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제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 21일 “내년 4‧13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사의를 밝혔다. 그러나 허원제 위원은 연말로 예정된 ‘방송평가 규칙 개정’ 의결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방통위 내부에서는 ‘사의를 밝히고 출마 선언까지 한 허원제 위원이 언론 관련 정책을 의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통위가 지난 10월23일 행정예고한 방송평가 규칙 개정안은 방통위가 방송사의 공정성‧객관성 등을 평가할 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의 법정 제재를 반영한 감점을 2배로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개정안에는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을 어긴 방송사에 대한 감점을 2배로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한국방송협회, 종합편성채널 등은 ‘재갈 물리기’라며 이를 반대하고 있다. 특히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정부여당과 야당이 각각 6명, 3명의 위원을 추천하는 구조라 ‘표적 심의’가 가능하기 때문에 방송사들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최성준 위원장 등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방송공정성 평가 관련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밀어붙였다. 방통위는 산하 방송평가위원회(위원장 김재홍 방통위 부위원장)도 우회했고, 방송평가 규칙 개선 자문단도 킥오프 회의 한 차례 개최한 상황에서 문제의 규칙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이런 까닭에 ‘총선과 대선을 위한 방송통제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규칙이 연내 개정되면 2016년 방송분과 총선 선거보도부터 적용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돼 18대 국회에 입성하고, 2014년 새누리당 추천으로 방통위 상임위원이 됐고, 다가올 총선에서도 새누리당 후보로 총선 출마가 유력한 허원제 위원이 방송사의 선거보도에 영향을 줄 방송평가 규칙 개정 의결에 참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통위 사무처 내에서도 허 위원의 의결권 행사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방송평가 규칙 개정을 두고 여야 추천 상임위원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허 위원이 의결에 참여하면 종전대로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의 다수결이 가능하다.

▲ 허원제 상임위원

허원제 위원은 지난 14일 사의를 표명하고, 방통위는 직후 인사혁신처에 허 위원의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허원제 위원에게 제시한 마지막 과제가 방송평가 규칙 개정 아니냐’는 이야기마저 방통위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최성준 위원장은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23일 ‘총선 출마를 선언한 허원제 위원이 언론 관련 정책 의결에 참석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위원장 생각은 어떤가’라는 미디어스 질문에 “아직 퇴임하지 않았으므로 상임위원으로서 의결에 참여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방통위 상임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상임위원의 임기는 3년(1회에 한해 연임 가능)인데, 결원이 발생하면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즉각 보궐위원을 임명해야 한다. 반상권 운영지원과장은 23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허원제 위원의 사직서를 인사처에 제출했고, 현재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방통위 설치법에 따르면,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하기 전까지 허원제 위원은 상임위원 직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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