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위원장 이석태, 이하 특조위)는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3일 간 서울 YWCA에서 ‘공개 청문회’를 열었다.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세월호 특별법 취지를 뭉개는 시행령을 발표하고, 극우 인사를 특조위원으로 선임하는 등 정부의 갖은 ‘방해’ 속에서 처음으로 진행한 ‘공식 외부활동’이었다.

당시 사고 수습과 구조 임무를 맡고 있었던 주요 책임자들이 출석해 그간 제기된 의혹을 풀어나가는 자리였음에도, 지상파 방송사들의 관심은 높지 않았다. 생중계는 없었고 보도의 ‘질’을 따지기에 앞서 절대적인 보도량조차 턱없이 부족했다.

KBS·MBC·SBS 지상파 3사 메인뉴스에서 세월호 청문회를 다룬 보도는 3일 간 총 4개에 그쳤다. 그마저도 리포트를 낸 곳은 SBS <8뉴스>뿐이었다.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는 각각 단신 2개, 단신 1개를 보도했다. 길어야 서너 줄인 단신 안에 맥락을 읽을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정보가 담겨 있을 리 만무했다. 그나마 전파를 탄 내용도 세월호 청문회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함’이 아니라, ‘그림이 되는’ 장면에 한정됐다.

KBS <뉴스9>는 14일 <세월호 특조위, 제1차 청문회…해경 대응 질의>, 16일 <이주영 前 장관 “수색 인원 과장 등 책임 인정”> 단신 2개를 보도했다. “참사 초기 구조 상황과 정부 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집중 질의가 이뤄졌다”면서도 정작 어떤 질문이 나왔고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증인들이 무슨 대답을 했는지에는 침묵했다. “정부의 초기 대응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면서도 “이주영 전 장관은 정부 브리핑 등에서 수색 인원 등이 부풀려진 데 대해 집중 질문을 받았으며 이와 관련해 책임을 인정한다고 밝혔다”고만 전했다.

세월호 청문회에 인색했던 지상파 3사가 공통적으로 보도한 것은 ‘파란바지’ 김동수 씨의 자해 시도였다. 김동수 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20여명의 학생을 구해 ‘세월호 의인’이라고 불린 인물이다. 참사 당시 구조를 위해 접근했던 목포해경 123정이 이준석 선장을 구하고 난 뒤 바로 세월호에서 멀어진 이유를 물었을 때, “조류에 밀린 것 같다”고 답한 박상욱 당시 승조원의 답변을 듣고 격분해 자해 시도까지 했다는 사실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지상파 3사는 김동수 씨가 고함을 지르고 자해 시도를 했다고만 보도했지, 왜 그가 사실과 다르니 발언 기회를 달라고 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은 것이다.

KBS 보도는 가장 불친절했다. KBS <뉴스9>는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한 남성이 일어나 발언 기회를 달라고 요구한 뒤 제지당하자 자해를 해, 119구급대에 실려가기도 했다”고만 설명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왜 발언 기회를 달라고 했는지는 드러내지 못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청문회 도중, 학생 여러 명을 구조해 의상자로 지정된 화물차 기사 김동수 씨가 방청석에서 증인들의 답변에 반발하며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다”고 해 김동수 씨가 어떤 사람인지만 알렸다.

SBS <8뉴스>는 “참사 대응 부실 지적에 대한 해경 관계자의 답변”이라고만 소개했을 뿐 박상욱 승조원의 발언에 김동수 씨와 유가족들이 왜 거세게 항의했는지를 담지는 않았다. 3사 중 유일하게 리포트를 선보였으나, 세월호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과 드러난 사실이 아니라 김동수 씨의 자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마찬가지였다.

▲ 4·16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공개 청문회가 열린 3일(14~16일) 동안 KBS, MBC, SBS에서 나간 관련 보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KBS <뉴스9> 14일, 16일 방송, SBS <8뉴스> 14일 방송, MBC <뉴스데스크> 14일 방송

짧은 리포트로도 ‘핵심’ 짚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목포MBC

특조위를 흔들기 위해 새누리당 추천 위원들이 해야 할 행동 지침을 상세히 적어 둔 해양수산부 작성 문건이 나왔는데도, 정부나 새누리당 위원들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오히려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을 조사하는 것에 극구 반대하고 특조위 사퇴 카드를 내보이며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해수부 문건에 나타난 시나리오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여당 추천 위원들이 불참했고, 수사권과 기소권 없이 ‘조사권’만 가진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도 특조위는 분투 끝에 몇 가지 사실을 밝혀냈다. △이주영 전 해수부 장관이 ‘잠수부 500여명 투입 구조’ 발표가 거짓임을 알았음에도 정정하지 않고 침묵한 점 △거짓으로 밝혀진 ‘퇴선명령했다’는 김경일 전 123정장 기자회견을 김석균 전 해경청장이 지시한 것 △검찰 등 국가기관에 낸 해경 간 교신 녹취록에서 일부 내용이 빠진 점 △123정이 참사 초기 세월호 선장과 선원만 구해냈을 때 해경은 이들이 선장과 선원임을 알았을 것이라는 정황이 포착된 점 등이 대표적이다. 사고 당시 책임자들이 “잘 모르겠다”거나 세월호 선장의 역할만을 강조하는 등 청문회 내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지상파 3사는 세월호 청문회를 최대한 축소 보도하며 ‘외면’하기 바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세월호 청문회에 대한 공영방송 KBS와 MBC의 보도에 참담함을 느낀다. 국민의 알 권리를 지키고 재난에 대한 예방과 대책수립에 앞장서야 할 공영방송으로서 최선을 다해줄 것을 요구한다”며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게 스스로 언론인의 사명을 다해 달라”고 당부한 이유다.

물론 이런 와중에도 ‘분투’하며 세월호 청문회의 핵심을 보도하려고 노력한 방송사가 있었다. 바로 목포MBC다. 목포MBC는 14일~15일 각 리포트 1개, 16일 단신 1개로 세월호 청문회 소식을 전했다. 제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2분 안쪽의 짧은 리포트에도 풍부한 내용을 담을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 사례였다.

목포MBC는 14일 <세월호 초동대응 추궁, 해경은 모르쇠>에서 해경 관계자들의 불성실한 답변 태도를 지적했다. 김석균 전 해경청장, 김경일 전 123정장 등 특조위가 신청한 증인 16명이 모두 출석한 점, ‘3층 로비와 방에 있던 승객들은 퇴선명령만 있었어도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다’는 화물기사의 발언, 청문대상으로 출석한 김수현 전 서해청장이 ‘혈압 상승’을 이유로 병원으로 이송된 것 등이 나왔다. KBS에서는 한 줄 언급도 없었던 ‘세월호 여당 추천 위원들의 불참’도 전해졌다. 목포MBC는 박상욱 승조원의 설득력이 부족한 답변 때문에 장내가 소란해졌고 김동수 씨도 격분해 자해에 이르렀다는 점을 분명히 짚었다.

15일 방송에서는 대통령이 참사 7시간이 지난 뒤에도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발견하기 힘드냐’며 사고 상황과 동떨어진 발언을 한 데에는, 해경과 중앙대책본부의 ‘잘못된 보고’ 때문이었다는 정황을 보도했다. 목포MBC는 △대통령에게 보고됐던 중대본 자료가 수차례 수정된 점 △구조를 위해 잠수사 500여명을 투입했다는 해경 발표가 거짓이었다는 점(잠수한 인원이 아니라 ‘동원된 모든 인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답변) △이틀째 여당 추천 위원들이 불참했고 정치권의 관심도 부족해 유가족만이 방청석을 채웠다는 점 등 2일차 청문회의 주요 사항을 꼼꼼히 보도했다.

청문회 마지막 날인 16일, 목포MBC는 리포트 대신 분량이 긴 단신을 내보냈으나 ‘정부가 구조상황을 과장했다’는 유가족들의 증언, 해경에게 선체 도면 등 정보와 장비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다는 민간잠수사들의 증언, ‘과장된 발표와 허술한 지원’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이주영 전 해수부 장관의 인정 발언 등을 빠짐없이 전했다.

▲ 목포MBC <뉴스데스크> 14~16일 방송 화면

사과와 반성 잊은 지상파, 계속될 ‘보도 참사’

TV의 시대는 저물었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지상파 방송사들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크다. 오마이TV, 팩트TV, 416TV(유가족들이 만든 방송), 주권방송 등이 인터넷방송을 통해 청문회 전 과정을 생중계해 공백은 메웠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이 가세했다면 더 높은 관심 속에 ‘감시 활동’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정부의 무능력과 무기력이 키운, 304명이 목숨을 잃었던 대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활동은 두 말 할 것 없는 ‘공적 관심사’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사들은 세월호 청문회를 ‘보도 가치 없는’ 사안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3월, 9월 청와대 주재로 열렸던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앞 다투어 생중계한 ‘적극적’인 모습과는 딴판이다.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등 오보와 정부 ‘입’에만 의존했던 보도에 고개를 숙였던 지난해의 ‘반성’ 역시 이미 잊힌 기억인 것처럼 보인다. 3일 중 방송사 카메라들이 가장 ‘뜨거운 취재 열기’를 보인 때는 청문회 첫 날 일어난 김동수 씨의 자해 시도 때였다. 청문회의 ‘알맹이’에는 무관심하다 가장 ‘그림이 될 만한’ 장면에만 몰려드는 방송사 카메라에 “찍지 말라!”고 한 유가족들의 일갈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세월호 청문회 모니터링 보고서를 통해 이번 언론 보도를 한 마디로 정리했다. “부실한 참사 대응과 꼬리 자르기식 책임자 처벌, 의혹투성이의 사건 은폐 정황 등 정부의 불의와 패악을 숨기기 급급했던 언론의 ‘보도 참사’는 이번 청문회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를 향한 ‘보도 참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청문회 2일차까지 ‘청문회가 열렸다’ 정도의 단신 1개로 버티던 KBS는, 마지막 날이니 메인뉴스에서 마무리 보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협회장의 제안을 ‘월권 행위’이자 ‘편집권 침해’라며 차단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 보도를 선도하기는커녕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난에 직면한 ‘대표 공영방송’ KBS의 이 같은 대응은, 지상파 방송이 ‘세월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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