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 23회는 조선창업의 가장 큰 정당성을 이야기했다. 바로 중국 하, 은, 주나라에서 실시된 토지제도인 정전제였다. 분이 그리고 이방지가 정도전을 도와 조선창업에 가담하게 된 것도 다름 아닌 고려 권문세족의 토지 독점으로 백성이 먹고 살 길이 없는 현실 때문인 것처럼, 백성들로부터 역성혁명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이상을 선택한 것일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정도전과 이성계의 이상과 욕망을 둔 황금계약일지도 모를 일이다.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조선을 주는 대신 백성들이 굶어죽지 않을 정전제의 도입을 꿈꿨을 것이다. 물론 정도전의 꿈은 너무도 이상적이라 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치열한 반대와 방해를 받을 수밖에는 없다. 그것이 23회 끝부분에 그려진 조준의 연구서를 둔 하륜과의 쟁탈전이었다.
다만 아쉽다면 길선미가 동생 길태미를 그토록 안타깝게 바라봤으면서도 이방지와 적대적 관계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만일의 경우 길선미가 정도전의 편에 섰다면 비록 감정은 복잡할지라도 이방지와 서로 칼을 겨누는 사이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결코 섞일 수 없는 두 무사가 한 진영에서 겪어야만 하는 감정의 변화도 흥미를 줄 수 있겠지만 작가는 이 둘의 칼을 부딪치게 했다.
물론 길선미가 끝까지 이방지의 적으로 남을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가 있고, 그것도 역사의 격랑 속이라면 그 변수는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어쨌든 박혁권의 길선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육룡이 나르샤에 좀 더 재미를 갖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길선미가 등장하고 나니 이방지가 조준의 문서를 강탈해가던 무리들에게 뱉은 말의 의미가 더욱 재미를 더했다. 이방지는 삼한제일검으로 등극한 극강의 고수답게 순순히 짐을 내려놓고 가라고 타일렀다. 피를 보고 싶지 않다는 은근한 협박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아랑곳 않고 달려드는 무사들을 보며 이방지는 “하, 제일검이 돼도 덤비는 건 똑같네”라며 탄식했다.
무휼은 속으로 놀라며 말했다. “내가 힘에 밀리다니” 길태미의 무술에 무휼을 능가할 힘을 가졌다면 이방지로서도 장담할 수 없는 상대라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길선미는 무휼에 이어 이방지를 상대할 때도 아직 칼을 칼집에서 뽑지 않은 상태였다. 이것은 더 고수거나 아니면 아직은 누구의 피도 보고 싶지 않다는 암시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신비함을 더해주는 설정이다. 과연 돌아온 박혁권의 길선미는 이방지와 어떤 긴장의 케미를 보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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