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를 쉬고 돌아온 <리멤버-아들의 전쟁>이 가관이다. 이야기는 점점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억지를 앞세운 상황을 위한 상황 전개는 지루하기만 하다. 극적인 상황을 만든다고 만들고 있지만 인과관계가 나약한 상황에서 이 모든 것은 당혹스러움으로 다가온다.

용팔이 증후군;
막가는 전개, 당위성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가 재미마저 빼앗고 있다

지난 2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당혹스러운 전개가 이어지는지 모르겠다. 거대한 자본의 힘을 가진 재벌과 싸우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실제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재벌과 싸움은 시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에서 말도 안 되는 전개는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 서민도 아닌 그나마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대항조차 할 수 없는 미미한 존재라는 사실이 강렬하게 다가오니 말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골리앗에 맞서 아무 것도 손에 쥔 것 없는 다윗의 처지가 되었다는 전제가 깔린다고 해도 <리멤버-아들의 전쟁>의 전개는 아쉽다. 충분히 흥미롭고 그럴 듯하게 풀어갈 수도 있을 텐데 시청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전개는 분명 작가의 능력 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현직 변호사에서 갑작스럽게 살인자가 되어 도망 다니는 진우. 4년 전 아버지가 당했던 것처럼 이제 아들 역시 남규만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하기 시작했다. 과거 남규만을 도왔던 홍무석 검사와 곽한수 형사가 이번에도 짝을 이뤄 사건을 조작했다.

▲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 아들의 전쟁>
남일호가 홍 검사를 시켜 사건을 조작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아들인 남규만이 전면에 나서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하는 일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 될 것이다. 악의 대물림을 제대로 보여주는 남씨 일가의 악행은 결국 처벌을 받거나 빗겨가는 모습으로 표현되겠지만 그 과정이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아버지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4년 동안 노력해 진우는 변호사가 되었다. 타고난 천재적인 두뇌로 남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진우는 그렇게 잘나가는 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변두리 로펌'이라는 사무실까지 내면서 본격적인 복수를 다짐했다.

남규만을 무너트리기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진우는 일호생명 부사장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준다. 그 대가로 그가 보관하고 있던 일호그룹의 비자금 내역이 든 USB를 받게 된다. 그것만 있다면 일호그룹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카드를 쥔 셈이다. 문제는 이 상황에서 진우가 4년 전 아버지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남씨 일가의 악행과 정신세계를 잘 알고 있는 박 변호사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진우의 분노는 멈출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랬듯 그들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존재이고 망설이지도 않는다. 그런 그들의 행동을 박 변호사의 언급이 없더라도 진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남규만이 살인을 한 사건을 아무런 잘못 없는 자신의 아버지 짓으로 만들어진 것을 진우만큼 뼈저리게 느꼈을 이도 없기 때문이다.

남규만만 바라보고 뛰던 진우는 4년 전 아버지를 살인자로 몰아가는 위증을 했던 과거 동료 전주댁을 찾아갔다. 그렇게 집요하게 법정에 서기를 요구하는 진우의 행동은 당연하게 남규만을 자극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해서는 안 되는 살인이 벌어지고, 과거 아버지가 그랬듯 이번에는 진우가 범인으로 둔갑해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 아들의 전쟁>
벽면에 남씨 일가의 가계도와 주변 사람들을 분석한 내용들이 가득하지만 정작 진우가 행하는 행동 패턴은 아무것도 모른 채 움직이는 인물과 다름이 없다. 보다 정교하게 파고들며 공격할 수 있는 근거들이 존재함에도 진우의 행동은 낯선 움직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모습이다.

모든 것을 혼자 하겠다는 고집은 결국 덫에 걸리는 이유가 된다. 이후에도 진우의 그런 성향은 변하지 않는다. 어렵게 도망자가 된 상황에서도 방송사 기자와 연결되어 비자금 파일을 공개하는 자리를 얻게 된다. 하지만 비자금 파일을 남규만을 위한 협박 카드로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거대한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선전포고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답답하다.

진우는 진범을 밝히라고 규만을 협박한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짓을 할 것인지도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방송사와 공개될 시간까지 철저하게 상대에게 알려준 상황에서 제대로 협박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 것은 오판이다. 기억력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할지 모르지만 그가 보이는 행태를 보면 답답함과 우둔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정교한 법정 드라마로 그려질 것이란 기대와 달리, 투박한 돌멩이를 들고 서로에게 던지는 듯한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벌써부터 씁쓸함으로 다가온다. 과거 수목드라마의 기록을 새롭게 쓴, 용두사미 드라마의 대명사 <용팔이>를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니 말이다.

1/3을 소화한 상황에서 가장 큰 패인 비자금 파일은 사라졌다. 그리고 죽음 직전까지 몰렸던 진우가 변호사로서 다시 일을 하며 복수를 할 근거는 희박해졌다. 진우가 할 수 있는 게 그만큼 좁아졌다는 사실이다.

▲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 아들의 전쟁>
뛰어난 두뇌로 다시 슬쩍 지나간 범인을 기억해 인아에게 범인을 특정지어 준 진우는 이번에도 홀로 범인을 찾아 나선다. 범인과 마주해 제압할 능력도 되지 않은 그가 마음만 앞서 범임 찾기에 나서는 모습은 불안하기만 하다. 그런 진우를 돕기 위해 경찰들과 함께 범인을 잡기 위해 나선 인아는 골목에서 공격을 당하고 쓰러진다.

그 많던 경찰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고, 여 검사 홀로 범인을 잡겠다며 추적하다 공격을 당하는 이 처참한 현실은 답답하다. 진우나 인아나 모두 알 수 없는 행동으로 스스로 위기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은 시청자들로 인해 한숨을 내뱉게 하고 있다.

주인공들의 행동이 답답해지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 그만큼 한계에 다다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용팔이>가 초반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의사로 나와 그럴 듯한 모습을 보인 것과 달리, 가면 갈수록 산으로 가던 것과 너무나 유사하다. 보이는 모든 것을 기억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변호사가 되어 적과 싸운다는 설정이 흥미롭지만 식상한 전개로 길을 잃어버린 모습이 너무 비슷하니 말이다.

용팔이나 진우 곁에는 언제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의리를 앞세운 조폭이 큰 역할을 해준다는 것도 씁쓸하다. 어린 나이에 탁월한 두뇌를 이용해 법조인이 되기는 했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책으로 세상을 모두 이해하거나 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진우의 좌충우돌이 부당하거나 이상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런 시련이 진정한 복수를 위한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 아들의 전쟁>
시청자들이 답답해하는 전개 과정은 결국 작가의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용팔이>를 통해 구축된 용두사미 전개는 <리멤버-아들의 전쟁>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스타 마케팅을 통해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것까지 유사하다는 점이 더욱 씁쓸하게 다가온다.

유승호의 연기는 좋다. 그리고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라 반갑다. 악당을 연기하는 남궁민 역시 그의 연기 인생 최고의 정점을 찍을 듯 연기를 해주고 있다. 많은 출연자들이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고 있지만 이야기 전개는 전혀 배우들의 연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남규만이 가장 두려워하는 동창이자 현직 판사인 강석규가 판사복을 벗고 진우의 '변두리 로펌'으로 오게 되면서부터 변화는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나름의 기회를 잡으려 준비하던 박동호 변호사가 반격을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탄력을 받을 것이다. 강석규와 박동호라는 걸출한 존재가 진우의 편이 되면서 거대한 악인 재벌과의 싸움은 점입가경을 맞이할 것이다.

앞선 <용팔이> 여주인공의 무기력함은 이번 드라마에서도 이인아의 답답함으로 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하기 어렵게 한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능력을 발휘하며 일조하겠지만 얼마나 시청자들을 납득시키는 방식을 택할지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제 2의 용팔이가 되어선 안 된다. 2주라는 시간을 벌면서 보다 탄탄한 내용을 만들어낼 것이라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실망했다. 전개가 눈에 보이고 그런 이미 예고된 복수극임에도 이렇게 터무니없이 엉성한 방식으로 이어간다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힘들다.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작가의 한계가 아쉽게 다가오는 드라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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