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조직 '무명'이 전면에 등장하며 이야기가 더욱 흥미롭게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 사실 외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는 <육룡이 나르샤>는 조선 건국 과정보다 그들의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더 매료시키고 있다. 전설처럼 떠도는 무림의 고수들이 대거 등장하며 혼란스러운 고려 말을 더욱 긴장시키기 시작했다.

육산 등장과 규목화사;
정체성과 지향 모호한 비밀조직, 무명 조직 속으로 스며드는 분이

길선미를 추격하던 정도전과 이방지는 죽었다던 연향을 목격한다. 할머니를 부축한 채 사라진 그녀를 뒤쫓아보지만 절 어디를 뒤져봐도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도주할 곳이 없는 그곳에서 병사들에게도 들키지 않고 모두 사라진 사실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죽었다고 알려졌던 연향이 실체를 드러내며 비밀조직 '무명'의 존재감은 커지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까지 버린 채 '무명'을 위해 스스로 길을 떠났던 분이의 어머니. 28회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그들이 잔인한 방식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집단이란 사실이다. 길선미라는 당대 최고의 검객만이 아니라, 이성계를 제거하기 위해 곡산출신의 척가로 불리는 무사를 고용하기까지 한다. 현재까지 드러난 '무명'이라는 조직은 개혁에 반하는 수구 세력의 집합체 정도로 보이고 있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장삼봉의 제자를 무너트린 척사광이 누구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우왕 앞에 등장한 척가라는 자가 척사광일 수는 없다. 길선미와 비슷한 나이거나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척사광이 그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심지어 길선미도 척사광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척가의 등장은 비밀조직 '무명'의 성격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이유가 되었다. 이 지점에서 의심이 드는 것은 '무명' 조직의 지향이다. 고려 말을 지배하고 있는 권문세족과 크게 다르지 않는 비밀조직이라면 굳이 그들이 비밀스럽게 움직일 이유를 찾기 어렵다. 이 상황에서 해동갑족 중 하나인 육산이 전면에 등장하며 '그 분'을 들먹이며 길선미에게 '규목화사'를 이야기했다.

꽃이 피기 전에 제거하라는 지시와 길선미가 이방지에게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말은 같은 사람을 향해 있다. 거대한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방지를 더 크기 전에 제거해야 한다는 명확한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육산의 이야기에 길선미는 "그분께서요?"라는 의문부호를 남겼다. 이는 '무명'의 가치관과 현재 흐름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복선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토지개혁을 위해 판도사 관리들을 파견하려던 문제는 큰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세 명의 관리들이 출발도 하기 전에 모두 암살을 당했다. 이를 빌미로 권문세족들은 세를 규합했고, 그들을 앞세워 토지개혁을 막기 위해 정신이 없다. 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정도전의 야망을 알게 된 정몽주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의 개혁에는 동의하지만 고려 사직까지 무너트리는 일에 동참할 수는 없는 그는 도당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정도전에게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한다. 정몽주는 개혁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밝히던 와중에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 절대 사직을 무너트리지 않겠다는 약조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토지개혁을 위해 정도전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정몽주는 양전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화전을 정도전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도 한다. 부패한 권력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도화전을 개혁의 중심으로 만들자는 정몽주의 제안에는 사직을 무너트리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도 담겨 있었다.

서글프게도 이런 둘의 끈끈함은 이방원에 의해 무너진다. 그 유명한 선죽교 사건은 한 사람의 운명만이 아니라 정도전마저 조선 건국 후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꺾이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이 대립각은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방원은 대업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존재다. 그런 점에서 정도전과는 많이 다르다. 그 차이를 극명하게 보인 것은 '인재'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이었다. 정몽주라는 존재가 가지는 위상과 가치를 이야기하는 정도전과,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면 제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방원은 큰 차이를 보이며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사람이야 다시 길러내면 그만이라는 이방원과 나라만 세우는 것이 답이 아니라 제대로 된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는 인재가 중요하다는 정도전의 가치관의 차이는 곧 둘이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씨앗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정몽주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풀어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이번 방송의 핵심은 '규목화사'다. 현재 그들은 이방지를 제거하겠다는 속셈을 숨기지 않고 있다. 길선미와 육산선생의 대화 속에서 그 잔인한 계획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길선미가 이방지의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조한 날이, '무명' 조직원으로 보이는 자가 우왕을 이용해 이성계에게 선물을 하사하겠다는 날과 같다. 우왕 앞에 척준경의 고향인 곡산 출신의 무사를 소개해 선물로 보내달라는 제안은 곧 이성계까지 암살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길선미를 함정에 몰아세운 과정에서 잡힌 '무명' 조직원은 강렬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배신하지 않으면 '그분'이 자신을 구해주실 것이라는 확신 말이다. 이를 역이용해 그를 풀어주며 토끼몰이를 하듯 다시 작전을 짜면 '그분'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이방원의 제안이 실행되지만 언제나처럼 '무명'은 앞서있었다.

모든 계획은 철저하고 완벽했지만 누군가는 '무명'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조직을 위해 고신을 받으면서도 침묵했던 포로는 척가에게 살해당한다. 그의 맹신은 곧 죽음으로 되돌아왔다. 이 상황은 앞선 길선미의 의문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밀조직 '무명'이 돌이킬 수 없는 균열에 빠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니라면 모든 이들이 그들의 야욕을 모르고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 밖에는 되지 않으니 말이다.

무명 조직원의 죽음을 지켜보던 분이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목에 들어 온 칼과 마주해야 했다. 수없이 죽음 앞에 내던져져야 했던 분이는 이번에도 기지를 발휘해 살아났다. 단순하게 살아난 것이 아니라 그녀의 행동은 비밀조직 '무명' 속으로 들어서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어머니를 봤다는 방지에게 분이는 납치가 아니라 어머니는 스스로 떠난 것이라 이야기했다. 너무 어린 나이로 꿈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봤던 어머니는 결코 납치된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낯선 남자의 등장과 그 뒤 자신들을 버리고 그를 따라 갔다는 기억은 꿈이 아닌 실제였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방지와 분이의 어머니인 연향이 '무명' 조직에 깊숙하게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명확해졌다. 당대 최고의 무사라고 불리는 길선미도 같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조직원들은 강력한 정치적인 입지를 다진 인물들도 있고, 초야 묻힌 채 조용하게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도 있다. 거대한 조직임은 분명하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분이가 “초무자 무진”이란 그들만의 음어를 내뱉는 순간 그녀는 '무명'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서기 시작했다. 모두가 '희망가'를 부르는 상황에서 홀로 힘들었던 분이의 이 선택은 결국 <육룡이 나르샤>가 이야기하고 싶은 그 중심으로 발을 내딛게 하는 이유가 된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투쟁은 곧 '무명'과 동일하다. 그런 점에서 현재까지 드러난 이들의 가치는 변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권문세족들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듯한 그들의 행보는 깨지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뿌리깊은 나무>로 이어지는 조직이라면 당연하게 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변화의 정점에 분이가 함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규목화사'를 사이에 두고 '무명' 조직의 균열도 심화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무조건 충성하고 맹신하던 조직원을 잔인하게 죽이면서 그 균열은 명확해졌다. 그런 점에서 분이와 이방지, 길선미, 곧 등장할 수밖에 없는 척사광까지 역사에 명확하게 기록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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