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일반적인 영화와는 달리 <인 허 플레이스>에는 주인공의 이름, 고유명사가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여자’와 ‘엄마’, 엄마의 딸인 ‘소녀’라는 세 명의 여자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자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불임에 시달린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여자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은 아이를 입양하는 일.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여자의 반대편에는 아이를 가졌지만 키울 수 없는 소녀와 엄마가 있다. 소녀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만일 아이를 낳고 키운다면 소녀와 엄마는 ‘미혼모’라는 주홍글씨를 새긴 채 주변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여자와, 결혼 전에 아이를 가졌다는 과거를 지우고 싶어 하는 엄마와 소녀의 이해관계는 이렇게 맞아떨어진다. 과연 이 세 명의 이해관계가 영화 속에서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에 대해 관객은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알고 보면 <인 허 플레이스>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처럼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관심을 가진 영화이다. 다양한 해외영화제에서 <인 허 플레이스>에 관심을 가진 것은 물론이려니와, 여자를 연기한 윤다경이 작년 아부다비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영화는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누리기도 했다. <인 허 플레이스>에서 엄마를 연기한 길해연과 여자를 연기한 윤다경을 충무로에서 만났다.

▲ <인 허 플레이스> 엄마 역, 배우 길해연 ⓒ홀리가든
-<인 허 플레이스>가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길해연: “해외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이유는 이 영화를 만든 알버트 신 감독이 독특한 시각으로 영화를 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흔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미스터리처럼 같기도 하고 절제된 연출을 보여준다. 관객으로 하여금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만드는 통제력도 다른 영화와 차별화된 연출이라고 본다.

알버트 신 감독은 동양적인 사고방식을 가졌음에도 서구적인 방식을 합칠 줄 아는 재능을 가진 감독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한국 영화이면서도 외국 영화의 뉘앙스를 풍긴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런 시각의 다양성 때문에 외국의 영화제들이 주목하지 않았나 생각할 수 있다.”

-해외 관객의 반응은 어땠나.

길해연: “<인 허 플레이스>는 우리나라에서 건너갔기에 분명히 외국 관객에게는 외국 영화로 보인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상영했을 때 관객들이 자국인 스페인 영화처럼 같이 호흡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스페인 관객이 받아들이는 호흡이 외국 영화를 감상하는 차원이 아니라 노인 관객도 스토리와 내용을 ‘아름답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한국 같으면 ‘감동 받았어’라고 할 표현을 그들은 ‘울었다’고 표현하더라. 숨겨진 이야기를 영화가 들춰냄으로 외국 관객이 영화 속 아픔을 공감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 있다.”

▲ <인 허 플레이스> 여자 역, 배우 윤다경 ⓒ홀리가든
-윤다경 씨는 아부다비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윤다경: “수상 후보로 낙점되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하고 믿기질 않았다. 영화를 찍을 때만 해도 외국에서 수상하는 건 고사하고 같이 찍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찍었는데, 토론토 영화제가 이 영화를 주목하면서부터 다양한 해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주목하는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모님께선 ‘쟤는 무언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아직도 고생하는 거 아닌가’하고 염려하신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라갔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모님에게 선물을 드린 것만 같아서 감사했다. 여우주연상이 결정되었을 때에는 한국에서 드라마를 촬영하던 중이었다. 출국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당시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던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저를 대신하여 상을 받았다.

제가 길해연 언니랑 작업했다 하면 상을 받는 복이 있다. 전에 서울연극제에서도 해연 언니랑 함께 작업한 적이 있는데 연기상을 받았었다. 이번 영화도 함께 작업했는데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거다. 함께 작업했다 하면 상을 가져다주는 언니라 해연 언니는 저의 ‘뮤즈’다.”

-캐릭터들이 다른 영화와는 달리 이름이 없다.

길해연: “알버트 신 감독은 캐릭터에 붙이는 이름 대신 ‘걸’과 ‘우먼’, ‘마더’라는 호칭을 붙였다. 특정한 인명을 붙이는 게 아니라 소녀와 여자, 엄마라는 보편성을 갖고 역할에 접근하게 만든 것이다.”

* 인터뷰 2로 이어집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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