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가 이제 중반을 넘어섰다. 그리고 우려했던 일들이 차츰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제목에서 주는 불길한 예감이었다. 영화도 그렇지만 특히 드라마나 다수의 주인공 체제는 위험성이 매우 크다. 심지어 제목에서 12몽키니, 오션스 12니 하더라도 결국 그들 중에는 리더가 있고, 관객들은 그를 중심으로 인물들의 관계와 사건의 흐름을 쫓아가게 된다. 드라마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런데 지금의 육룡의 나르샤에는 그 중심에 선 인물이 보이질 않는다. 아무리 조선의 건국에 정도전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하더라도, 육룡의 나르샤에서의 이성계에게선 오백년 역사의 고려시대를 끝내고 새 나라를 건국한 어쨌든 위대한 카라스마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모두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정도전 역시 기대했던 만큼의 존재감으로 보답하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건국이라는 엄청난 사건보다는 주변 아니 분이네 가족사에 붙잡혀 전진을 못하고 있다.
그리고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능력치 부분에서 최고를 보이는 인물로서는 분이를 꼽을 수 있다. 사실 분이는 정말 불가사의한 존재다. 길태미는 실존인물이라도 유추할 수 있지만 분이는 완전히 작가가 만들어냈다. 그래서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분이가 육룡에 포함되어 있고, 그 역할을 신세경이 연기하기에 자연 주목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우린 살아야 했고, 살아있으면 뭐라도 해야 되는 거니까”
특히 이 대사는 정말 좋았다. 그러나 이후 분이는 살아있는 것을 증명하는 수준을 넘어 너무 많이 하고 있다는 불만들이 쌓이고 있다. 심지어 이방원과의 러브라인마저 거부하는 이도 있다. 이건 좀 의아한 일이다. 그것은 분이가 점점 밉상 캐릭터가 돼가고 있다는 의미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징조다.
육룡 중 분이가 낀 이유는 짐작컨대 결말 부분에 가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라고 여겨진다. 역사가 바뀌어도 민초의 흔적은 없다는 그런 목소리를 기대할 수 있다. 육룡은 이성계, 이방원, 정도전, 이방지, 무휼 등 모두 남자들이다. 거기에 여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분명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넣었고, 넣는 김에 좀 더 눈에 띄게 만들고자 했겠지만 좀 지나친 김이 없지 않다. 사건 전개마저 분이네 가족들 위주로 흐르고 있는 것도 지나치다는 느낌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작가가 이성계나 정도전의 특정 시각이 아니라 조선 건국에 개입한 여러 인물들의 시각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민초들의 시각까지 더해서 다각적이고 입체적인 건국 스토리를 보여줄 거라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드라마가 이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분이의 가족사에 육룡이 발목을 잡혀 날지 못하고, 조선 건국은 때가 되면 저절로 될 것만 같은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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