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만평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안철수 의원의 행보가 ‘서방질’로 묘사됐다. 한겨레는 ‘남성’인 안철수 의원을 굳이 여성으로 그렸고 ‘서방질’이라는 표현을 동원했다. 마지막에 물음표를 붙이긴 했으나, 이러한 표현으로 강조하고 싶은 맥락이 무엇인지는 명확해 보인다.

22일 한겨레 지면에 실린 만평의 내용이다. 안철수 의원이 지지율을 부여잡고 “전남편만 아니면 다 좋아요”라고 말한다. 그 앞의 중년 남성은 ‘호남 패권주의 세력’으로 적시돼있다. 안철수 의원이 ‘신당창당’을 선언한 천정배 의원 등 야권으로 분류되는 새정치민주연합 외곽의 조직들과의 연대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도 문재인 대표 중심의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있는 모습을 비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보도에 따르면,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 “혁신을 거부한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통합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발언했다.

▲ 12월 21일자 한겨레 만평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보이는 안철수 의원의 행보에 대해서는 ‘야권분열’이라는 비판과 ‘제3정당 건설’이라는 기대감이 엇갈린다. 한겨레는 안철수 의원의 행보를 비판하기 위해 전 남편에게 실망해 다른 남성을 찾는다는 식의 구시대적 구도를 재현한 걸로 보인다. 실제 만평 끝자락에는 ‘<20년 전 만평에 나올 만한 상황>’이라는 꼬리표도 붙어 있다.

문제는 이 만평의 내용이 반 여성, 반 인권적이라는 점이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이윤소 사무국장은 “한겨레는 남성인 안철수 의원을 ‘여성’으로 그렸다”며 “부정적인 대상을 여성 혹은 약자에 비유해 비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만평은 그런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윤소 사무국장은 “사회적 약자, 여성을 그만큼 얕잡아 본 것이다. 약자를 비하하는 것으로 쉬운 비유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는 시각이 드러난 것”이라면서 “현재 야권의 상황을 왜 서방질로 표현했는지를 모르겠다. 그 비유 자체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치적 논쟁을 위해 사회적 약자 혹은 여성을 비하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인식이다. 이런 인식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서방질’이라는 표현은 “자기 남편이 아닌 남자와 정을 통하는 짓”이라는 뜻으로 과거 여성에게만 과도하게 강조돼왔던 순결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이윤소 사무국장은 “만평이라고 하는 것은 풍자와 해학을 중시한다. 그런데, 이 만평은 불쾌감만 생긴다. 하나도 안 웃기다”고 평가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는 한겨레 만평에 대해 “그동안 여성을 부정적인 상황에 빗대어 표현했던 상투적인 여성비하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며 “이 같은 표현들은 다수의 언론들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만큼 경계가 필요하다. 특히, 한겨레라는 진보언론의 경우에는 더욱 주의해야할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 만평에 대해서는 ‘지역 차별’이라는 관점에서의 비판도 나온다. 명숙 활동가는 “한겨레 만평을 보면, ‘호남 패권주의’라는 표현이 등장한다”며 “호남 세력이라고 해도 충분히 의도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텐데 굳이 ‘패권’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호남’ 지역에 대한 차별의 관점에서도 살펴볼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홧김에 서방질한다’라는 말은 속담이다. 사전에는 “울분을 참지 못하여 차마 못할 짓을 저지른다는 말”로 해설돼 있다. 하지만 굳이 특정 계층, 그것도 사회적 약자로 평가받는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까지 이 속담을 활용해야 했을지 의문이다. 만평은 한 컷의 만화를 통해 사회현상을 통렬히 꼬집는 비평적 예술 활동이다. 이 만평이 불편함을 줘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 한겨레는 안철수 전 의원을 겨냥했겠지만, 의도와는 달리 그 만평에 사회적 약자들이 불편함을 호소한다면 그건 어떤 부분에서든 문제라는 얘기다.

한 언론계 종사자는 “그 만평이야 말로 20년 전에 나올 만한 것 아니냐”고 혹평했다. 과연, 이런 비판이 틀렸다고 한겨레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결과가 옳다고 해서 그 과정이 무시되어도 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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