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세계 이주민의 날을 앞두고 올해는 어떤 집회를 해야 할까 하고 논의를 한창 하던중이었다. 사실 노동조합이나 단체일정이 매년 정해진 날에 맞춰서 비슷한 요구안을 내거는 것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게 아닐까 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늘 고민은 고민으로만 끝나곤 했다.

하지만 2015년은 세계 이주민의 날 기념 이주노동자대회가 단 하루의 집회와 행진만으로 끝내기에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한해였다. 그중에서도 최근 들어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의 사각지대라고 불리는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분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더욱 더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래서 한달에 300시간 넘게 일하고도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캄보디아, 베트남, 네팔 등에서 온 성난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청 앞으로 몰려갔다. 이른바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 캠페인 2015‘ - 고장난 노동부의 계산기를 고쳐라! 직접행동이 시작된 것이다.

12월 8일 성남노동청, 12월 11일 대전노동청, 12월 13일 서울시청 집회까지 민주노총, 이주공동행동, 경기이주공대위, 이주노조, 지구인의 정류장 등 이주 제단체들과 크메르노동권협회, 베트남공동체등 이주노동자 당사자들이 모였다.

▲12월 8일 성남노동청 앞에서 열린 집회

이 캠페인단의 목표는 총 3가지이다. 첫 번째는 이주노동자가 아무리 죽어라 일해도 휴일, 휴게시간 적용의 제외조항 때문에 스스로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없다. 사실상 노동부는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시간에 대해 아무런 조사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기에 근로기준법 63조의 전면 폐지를 요구한다.

“근로기준법 63조 (적용의 제외) 이 장과 제5장에서 정한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근로자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개정 2010.6.4.> 1. 토지의 경작·개간, 식물의 재식(栽植)·재배·채취 사업, 그 밖의 농림 사업”

두 번째는 매월 숙소 제공료를 30~50만원까지 임금에서 선공제하는 불법적 행태를 방임하거나 유도하는 고용센터의 직무유기를 고발하고 있다. 누가 봐도 허름한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에 살면서 어마어마한 기숙사 비용을 내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전액 지급의 원칙에 따라 선공제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업장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최대 3년의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한국에 들어오는데 그동안 임금체불, 폭행, 성폭행 등이 일어나더라도 본인 스스로 입증하지 않는 이상 마음대로 사업장을 바꾸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무조건 사업주의 싸인을 받지 않으면 회사를 나가는 대로 바로 불법이 되어버리는 현실이다. 실제로 회사에서 사장에게 얻어맞고 너무 무서워서 도망쳐 나온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이탈신고를 하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닐 정도이다.

12월 8일 오전 11시 성남노동청 앞에 모인 40여명의 이주노동자들과 이주단체 활동가들은 노동청을 마주보고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 가장 인기가 많은 구호는 제자리에서 폴짝 폴짝 뛰면서 “노동청은 정신 차려!”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관심하던 지나가던 시민이나 노동청 직원들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흘끔거리며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직접 이주노동자 당사자들의 촬영한 기숙사 사진과 모국어로 쓴 피켓, 서툴지만 당사자들이 직접 외치는 구호와 발언까지 정말 생동감이 넘치는 현장이었다.

집회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계산할 의지도 방법도 없는 고용노동부의 고장 난 계산기를 직접 이주노동자들이 발로 밞아버리는 퍼포먼스였다. 너도나도 달려들어서 밞고 또 밞았는데도 여전히 분이 안 풀려서 한번씩 더 밞은 바람에 계산기는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날의 분노를 여러분과 함께 하기 위해 오늘의 추천 노래는 이주노동자들의 분노가 담긴 퍼포먼스 영상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몇 차례 항의집회와 항의방문으로 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단박에 해결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직접 항의행동에 참여했던 사람으로 느낀 것은 이제는 정말 당사자들이 나서서 직접 구호를 외치고 분노를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에 더욱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고 자체적인 공동체가 만들어지면서 준비된 집회에 동원되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이주노동자 투쟁이 더욱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과거와는 다른 지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 일요일 서울시청에서 열리는 2015년 세계 이주민의 날 기념 이주노동자대회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함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노동부 정신차려! 이주노동자와 함께해요!


다음은 지구인의 정류장, 이주공동행동, 민주노총이 언론에 배포한 ‘고장 난 노동부의 계산기’ 캠페인 취재 요청서 전문.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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