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싶지만 마음뿐인걸, 나는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 성덕선은 스스로를 개똥벌레라 생각하는 아이입니다. 노을이와 보라라는 예쁜 이름 사이에 끼어있던 다소 투박한 ‘덕선’이라는 어감부터가 그녀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날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난, 사랑 받을 자격이 없나봐.
비하와 자학은 성덕선 아이덴티티의 7할이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사랑스러운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최택은 이런 성덕선의 결핍과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개똥벌레 그 자체로 그녀를 사랑합니다. 성덕선이 여성성이 없어도 또 어쩌다 잔뜩 여자아이 같아져도, 그의 지갑을 뺏고 요플레를 갈취하고 바바리맨 앞에서 호기를 부렸다 결국 무너져 울음을 터뜨려도 그 모든 긍정과 결핍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죠.
최택은 기원을 알 수 없는 아주 오래 전부터 덕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애를 써왔던 인물입니다. 덕선이 자괴감에 빠질 때마다 언제나 그녀 앞에 서있던 사람은 바로 최택이었죠. ‘니 아픈데, 니 아프다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던 나정의 트라우마를 홀로 알아보고 망설임 없이 행동으로 옮긴 쓰레기처럼요.
문이 열리고 동룡의 장난을 들으며 부루퉁한 얼굴로 덕선이 다가올 때, 최택은 멀리서부터 슬리퍼만 달랑 신은 그녀의 발을 눈치 챈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장난으로 묻어서 넘어가려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내내 덕선의 언 발에서 눈을 떼지 못해요.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트라우마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덕선의 세상에서, 본능적으로 그녀의 상처와 결핍을 알아채고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최택 한 사람 뿐이니까요.
그리고 지독한 남편 찾기에서 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 역시, 누구도 채울 수 없는 그녀의 결핍을 본능적으로 치유해주는 사람뿐이었습니다. 그것만큼은 대체제가 없어요. 필연적으로 정해진 결핍을 채워주는 상호보완적 관계, 이것을 응답하라 세계관에서는 인연이라 정의하죠.
“오기로 했는데 사고가 났대”라고 안쓰러울 만큼 애처로이 변명하는 덕선이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다 옷을 벗어 덮어주곤 그녀가 신경 쓰이지 않도록 “내가 더워서 그래. 입고 있어.”라고 달래죠. 그 순간 택에겐 사랑하는 덕선에게 점수 따는 일보다 ‘난,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덕선이의 오기가 부끄러워지지 않도록, 덕선이의 자존감을 보호하는 일이 더 중요했을 겁니다.
제작진이 왜 하고 많은 씬 중에 하필 비 내리는 날 나정이를 데리러 나간 쓰레기를 ‘응답하라1994’의 시그니처로 골랐을까요. 나정을 피하면서도 찬비에 몸이 얼어버릴 그녀가 신경 쓰여 커리어도 포기하고 밖으로 뛰쳐나온 쓰레기처럼, 최택 또한 꽁꽁 얼어있을 덕선의 몸이 신경 쓰여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응답하라 제작진은 플래시백에 굳이 복선을 회수해 이 장면을 넣었습니다. 아픈 그녀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 응답하라 남주인공의 필연이라고요.
사랑은 이타심이고 그 사람이 곧 내 세상이 되는 순간입니다. 줄곧 그녀의 세상으로 넘어가고 싶었던 최택입니다. 나는 개똥벌레- 날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울먹이는 덕선에게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이라고 답해줄 수 있는 사람. 그게 바로 응답하라 러브 판타지의 필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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