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넘버 쓰리’는 SBS가 아니다. KBS(5994명), MBC(2154명)에 이어 직원 수가 1383명인 아웃소싱업체 크릭앤리버코리아다. SBS(1081명)보다 직원 수가 많다. 이 업체와 함께 미디어업계 아웃소싱업계 빅3로 꼽히는 프리머스HR, 엠제이플렉스의 기간제 노동자는 총 2426명이다. 이강택 KBS PD(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는 21일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열린 <노동 5개 법안 시민․전문가 공청회>에서 “2007년 파견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언론사 종자 직종 상당수가 파견허용업종에 추가됐다”며 “이후 실제로 방송업계를 중심으로 파견 노동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사례는 숱하다. 일례로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실에 따르면, MBC는 2013년 2월부터 2015년 9월까지 160명(신입 20명 포함)의 정규직을 채용하는 동안, 1328명의 비정규직을 채용했다. 이중 파견노동자는 무려 1128명이다. 이강택 PD는 “실제로 JTBC는 보도국에 경력직 PD를 파견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있으며(엠제이플렉스와 계약), CJ E&M은 tvN 예능프로그램에 경력 6년 이상의 PD를 파견계약직으로 채용(크릭앤리버코리아와 계약)하고 있다”며 “지상파 방송사 자체제작인 교양프로그램의 경우, 책임PD(CP)만 본사 정규직이고 PD 2명은 자회사, 서브작가 4명과 막내작가 1명은 프리랜서, FD 2명은 파견직으로 고용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KBS의 한 예능프로그램 PD가 7명이다. 카메라 14대 쓴다. 출연자별로 한대씩 붙고 ENG도 붙는다. KBS의 카메라맨은 단 한 사람도 없다. 6대는 VJ, 특수고용노동자다. 나머지는 도급이다. 작업과정으로 보면, 작가 7명인데 메인작가는 처우상 프리랜서로 볼 수 있다. 나머지 6명은 특고다. 조명 3명, 동시녹음 3명은 모두 도급이다. FD 2명, 행정 1명은 파견이다. 편집 3명, 음향까지 전체 제작진 42명인데 실제 정규직 7명이고 나머지는 파견 또는 용역이다. 예능프로그램이라서 그럴까? 아니다. 매일 아침 하는 교양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KBS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 시간씩 나간다. 본사 PD는 딱 한 명이다. 외주PD가 요일별로 5명이고, 카메라 5대도 모두 외주다. 실제 녹화할 때 보면 관리감독하는 CP 1명과 시설 관리하는 엔지니어 4명만 정규직이다. 나머지는 전부 외주다.” _이강택 KBS PD

▲ 이강택 KBS PD는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등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개최한 <노동관련 5개 법안에 대한 시민·전문가 공청회> 토론자로 참석해 언론계의 파견 문제에 대해 토론했다. (사진=미디어스)

방송사 특성사 업무가 분절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들 방송사가 내부의 노동을 외주화하는 수준은 심각하다. 특히 언론사의 새로운 영역은 대다수 ‘파견’이나 ‘도급’으로 채워지고 있다. MBC 뉴미디어국에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인력의 80% 이상은 ‘외주업체’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도 MBC 등은 시사프로그램․뉴스프로그램의 작가 등을 간접고용하고 있다. ‘불법파견’ 논란을 피하기 위해 취재작가 등을 ‘팩트체커’나 ‘리서치’라는 이름으로, 파견업체를 통해 간접고용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을 맡고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 이만재 활동가는 “현행법상 작가는 파견 허용 업무가 아닌데 방송사들은 ‘이름’을 바꿔 불법파견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 수차례 ‘처리해 달라’ 요구한 노동 5개 법안 중에는 언론사 내 파견을 확대하는 ‘파견법 개정안’이 있다는 점이다. 이 법의 핵심은 뿌리산업까지 파견을 대폭 허용하고, 전문직에 대한 파견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를 두고 “중장년 일자리 창출법”이라며 국회 처리를 촉구하고 있는데, 여권 일각에선 대통령의 긴급명령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으나, 정부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체포하고 구속하면서까지 노동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어떤 수단으로든 노동 관련 법안들을 처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언론은 파견법 개정안 등 노동 5법 문제를 오로지 대결구도로 다루고 있다. 법안 자체에 대한 비판담론은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파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언론사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지만 여전히 ‘남일’이라는 정서가 강하다. 언론사는 이미 간접고용 천국으로 불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내놓은 통계를 종합하면 간접고용 비율은 4.5%인데, 주요방송사와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의 간접고용 비율은 14.6%다. 이강택 PD는 “자회사 인력 및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된 인력 등이 누락되었기 때문에 실제 언론사의 비정규직 비율은 훨씬 높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파견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기자와 작가는 파견 허용 대상이 된다. 개정안은 한국표준직업분류 대분류 코드 1(관리직), 2(전문직)에 해당하는 업무를 일부 소득기준 이상만 충족하면 기간제한 없이 파견할 수 있게끔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분류코드는 1821, 리서처나 팩트체커 같은 작가관련 전문가의 코드는 1829, 기자는 18291이다. 모두가 허용 대상이다. 이강택 PD는 “언론사 사업자는 사내 모든 업무에 파견직을 채용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에는 2015년 기준 ‘연 5600만원 이상’에만 파견을 허용한다고 돼 있으나, 이강택 PD는 “소득기준이 그대로 법제화된다고 하더라도 방송업계에 종사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기준에 부합하는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사업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파견직을 고용해 정규직 결원을 대체할 것”이라며 “정규직만이 아니라, 프리랜서마저 파견직으로 전환되는 매우 기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가 모법에 소득기준 등을 제시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득기준은 ‘시행령’으로 넘어가고, 재계의 요구에 따라 그 기준이 낮춰질 가능성이 크다.

이강택 PD는 “(파견직 고용 확대는)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 지침’ 및 ‘일반해고 지침’과 패키지로 작동해 정규직 노동자 퇴출에 악용될 수 있다”며 “노동조합이 없거나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한 사업장은 물론이고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이 있더라도 노조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변경해 노동조건을 열악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장기근속 저성과자의 경우 55세 이상 고령자 파견 전면 확대조항을 이용해 임금피크제가 도입됐을 때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고, 노조의 교섭력이 약한 경우에는 ‘파견으로 돌리겠다’는 식으로 임단협에서 기존 임금 및 노동조건을 하락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강택 PD는 “최근 MBC의 사례만 하더라도 사측이 비정규직을 고용해 노조 조합원들이 맡았던 업무를 하게함으로써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고 언론 공공성을 크게 무너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업자 입장에서는 프로그램 제작비가 오히려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작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인건비가 매우 적게 드는 파견직 고용을 늘릴 수밖에 없다”며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자사의 수익확대 추구 논리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 독립성, 공공성, 시청자주권 등 언론 공공성의 핵심가치들이 언론사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내부 파견직과 외주제작분야의 프리랜서들의 열악한 노동권 문제가 지속적으로 묵인되거나 은폐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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