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2차 민중총궐기를 겨냥해 강경대응 방침을 밝힌 정부의 의견광고(12월4일자)를 게재하지 않았으나, 내부에서는 이를 비판하는 광고국 명의의 성명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한겨레 광고국은 최근 “우리 한겨레 독자들은 ‘범국민대회’와 관련해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알 수 없었다”며 “(의견광고 게재 의뢰를 거부한 회사 방침은) 정부가 자신의 입장을 담은 의견광고를 내겠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다루는 언론사의 상식에는 부합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사내에 배포했다.

2차 민중총궐기가 지난 5일 평화적으로 끝났지만 정부는 1차 총궐기에 대해 이례적으로 소요죄 적용을 고려하고 있다. 또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체포작전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등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 와중에 한겨레 광고국은 정부의 의견광고를 게재했어야 했다는 취지의 호소문을 사내 인트라넷에 게재하고 한겨레 직원들 전자우편으로 발송했다.

한겨레 광고국은 7일 <정부의 대국민 호소문 광고 게재 거부에 대한 광고국 호소문>을 통해 지난 3일 한겨레 광고심의위원회가 정부의 의견광고를 거부한 것을 비판했다. 광고국은 “우리는 심의위원회가 정부의 이번 의견광고를 게재하지 않기로 결정한 그 뜻과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호소문의 내용을 보면 1차 집회의 불법·폭력성을 설명하고 2차 집회시에도 불법·폭력을 행사한다면 엄중처벌 하겠다는 가정법으로 정부의 단호한 입장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광고게재준칙에 어긋나는 내용도 아니었는데 심의위원회는 국민을 겁박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과도한 해석으로 광고게재를 거부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회사 방침을 비판했다.

앞서 정부는 2차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일간지 등 총 28개 신문에 4억9천여만원을 투입해 의견광고를 게재했다. <불법·폭력 시위에 대한 대국민 호소문>이라는 제목의 이 의견광고는 황우여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 김현웅 법무부 장관,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동필 농립축산식품부 장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과 함께 지난달 14일 과잉진압으로 논란을 일으킨 강신명 경찰청장 명의로 돼 있다.

▲ 2015년 12월4일자 전국단위 중앙일간지 및 경제신문에 실린 정부의 의견광고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정부는 “건국 이래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눈부신 발전과 번영을 이루었지만,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후진적 집회·시위 문화입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법집회, 폭력시위는 법칙주의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며, 자유로운 토론과 설득을 바탕으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입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소임이자 존재 이유입니다. 불법과는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라며 “내일(5일) 서울 도심에서 또다시 불법과 폭력을 저지르거나 선동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법의 심판과 함께, 국민들의 매서운 지탄을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경고했다. 의견광고에 담긴 내용은 11월24일 박근혜 대통령이 집회 참석한 시민을 IS(이슬람국가)에 비유하며 한 발언과 맥을 같이 한다. 박 대통령과 정부의 주장은 전형적인 여론몰이 목적으로 볼 수 있다.

▲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116-25번지에 위치한 한겨레신문사 내 위치한 광고국 (사진=미디어스)

그러나 한겨레 광고국은 “하지만 현 정부가 수준 이하의 인식을 갖고 있을지라도 비합법단체도 아니고 수 천만 명이 선택한 합법적인 정부이며,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정부 입장의 호소문이었다”며 “정부가 자신의 입장을 담은 의견광고를 내겠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다루는 언론사의 상식에는 부합하지 않다.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거나 사안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따지고 주장하는 등의 의견광고를 게재하는 것은 신문사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고 상식적인 일이다. 우리는 반정부 투쟁을 하는 단체도 아니며 논조에 맞지 않는다고 정부나 정부여당을 배제하고 신문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광고국은 “특히 정부의 이번 호소문 역시 한겨레를 매수하기 위한 것도 아닌, 주요 일간지에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진행한 광고”라며 “우리가 논조 등 여러 이유를 들어 광고를 거부하면 현 정부도 같은 이유를 들어 한겨레를 거부할 수 있는 논리가 성립된다는 점을 깊이 헤아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광고국은 이어 “우리 국민과 독자 중에는 이번 범국민대회와 관련한 정부의 입장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찬성하는 사람도 우리 국민이며 독자다. 우리의 입장이 옳고 정부의 입장이 그를지라도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볼 때 한겨레가 다른 한편의 조선일보처럼 비춰져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광고국은 “앞으로는 우리 독자들이 다른 신문이 아닌, 한겨레를 통해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직접 듣고 판단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자.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겨레 내부에는 이 같은 주장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다. 한겨레가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의견광고를 게재한 이후 한겨레 내부에서는 이를 비판하는 성명이 나왔고 일부 독자들은 한겨레 절독운동을 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내부 토론회까지 개최했고, 현재 의견광고 게재 기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한겨레가 안팎의 비판여론과 광고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번 의견광고를 게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겨레의 한 중견기자는 “정부의 일방적이고 여론몰이용 주장을 담은 의견광고를 내보내는 것은 부적절하고, 게재하지 않기로 한 회사 결정에 동의한다”며 “광고국이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내부적으로 의견광고의 기준을 논의하고 있는 중에 호소문을 발표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 (사진=미디어스)

한겨레 광고국이 지난 7일 사내에 배포한 호소문 전문

한겨레 가족들께 호소합니다.
정부의 대국민 호소문 광고 게재 거부에 대한 광고국 호소문

지난 토요일 ‘범국민대회’가 많은 우려와는 달리 평화롭게 끝났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겨레 독자들은 ‘범국민대회’와 관련해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알 수 없었습니다.

지난 목요일 밤 긴급 광고심의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심의위원회는 금요일치 한겨레 1면에 진행 예정이었던 ‘불법·폭력 시위에 대한 대국민 호소문’이라는 정부 의견광고에 대해 심의를 진행한 결과, 이를 게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우리는 심의위원회가 정부의 이번 의견광고를 게재하지 않기로 결정한 그 뜻과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호소문의 내용을 보면 1차 집회의 불법·폭력성을 설명하고 2차 집회시에도 불법·폭력을 행사한다면 엄중처벌 하겠다는 가정법으로 정부의 단호한 입장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광고게재준칙에 어긋나는 내용도 아니었는데 심의위원회는 국민을 겁박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과도한 해석으로 광고게재를 거부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현 정부가 수준 이하의 인식을 갖고 있을지라도 비합법단체도 아니고 수 천만 명이 선택한 합법적인 정부이며,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정부 입장의 호소문이었습니다.

정부가 자신의 입장을 담은 의견광고를 내겠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다루는 언론사의 상식에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거나 사안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따지고 주장하는 등의 의견광고를 게재하는 것은 신문사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고 상식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반정부 투쟁을 하는 단체도 아니며 논조에 맞지 않는다고 정부나 정부여당을 배제하고 신문을 만들 수는 없는 일입니다.
특히 정부의 이번 호소문 역시 한겨레를 매수하기 위한 것도 아닌, 주요 일간지에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진행한 광고입니다.

우리가 논조 등 여러 이유를 들어 광고를 거부하면 현 정부도 같은 이유를 들어 한겨레를 거부할 수 있는 논리가 성립된다는 점을 깊이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한겨레 가족여러분!
우리 국민과 독자 중에는 이번 범국민대회와 관련한 정부의 입장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찬성하는 사람도 우리 국민이며 독자입니다. 우리의 입장이 옳고 정부의 입장이 그를지라도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볼 때 한겨레가 다른 한편의 조선일보처럼 비춰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우리 독자들이 다른 신문이 아닌, 한겨레를 통해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직접 듣고 판단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합시다!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입니다.
갈등이 충돌하는 시점에서 공정성과 신뢰성을 잃는다면 한겨레의 미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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