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10일 방통심의위 전체회의에서 ‘박근혜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에 대해 과도하게 제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JTBC <뉴스룸>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관련해 뉴욕타임스 사설을 인용하면서 날짜를 잘못 표기한 것에 대해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이 중징계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야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JTBC에 중징계를 할 수 있지만, 제발 형평성에 맞게 심의를 하자’고 푸념한 것이다. 이는 방통심의위가 정부여당에 우호적인 TV조선·채널A에 대해 봐주기 심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판단이 전제된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크게 반발했다. 박효종 위원장은 JTBC에 ‘주의’ 징계를 밀어붙이면서 “이번에 ‘주의’를 주면 (같은 선상에서 안건에 대해서도) 다음에 ‘주의’ 제재가 돼야 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16일 방송심의소위에서도 이중잣대 심의는 계속됐다.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은 지난 8월 2일 ‘야당의 X맨’이라는 주제로 특정인에 대한 순위를 매기는 내용의 방송을 진행했다. 이들은 세월호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을 5위로 꼽고 “돈을 펑펑 썼다”, “1년 예산으로 160억을 신청해 논란이 됐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 8월 2일 방송 캡처

이 프로그램에서 이봉규 씨가 내놓은 발언들은 사실과 달랐다. 야당 추천 장낙인 상임위원은 “그 발언 듣고 깜짝 놀랐다. 아직 (예산이) 편성된 것도 아닌데 돈을 어떻게 펑펑 쓸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실제 당시 세월호특조위는 예산편성이 되지 않아 업무가 마비된 상태였다. TV조선 방송 내용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4조(객관성)를 위반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까닭이다. JTBC <뉴스룸> 역시 뉴욕타임스 사설 날짜 오기로 객관성 위반이 적용돼 중징계(주의)를 받은 뒤였다.

JTBC에서 ‘의도성’ 찾더니, TV조선에는 “실수였을 것”

그렇지만 이날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에 대해 시종일관 ‘방어’ 논리만 제기했다. JTBC <뉴스룸>이 ‘의도를 가지고 사설 날짜 표기를 잘못했을 것’이라는 등 추측성 심의는 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정부여당 추천 고대석 심의위원은 “제가 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다”며 “이봉규 씨가 세월호특조위 예산편성 발언은 실수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고는 TV조선 측의 ‘1년 예산을 160억 신청했죠’라는 말이 “(이봉규의 돈을 펑펑썼다는 말을)바로잡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함귀용 심의위원 또한 “(160억 예산을 신청한 것에 대해)다른 언론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많이 나와 논란이 됐었다”며 “집행이 되지 않은 게 있는데, 이봉규 씨가 착각을 한 것 같다. 그래서 곧바로 바로잡지 않았느냐”고 동조했다.

‘1년 예산으로 160억을 신청해 논란이 됐다’라는 표현이 ‘돈을 펑펑썼다’는 말을 바로잡았은 것으로 해석하는 게 옳을까. 장낙인 상임위원은 정반대로 해석했다. ‘160억’이라는 액수를 부각해 이봉규 씨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발언으로 봐야한다는 뜻이었다. 당시 세월호특조위 예산의 과다편성 근거로는 ‘생일격려금’ 등 제기됐지만 이에 대해서는 기획재정부 지침에 따라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체육활동비 등과 함께 책정되는 성격의 예산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에서 이 같은 사실관계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것이야 말로 정부여당이 늘상 문제로 지적하는 ‘비난을 위한 비난’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의 ‘문제없음’ 주장은 계속됐다. 함귀용 심의위원은 “세월호특조위가 구성되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게 제대로 된 평가인지는 몰라도, 월급은 소급해서 다 받은 것 아니냐”며 “국민들이 낸 세금, 국가예산인데 어떻게 일도 안하고 월급으로 받아 가느냐. 1월부터 9월까지 일을 했느냐. 일 안하고 월급은 타갔으니 ‘펑펑’썼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가 된 대목은 ‘우스갯소리’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함귀용 심의위원은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과 관련해 “이 프로그램은 순위를 매기는 코너가 있다”며 “이(야당의 X맨)뿐 아니라, 정부의 실정이나 북한의 이야기 등도 나름대로 순위를 매겨 우스갯소리 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 정도를 가지고 정색을 하고 달려들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TV조선은 ‘우스갯소리’라더니, 복면금지법 정치풍자에는 “도 넘었다”

이런 주장들은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오히려 이날 ‘정치풍자’에 대해 정색한 쪽은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이었다. TBS교통방송 FM <배칠수 안영미의 9595쇼> ‘나는 짐이다’ 풍자사극 코너에서 복면금지법과 관련해 “헬멧을 쓰고 진압하시는 분들 중에도 위험한 사람이 섞여 있을 수 있으니, 헬멧을 벗겨야 한다”고 풍자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와 관련해 함귀용·고대석 심의위원은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결국 방통심의위는 고작 그 정도의 정치풍자에 대해서도 행정지도 제재를 결정했다. 정부여당이 도입을 추진하는 ‘복면금지법’은 집회·시위에 참가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폭력을 휘두른다는 이유로 전체 집회 참가자에게 복면착용을 금지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 TBS 교통방송 FM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

하지만 집회·시위에서 경찰도 폭력을 행사한다.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농민 백남기 씨는 경찰이 직사로 쏜 물대포를 맞아 중태에 빠졌다. 경찰은 성의있는 해명과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 인권운동가들은 공무를 수행하는 의무경찰들이 제대로 된 식별표식을 부착하지 않고 있다고 문제제기 하고 있다. TBS의 ‘헬멧’ 풍자는 이런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문제가 된 TV조선 <정치옥타곤>과 JTBC <뉴스룸>, TBS <배칠수 안영미의 9595쇼> 내용의 차이는 정부여당에 대한 유리한 내용인지, 불리한 내용인지 정도에서만 드러난다. 이에 따라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의 심의와 제재수위가 널을 뛰니 ‘이중잣대’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JTBC에 대해서는 표적심의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도 그랬다. JTBC <비정상회담>에서 기미가요가 5초 노출된 것에 대해 정부여당 추천 함귀용·고대석 심의위원은 ‘관계자징계’(벌점4점) 의견을 냈었다. 그런데, MBC <일밤> ‘진짜사나이’ 코너에서 일본 군가가 배경음악으로 17초 간 사용됐고 출연자의 주민등록번호 노출 문제까지 지적됐음에도 두 심의위원은 ‘주의’(벌점1점)를 주장했다. 이중잣대라는 관점이 아니면 설명이 힘든 대목이다.

방통심의위 ‘이중잣대’ 논란은 오래된 문제다. 정부여당 추천 대 야당 추천이라는 ‘6대3’ 구조는 이를 고착시켜왔다. JTBC <뉴스룸>의 뉴욕타임스 사설 날짜 오기에 중징계 의견을 냈던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최근 문제가 된 채널A의 표기오류 등에 대해서는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채널A <뉴스스테이션>에서 ‘위수령은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팩트와 다른 이야기가 여러 차례 나왔지만 행정지도 ‘권고’로 의결된 것이다.

▲ 10월 30일 채널A <시사 인사이드> 캡처.
채널A <시사인사이드>는 한국갤럽에서 실시한 ‘대통령 직무수행평가’에서 “잘못하고 있다”는 비율이 감소한 것을 두고 “국정화 찬성여론 증가”라는 과도한 해석이 들어간 자막을 띄우기도 했다. 그런데도 채널A는 행정지도 ‘권고’ 제재를 받았다. 이중잣대라는 지적에 정부여당 추천 고대석 심의위원은 “단순히 자막 하나 잘못 띄운 거 가지고…”라고 말했다.

이날 문제가 된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의 경우 제작진에 대한 ‘의견진술’이 결정됐다.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과 야당 추천 심의위원들의 의견이 크게 갈리자, 방송심의소위 김성묵 소위원장이 “의견진술을 들어보고 문제가 없으면 문제없음으로 가자”고 결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의견을 들은 이후 JTBC 등과 형평성에 맞는 제재수위가 결정될지는 미지수다. 이미 정부여당 추천 함귀용·고대석 심의위원은 강력하게 ‘문제없음’을 주장했다.

박효종 위원장에게 묻고 싶다. “이번에 JTBC에 ‘주의’를 주면 (같은 선상에서 문제들도) 다음에 ‘주의’ 제재가 돼야 한다”고 했는데, 그 약속이 지켜지기는 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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