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이윤석 씨가 TV조선 <강적들>에 출연해 한 발언이 논란이다. 야당을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를 ‘전라도당’, ‘친노당’이라는 표현을 써 설명한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지역차별’, ‘전라도폄훼’ 등 자극적인 표현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종편 ‘TV조선’이나 ‘채널A’ 시사토크에서 그 정도의 표현은 그동안 수도 없이 사용돼왔다. 과거 변희재 씨는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해 호남지역을 두고 “민주당의 포로”, “민주당의 노예”, “정신질환” 등의 표현을 써 제재를 받기도 했었다. 그 당시 발언의 표현수위를 생각해보면 이번 사건이 연예인 ‘이윤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커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TV조선 '강적들'에서 논란이 된 이윤석 씨의 발언 캡처
오히려 이윤석 씨가 TV조선 <강적들>에 출연해 ‘친일파 청산’에 대한 소견을 밝힌 것이 더 문제라는 말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이윤석 씨는 당일 방송에서 “친일파 청산 실패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다만, 지금 와서 환부를 도려내고 도려내다 보면 위기에 빠질 수 있으니 상처를 보듬고, 아물도록 서로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이는 자칫 친일미화로 오인 받을 수 있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건국절 기념’이 논란이 되고 있고 뉴라이트 교학사 교과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등 일련의 흐름이 ‘친일·독재미화’와 연관돼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윤석 씨의 발언은 이러한 흐름의 주요 논리를 구성하는 근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라는 국가적 숙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 발언은 민감한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KBS1 <역사저널 그날> 하차요구도 이어진 이윤석 발언…근거는?

물론, 이윤석 씨가 역사왜곡 논란에서 한 쪽 편에 선 것인지는 그 발언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이윤석 씨의 발언과 관련한 불똥은 KBS1 <역사저널 그날>에까지 튀었다. 현재 <역사저널 그날> 게시판에는 “(이윤석 씨의) 하차를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맞서는 이윤석 씨 응원 글도 많이 올라온다. 결국, ‘역사전쟁’이 <역사저널 그날> 게시판에 그대로 옮겨진 모양새다.

▲ TV조선 '강적들' 이윤석 씨 발언 캡처
이윤석 씨의 하차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그의 성향이 <역사저널 그날>의 프로그램 특성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KBS1 <역사저널 그날>은 역사프로그램이다. 근현대사보다는 이전 시대의 역사적인 날이나 ‘인물’에 더 많은 초점이 맞춰지는데, 지난 7월 일본이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라면서 하시마탄광(일명 군함도)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논의되던 시점에서 <역사저널 그날>은 ‘군함도의 두 얼굴, 숨겨진 진실’(6월 28일) 편을 통해 강제징용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런 프로그램에 이윤석 씨가 출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 KBS '역사저널 그날' 군함도 편 캡처
형평성 논란도 제기될 수 있다. KBS1 <역사저널 그날>은 2013년 10월 방영 전부터 ‘역사논쟁’에 휘말린 바 있다. 뉴라이트 성향의 교학사 교과서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던 주진오 상명대 교수의 출연을 놓고 ‘무기한 방송연기’가 통보돼 제작자율성 침해 논란이 벌어진 사건도 있었다. ‘고종’과 ‘흥선대원군’, ‘명성황후’ 관련 아이템과 관련 전문가를 초청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역사학자들이 주진오 교수를 추천했다. 하지만 주진오 교수가 교학사 교과서에 대응하는 7개 교과서 저자모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논란이 된 것이다. 결국, 주진오 교수가 출연했던 촬영분은 뒤늦게 편성되면서 사태는 봉합됐다.

이윤석 하차 요구로 연결되는 건 위험하다

하지만 이윤석 씨의 발언을 비판하는 것과 방송프로그램 하차 요구는 분리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의 역사·이념 갈등은 그동안 숱한 희생자들을 만들어냈다. 방송 또한 다르지 않다.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1인시위를 진행한 김제동 씨에 대해 SBS <힐링캠프> 방송퇴출 요구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엄마부대봉사단은 “<힐링캠프>를 당장 폐지하고 김제동을 퇴출시키지 않을시 ‘SBS 시청거부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여 나가겠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이윤석 씨에 대한 하차 논란과 논리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이윤석 씨는 KBS1 <역사저널 그날> ‘군함도’ 편에서 일제의 강제징용을 옹호한 바 없다. 오히려 그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는 모습을 보였던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친일파’, ‘일베’ 등으로 매도되는 것은 부당한 부분이 크다.

▲ 김제동 씨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김제동 씨 페북)
KBS는 과거 김미화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갈등을 겪었다. MBC 또한 탤런트 김여진 씨의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출연 무산으로 ‘소셜테이너금지법’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소셜테이너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외수, 공지영, 이효리, 윤도현 등의 TV출연 때마다 시끄럽다. 가수 이승환 씨는 JTBC <히든싱어>에 출연해 “나의 행동이나 발언 때문에 팬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여러분이 나한테 의지한다고 하지만 나도 팬들에게 의지한다”고 발언했는데, 이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상대적으로 친여권으로 분류되는 박상원, 김흥국, 자니윤, 은지원, 최수종, 이순재 씨에 대한 불편한 시선 역시 있다. 논란은 이렇듯 쳇바퀴 돌 듯 반복된다.

문화평론가 진중권 또한 자신의 트위터(@unheim)를 통해 이윤석 씨의 발언과 관련해 “다소 거슬리긴 하나, 하차 요구하거나 그러지 말았으면”이라면서 “표현의 자유는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 이 정도의 발언에 시비를 걸면, 반대편에서도 비슷한 시비를 걸 것이고, 그러면 우린 아무 말도 못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좌파니까’, ‘친일파니까’ TV출연을 금지해야 돼가 아니라, 이제는 ‘연예인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존재인가’를 물어야할 시점이다. 토론과 논쟁을 해야 한다. 방송은 공론의 장을 제공해야할 책임이 있는 공간이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의 방송은 그 같은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이 큰 상황이다. 이윤석 씨의 ‘발언’에 대해 문제를 되짚어 봐야할 부분은 여기에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의 논란에 대해 언론들이 제대로 보도하고 공론의 장을 만들라는 요구가 그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일되는 노동5법 처리 압박에 대해 앵무새 역할만 하지 말고, 그 정당성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이윤석 씨의 ‘친일파 청산’ 관련 발언 또한 그 의미를 정확히 묻고 어떤 방향이 옳은지 토론을 해야 할 부분이다. 그것이야말로 ‘갈등’이 아니라 ‘화합’, ‘통합’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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