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대 앞 거리를 걷다가 낯익은 곡을 들었다. 그 곡은 지난 8일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이하 <슈가맨>)에서 소개되었던 WHO(고 박용하)의 ‘처음 그날처럼’이었다. 2003년 빅히트를 기록한 SBS 드라마 <올인>의 메인 타이틀곡이었기 때문에 <슈가맨>에 소개되기 전부터 이 노래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고 박용하는 KBS드라마 <겨울연가> 출연을 계기로 일본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던 스타였고, 이 드라마가 중국에서도 인기를 꽤 얻었기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운집해있는 이대 앞 골목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류스타의 노래를 듣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고 박용하의 ‘처음 그날처럼’이 2015년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 다시 대중에게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슈가맨> 덕분이기도 하다. ‘처음 그날처럼’과 함께 소개된 고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도 꾸준히 리메이크될 만큼 유명한 노래이지만, <슈가맨>을 통해 주요 음원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라간 것을 보면 역시 방송의 힘은 강하고도 무섭다.

▲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슈가맨>이 파일럿 형식을 통해 첫 선을 보일 때만 해도, 출연한 가수들의 이름이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긴 하였지만 정작 노래 자체는 파급력을 갖지 못했다. 이제 막 돛을 올린 터라 컨셉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어수선한 분위기도 한 몫 하긴 했고, ‘원 히트 원더’에 집중한 터라 왕년의 히트곡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노래를 소개한 것도 패착의 원인 중 하나였다.

그래서 정규편성된 <슈가맨>은 ‘원 히트 원더’만을 찾는 대신, 한때 큰 인기를 얻었지만 지금은 활동이 뜸한 가수들과 노래를 소개하는 컨셉으로 탈바꿈한다. 그러니 짧은 전성기를 뒤로 하고 홀연히 사라진 가수들을 재조명한다는 프로그램 기획의도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만큼 우리나라 가요계에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가수들이 많았고, 그들이 다시 가수로 무대로 선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지난 22일 방영한 <슈가맨>에서 슈가맨으로 등장한 가수는 SBS드라마 <야인시대> 메인 OST ‘야인’을 부른 강성과 ‘잘가요’의 정재욱이었다. 임도규로 개명한 강성은 ‘야인’ 하나만 성공한 ‘원 히트 원더’ 조건에 부합하지만 배우로 전향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 중이고, 정재욱은 ‘잘가요’ 외에도 ‘어리석은 이별’, ‘다음 사람에게는’, ‘가만히 눈을 감고’ 등 다수의 히트곡을 낸 가수다.

▲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그러나 가수로서 활동이 뜸하고, 노래의 유명세에 비해 가수의 이름과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어서 이들은 슈가맨으로 선정되었고, 한때 그들의 노래를 즐겨 들었고 아픔을 위로받았던 이들에게 의미 있는 추억 여행을 선사했다. ‘원 히트 원더’만 찾기보다 과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노래를 재조명하는 데 주력하니, 시청자들의 호응도도 나날이 높아진다. 여기에 타고난 진행 능력에,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까지 갖춘 유재석, 유희열이 환상 콤비를 이루며 음악뿐만 아니라 예능으로서 재미까지 살아났다.

유재석의 첫 종편 출연으로 주목받았지만, 프로그램 초반까지만 해도 잘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으로 가득하던 <슈가맨>은 이제 JTBC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슈가맨>이 제법 빠른 시간에 인기 예능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유재석, 유희열의 탁월한 진행 능력과, 회가 거듭할수록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슈가맨>의 발 빠른 변화에 있었다.

파일럿 당시 방청객 없이 출연자들만의 소소한 추억 여행으로 시작했던 <슈가맨>은 이제 100명의 방청객들과 함께 노래에 관한 추억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보다 큰 공감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또한 <슈가맨>의 타켓인 90년대~2000년대 초반 노래를 잘 알지 못하는 50대 방청객 대신, 과거 히트곡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기발한 감각으로 노래를 받아들이는 10대 방청객을 섭외하여, 중장년층보다 젊은층 사이에서 반응이 좋은 <슈가맨>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고자 한다.

▲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프로그램이 첫 닻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기획의도는 좋지만 산만한 구성으로 지적받았던 <슈가맨>은 이제 <무한도전-토토가>와는 좀 다른, 즉 <무한도전-토토가>에 나올 정도로 빅스타는 아니지만, 가수로서 인기를 모았던 이들을 스튜디오에 불러들이고 시청자들에게 그들의 히트곡을 들려준다.

‘역주행’을 이유로, 프로그램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슈가맨으로 등장한 원곡 가수보다 그들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쇼맨들에게 더 많은 스포라이트가 집중되는 듯한 <슈가맨>에 대한 아쉬움이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꾸준한 포맷 변화로 음악 예능으로서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든 <슈가맨>은 과거 노래를 사랑하고 여전히 즐겨듣는 시청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프로그램이다.

<슈가맨>의 이 의미 있는 시도가 좀 더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초반의 우려를 딛고, 지금은 <무한도전-토토가>와는 또 다른 올드 가요 재조명 프로그램으로 꾸준히 입소문을 타고 있는 <슈가맨>. 역시 유재석의 선택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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