노당 의원들을 ‘밧줄로 경찰차를 끌어내던 불법시위 주동자’로 비유한 동아일보의 사설을 살펴보자.

▲ 동아일보 12월 19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사설의 대부분을 야당 비판에만 할애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망나니 국회…망치 들고 싶은 건 국민이다>에서 “민주당의 상임위 활동 전면 보이콧으로 나흘째 공전하던 국회가 결국 망치소리에 무너지고 말았다”며 “어제 국회 외통위 회의장 앞은 극소수 불법·폭력 세력이 쇠파이프와 쇠구슬총으로 법과 질서를 유린하던 촛불시위 현장을 빼닮았다. 쇠파이프와 쇠구슬총 대신 공사장용 망치와 끌, 전기톱이 동원된 게 다를 뿐”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한미 FTA 협상 및 체결 당사자였던 민주당은 이런 망나니짓을 할 자격이 없다. 민주당과 민노당은 한미 FTA 직권 상정을 ‘의회민주주의 유린’이니 ‘국민에 대한 전쟁선포’니 하며 상투적인 덮어씌우기를 하지만 이는 적반하장”이라며 “망치와 전기톱으로 선거 민의(民意)를 깔아뭉개려는 두 당의 국회 내 폭력이야말로 의회민주주의 유린이며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다. 제발 길거리에 나가 성난 민심(民心)과 마주하기를 권한다. 많은 국민이야말로 이들에게 망치를 들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FTA 내용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을 뿐더러 오바마 정부가 한미FTA의 수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비준동의안을 단독 상정한 한나라당의 부도덕함과 무능함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았다. 과연, 조중동 중 가장 ‘친MB계 신문’이라 할 만하다.

최근 정권에 맹목적 지지를 보내는 뉴라이트를 집중 공격한 조선일보는 오늘자 사설 ‘한미 FTA는 어느 정권이 체결했는데 해머 들고 날뛰나’에서 민주당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 조선일보 12월 19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한미 FTA를 체결한 세력이 한미 FTA 국회 상정을 막겠다고 공사판의 해머를 들고 날뛴 것은 보통 모순이 아니다. 한미 FTA를 비준하는 것이 이로운지 해로운지는 따져볼 여지가 많고 그걸 따지려면 일단 안건은 상정해야 한다”면서도 “우리가 먼저 FTA를 처리해야 오바마측이 재협상 이야기를 꺼낼 빌미를 주지 않고 미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한나라당측 논리도 설득력이 있는 게 못 된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오바마 당선자가 지난 5월 부시 대통령에게 ‘한미 FTA 비준안을 의회에 내지 말라’고 요구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자동차산업에 피해를 준다는 것이었다. 미국 자동차업계 상황은 그때보다 더 악화돼 이제 정부 지원 없이는 한 달도 생존할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 오바마 정권이 자동차 재협상 카드를 꺼낼 가능성은 더 커진 셈이다. 이 상황에서도 한나라당 주장은 여전히 믿을 만한 것인가”라고 되물으며 “정부·여당은 우리가 먼저 비준할 경우 재협상 요구는 확실히 사라지는 것인지, 미국 정부와 의회의 FTA 처리 방침과 구상은 어떤지에 대해 구체적인 전망부터 내놓아야 한다. 그런 과정도 생략한 채 해머까지 난무하는 험악한 몸싸움 끝에 FTA 비준안을 처리했다가 미국이 재협상을 들고 나오거나 미국이 비준을 마냥 미룬다면 한·미관계는 크게 뒤틀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의 지적대로 한나라당의 ‘선비준’ 전략은 실효성이 없다. 정부여당으로서는 우리가 먼저 비준을 함으로써 미 의회 비준을 압박하고 재협상 요구를 차단하겠다고 하지만 미국이 과연 꿈쩍이나 할까? 오히려 우리가 먼저 비준했음에도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된다면, 괜히 우리 꼴만 우스워질 확률이 높지 않은가. 게다가 당장 눈앞의 불인 금융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오바마 정부로서는 한미FTA가 시급한 현안도 아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 먼저 마시는 격이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이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야당을 ‘불법시위 주동자’로 비유하며 이들에 대한 비판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맹목적 지지를 보내는 동아일보와 비판할 것은 비판해가며 적절한 훈수 혹은 조언을 하는 조선일보. 두 신문 가운데 어느 신문이 정권에게 도움이 될까. 시장점유율 외에 이러한 ‘수준 차이’ 때문에 이들은 ‘동조중’이 아니라 ‘조중동’이란 이름으로 불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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