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편? ‘책 읽어주는 여자’라고 하면, 그런 영화는 프랑스산으로 있는 줄 알지만, 저는 제 생애에 책 읽어주는 남자를 우리나라에서 만나리라고는 진짜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실재하고 있었습니다. 2008년 11월에 만났습니다.

“요즘 밤마다 아내 눕혀 놓고 책을 읽어줍니다.” 이랬습니다. 물론, ‘밤마다’와 ‘눕혀 놓고’라는 대목에서, 참으로 경망스럽게도, 좀 요상한 느낌이 들기는 했습니다만. 어쨌거나 이 대목에서는 제가 아무 실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이는 이어서 “한 1년 됐는데, (책을) 쌓으면 한 이만큼은 되지 아마?” 이러면서 손을 턱 바로 아래 즈음에 갖다 붙였습니다. 저는 미련하게도, 이 때조차도 머리 속에서 실감나게 그런 풍경을 그려내지를 못했습니다.

▲ 영화 <책 읽어주는 여자> 포스터

“아내는 누워서 눈을 감은 채 귀를 기울이고, 나는 머리맡에서 책을 읽습니다. 물론 책은 내가 고릅니다. 박경리 선생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토지>를 한 번 더 읽었고요, 그리고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아주 감명 깊었어요.”

그제야 머리에 그림이 조금 그려졌습니다. 아내는 누워서 남편의 글 읽는 소리를 듣습니다. 때로는 눈을 뜨기도 하고 때로는 무어라 소감을 말하기도 합니다. 잘 안 들린다 투정을 부리거나 때로는 무슨 추임새를 넣기도 할 테지요.

남편은 자기가 왜 이 책을 골랐는지 까닭을 얘기해 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다음 책을 펼쳐 들고 꼭꼭 말뜻까지 곱씹어가며 또박또박 소리 내어 읽습니다. 어떤 대목에서는 자기 느낌이나 생각, 또는 경험을 덧붙이기도 하겠지요.

책 내용을 현실과 견줘 보는 일은 아내든 남편이든 다 할 것입니다. 책을 읽다가 따분해지거나 밍밍해지면 읽기=듣기를 멈추고 다른 무엇을 할 수도 있겠습지요. 마찬가지 책을 다 읽은 뒤에는 이런저런 뒷담화를 나누기가 십상이겠지요.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날마다, 이리 책을 읽어주고 들어주다니. 이리 하면서 생기는 가장 큰 보람은 아마 아내 생각과 말과 행동이랑 남편 생각과 말과 행동이랑 일치해 가는 데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렇지 않습니까?” 물었더니 “암요, 당연하지요” 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이 부부가 어떤 동기로 이렇게 책 읽어주고 들어주기를 하게 됐는지는 물어 보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하지만, 별로 궁금하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풍경을 그려봅니다. 이를테면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읽고는 둘이서 이런저런 토론을 벌입니다. 이런 대목이 생각나는군요. 그이는 “그 책을 읽고 나니 ‘미국에서 나는 모든 먹을거리는 먹을 만한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했습니다.

보기는 이렇습니다. “미국에서 유기농 닭은, 갖은 사료 다 먹이며 가둬 키우다가도 잡기 직전에 며칠만 닭장 문을 열어 놓으면 된다고 그래요. 닭은 나가본 적이 없으니까 꼼짝 않지만, 어쨌든 ‘며칠 이상 풀어 키워야 한다.’는 유기농 규정을 어기지는 않았으니까…….”

이런 대목에서 이들 부부가 깜짝 놀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주고받았으리라 생각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상상력이 아주 메말랐기 때문이겠습니다. 아마도 “우째 이럴 수가!” 기겁을 하면서, 미국으로 대표되는 현대 자본주의 질서의 반(反)생명성을 반성했겠지요.

▲ 책 <잡식동물의 딜레마> 표지

어쨌거나 지난 한 해 동안 이리 주고받으면서 둘이 쌓은 교감과 공감과 동감은 안팎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입니다. 짐작건대는 평생을 나누고도 남아서 이웃에까지 퍼 줘도 될 정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깊을 것입니다.

이런 나날이 한 해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 동안 두 사람에게 들어앉은 공동 인식과 공동 관점과 공동 태도는 공동 행동으로도 충분히 나갔을 것입니다. 나가고 있거나 나갈 준비를 하는 공동 인식?관점?태도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공동 행동이라 해서 모두 대단한 무엇이리라 생각할 까닭은 전혀 없습니다. 어쩌면 대부분이 조그만 것들일 개연성이 더 큽니다. 미국산은 소고기뿐 아니라 일절 안 먹는다거나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는다거나 일정한 거리까지는 무조건 걸어간다거나.

엄청난 일이지요. 부부 사이가 더 좋아지고 나아가 세상과 우주를 보는 관점과 인식 차이도 절로 좁아지기 때문에 부부 갈등이나 마찰도 당연히 줄어들 것입니다. 이런 일이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어쩌고”로 시작하는 정치 나부랭이보다 훨씬 가치롭다고 봅니다.

제가 본 그 ‘책 읽어주는 남편’은 말했습니다. “시간이 걸리고 좀 피곤한 것 빼고는 아무 걸림돌이 없어요. 단점은 하나도 없고 좋은 점만 수두룩합니다.” 이것이 널리 알려지면 책 읽어주고 들어주는 부부가 천 쌍 만 쌍 그 이상으로 늘 수 있겠다는 생각을 저는 했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우리나라 모든 지붕 아래에서 남편들 책 읽어주는 소리가 맹꽁이처럼 와글거리는 상상을 해 봤습니다. 그러다가, 신문 방송 뉴스 가치 기준이 먼저 바뀌어야 그리 되겠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에이~’, 바로 그냥 파악 김이 새고 말기는 했습니다만. 하하.

저는 1963년 8월 경남 창녕에서 났습니다. 함양과 창녕과 부산과 대구와 서울을 돌며 자랐고 1986년 경남 마산과 창원에 발 붙였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는 1999년 들어왔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한 뒤에는 노동조합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일삼아 했습니다. 2007년 1월부터 2008년 12월 9일까지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을 했으며 2009년 1월 기자 직분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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