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이 이른바 ‘닥본사’(닥치고 본방사수)가 아닌 VOD로 방송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이 확산되면서 VOD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종합유선방송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MBC는 △유료VOD 매출 200억원 중 130억원 △무료VOD 연간사용료 50억원 △무료VOD 광고매출의 16.5% 등을 케이블에서 가져갔다. 업계는 VOD 시장이 앞으로도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방송시청행태를 분석한 결과, TV 시청자 중 VOD 이용자는 2011년 5.23%에서 2014년 19.79%로 늘었다. 시청자 다섯 중 한 명은 VOD를 시청 중이라는 이야기다. 업계에서는 2017년이면 VOD 산업이 극장 매출(2014년 1조6천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VOD는 박리다매 상품이어야 하나, 지상파는 정반대 전략을 택했다. ‘가격’을 인상한 것이다. 지상파는 각각 5개 인기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일주일 동안 1500원(부가세 별도)의 가격을 책정했다. VOD 한편이 팔릴 때마다 지상파는 이중 65%를 챙긴다. 지상파 인기프로그램 VOD 한편 당 500원 가량을 챙기는 유료방송플랫폼은 지상파방송사를 메뉴 최상단에 편성하고 이를 도왔다. 지상파 콘텐츠를 활용해 ‘수수료’를 얻는 것이 플랫폼에게도 이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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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의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지점은 홀드백(유료기간) 기간 3주가 지난 뒤다. 이용자들은 이때부터 무료로 지상파 VOD를 시청할 수 있으나, 알고 보면 진짜 공짜는 아니다.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연간 사용료를 지상파방송사에 건넨다. 이 비용은 가입자의 이용요금에 녹아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지상파는 올해 무료VOD 대가를 ‘가입자당 대가’(CPS)로 전환하고 CPS 93원을 달라고 압박하고 있다. IPTV의 경우, 벌써 이 같은 방식으로 지상파와 협상을 끝냈다. 케이블은 비용 문제 때문에 지상파에 저항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11월 말 디지털케이블 가입자의 VOD 서비스가 중단될 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유료방송플랫폼을 등에 업고 지상파의 VOD 가격 인상 전략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 VOD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이블TV VOD(대표이사 최정우)가 22일 미디어스에 공개한 ‘2015년 방송프로그램 VOD 매출 순위’(11월 말 기준)를 보면, 상위 25개 프로그램 중 22개가 지상파 프로그램이다. 사실상 방송프로그램 VOD 매출을 싹쓸이한 셈이다. MBC 예능 <무한도전>이 매출 1위를 기록했고, 2위는 SBS 드라마 <돌아온 황금복>, 3위는 KBS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다.

비지상파 콘텐츠 중에는 JTBC, CJ E&M tvN의 프로그램이 이름을 올렸다. JTBC 드라마 <청담동 살아요>는 12위, tvN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은 21위, JTBC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는 22위다. JTBC는 홀드백이 일주일이고 VOD 가격이 천원(부가세 별도)이기 때문에 매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보인다. tvN은 인기프로그램의 재방비율이 높기 때문에 매출 순위에서 밀린 것으로 분석할 수 있는데, CJ E&M에 따르면 <오 나의 귀신님>(16부작)은 회당 5번을 재방송했다. CJ는 일부 인기프로그램 본방을 내보낸 직후 재방송을 내보내는 편성전략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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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비지상파 콘텐츠가 상위권에 진입하는 추세를 부정할 수는 없다. 케이블TV VOD는 “올 한해 방송 콘텐츠 부문에서 가장 큰 변화는 비지상파 프로그램의 순위권 진입을 들 수 있다”며 “방송 콘텐츠 전체에서는 MBC <무한도전>이 1위를 차지했지만 방송 콘텐츠에서 가장 큰 상승세를 기록한 것은 CJ E&M, JTBC 등의 비지상파 콘텐츠였다”고 설명했다.

케이블 VOD 매출 순위는 시청자들은 지상파 콘텐츠를 찾고, 지상파가 플랫폼에 강한 협상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러나 플랫폼사업자들이 갈수록 덩치를 키우고, 업계가 KT와 SK로 재편되면 지상파의 협상력은 낮아진다. 지상파의 첫 경쟁자들인 CJ와 JTBC의 콘텐츠 경쟁력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이들의 인기프로그램 광고단가는 이미 지상파 수준을 뛰어넘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까닭에 지상파가 앞으로도 VOD 매출을 쓸어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는 어렵다. 특히 플랫폼과의 협상력이 역전된다면 지상파는 진짜 N분의 1이 된다. 그럼 비슷한 문제가 다시 발생한다. 가격을 올릴 것인가, 내릴 것인가. 지상파가 가야 할 길은 가격을 내리고 메뉴 최상단의 위치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질 높은 시사보도프로그램, 인기가 오래 가는 예능과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내는 요금은 방송제작 선순환을 위한 ‘펀딩’으로 대해야 한다. 지금처럼 가격을 인상해 매출을 늘리는 데 집중하면 진짜 장사꾼 취급을 받게 된다.

▲ 2015년 디지털케이블TV의 방송콘텐츠 매출 순위. 케이블, IPTV, OTT 등 플랫폼별로 매출 순위는 다를 수 있다. (자료=케이블TV V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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