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천변살롱>에서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무대에서는 ‘왕서방연서’를 맛깔나게 부르는 가수가 있다. 그의 이름은 하림. 극 중 모단이 조르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만요 ‘왕서방연서’를 부르지만 그가 부르는 만요의 맛이 귀에 착착 감긴다. 오죽하면 커튼콜 때, 모단이 부른 만요가 아니라 어느 때에는 하림이 부른 ‘왕서방연서’가 앵콜곡으로 등장할 정도이다.

여기, 하림이 초연에 이어 재연에도 무대에 오른 이유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로 담아보았다.

-<해지는 아프리카>를 10월과 11월에 연 데 이어 쉴 틈 없이 <천변살롱>에 합류했다.

“가수로 서는 무대가 있고 배우로 서는 무대가 있는데, 배우로 서는 무대는 신성하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천변살롱>을 시작으로 <집시의 테이블>로 이어지는 짜여진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가수는 혼자 무대에 오르지만 공연은 다른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공동의 작업이다.

<천변살롱> 후 ‘언젠가는 또 하겠지’하고 생각하던 차에 <해지는 아프리카>가 끝나자마자 <천변살롱>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됐다. <천변살롱>에서 제가 하는 역할이 황석정 씨나 호란 씨처럼 비중이 많지 않다. 100년 전 녹음된 아리랑을 찾기 위한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독일 베를린까지 가는 바람에 <해지는 아프리카>를 마친 다음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천변살롱> 연습장으로 올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쓰러질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쓰러지지 않았다. 무대는 한 번 서면 휘발되는 면이 있다. 휘발되는 면에 대한 서운함이 있던 차에 40대를 준비하는 심정으로 흔쾌히 <천변살롱> 무대에 서게 됐다.”

▲ 음악극 <천변살롱> 호란-하림 ⓒ문화기획 함박우슴
-지금 하는 <천변살롱>이 2009년 초연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관객 입장에선 ‘노래도 같고 대사도 같을 텐데 뭐가 다를까?’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천변살롱>은 모노극이다. 모노극이다 보니 여배우에 따라 100% 달라진다. 연습할 때마다 새롭게 하는 기분으로 연습했다.

이전에 호흡을 맞춘 박준면 씨는 뮤지컬 배우로 출발했다. 뮤지컬 배우는 대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본을 칼 같이 생각하고 매 회가 거의 똑같을 정도로 칼같이 대사를 소화했다. 일체의 애드리브도 방해될 정도였다. 노래할 때와 연기할 때의 구분도 뚜렷했다. 하지만 가수는 무대에서 즉흥적인 요소가 강하다. 처음 준면 씨와 호흡을 맞출 때에는 즉흥적인 요소가 준면 씨에게 방해된다는 걸 알고 대본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황석정 씨는 코믹스럽다가 처연하고, 진지하다가도 엉뚱한 식의 다양한 면이 있어서 연습할 때마다 모두 다르다. 무대에 오를 때도 조금씩 달랐다. 대본에 충실하면서도 감정이 다양하게 표현되기에 보는 맛이 있다. 1930년대로 본인을 옮겨놓으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대사와 노래 톤을 들어보면 당시 축음기를 통해 들리는 노래 톤을 그대로 옮기려는 노력이 깃들여 있다.

호란 씨는 가수다. 가수는 무대에 서면 홀로 중심을 잡을 줄 알아야 한다. 호란 씨가 1930년대로 간다기보다는 1930년을 본인으로 끌어온다. 1930년을 흉내 낼 필요가 없이 모단이 1930년대에 있으면 이렇게 할 것이라는, 본인이 소화한 대로 연기하고 노래할 줄 안다. 옛날 노래도 본인에 맞게 소화한다.”

▲ 음악극 <천변살롱> 죽석 역/ 음악감독 하림 ⓒ문화기획 함박우슴
-많은 악기를 건드릴 줄 아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뮤지션이다. 음악적인 호기심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호기심이 많은 것뿐이다. 호기심을 음악으로 푸는 것일 뿐이지 만일 호기심을 음악으로 풀지 않았으면 오디오나 다른 영역으로 호기심을 풀었을 것이 분명하다. 가끔은 호기심을 눌러야 할 때가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호기심이 없어지면 공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악기를 잘 다루는 건 아니다. 호기심을 충족시킬 정도로 다룬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다듬고 싶은 시기다. 악기 연습을 더하고 싶고 이를 모아서 제3의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호기심이 있다. 지금의 가요계는 음반 시장에 끌려다닌 지 오래됐다. 음악가로서 자존심을 지키기 쉽지 않은 부분이 많다. 반대로 무대는 그 어떤 상업적인 논리로도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천변살롱> 작업을 끝낸 후 음악적인 활동은?

“악기를 좀 더 다루고 싶다는 생각은 슬슬 사라지고 있다. 악기에 대한 호기심은 작은 소스만 건드린 거다. 대신 다른 퍼포먼스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다. 이전에는 어떤 음악을 만드느냐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관객에게 보여 드리는가가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세상으로 인해 만들어진다. 음악적인 성취를 이루겠다는 건 인간적인 욕심이지 예술가의 욕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다 많이 관객과 소통함으로 말미암아 관객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관객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