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로(libero)라는 낭만적 기억

▲ 'MB' 홍명보 ⓒ 홍명보장학재단 홈페이지
‘리베로(libero)’라는 포지션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이 있었다. 축구 얘기다. 우선, 독일의 베켄바워(63)와 마테우스(47)가 떠오른다. 뭔지, 누군지 잘 모르겠다고? 그렇지 않다. 당신도 분명히 알고 있다. 우리에겐 ‘영원한 리베로’라 불렸던 홍명보(39)가 있었다. 홍명보, 이제는 아련해지려고까지 하는 이름이다. 그 리베로가 지배하던 시대는 분명 멋졌다. 홍명보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리베로는 낭만의 이름이다.

리베로는 이탈리아어로 ‘자유인’이란 뜻이다. 축구에선 수비의 최후이다. 최후라면, 황산벌이 자신의 마지막이란 걸 예감했던 계백이고, 아두(유비의 아들)를 구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당산벌에서 생을 마감하겠다던 조자룡이다. 그렇다. 홍명보는 언제나 수비 진영의 맨 마지막에서 경기의 명운을 걸고 최후의 승부를 기다렸다. 모든 것을 초월하여 진정한 자유인의 자세로.

하지만 애석하게도 유럽에선 훨씬 일찍, 한국에서도 2002년을 기점으로 리베로라는 포지션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축구는 개인종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능력이 걸출하고 비상한 리베로라고 한들 ‘협업’ 플레이를 조직하여 들어오는 평범한 공격수 서넛을 홀로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은 당연한 진화였다. 결국, 그것은 혼자 아무리 빨라봤자 여럿의 ‘속도’를 감당할 순 없는 문제였다. 길목만 지키고 있기엔 현대 축구의 공격이 너무 변화무쌍해졌고, 한 명이 서서 기다리다 뺏기엔 패스의 질이 너무 좋아졌다.

모든 영웅을 소멸시키는 ‘협업’의 법칙이, 공을 빼앗는 순간부터 홀로 무한한 자유를 느끼는 리베로란 포지션을 낡은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게 축구는 진화해갔다.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걸출한 영웅이 아무리 뛰어난들 정교한 역할 분담을 통한 시스템의 완성으로 밀어붙이는 평범함의 연합을 당해낼 순 없다. 이제, 시대는 하나의 영웅보단 체제 전체의 자연스러움과 균형을 강조하는 순리적 흐름위에 섰다.

리베로란 ‘점’적인 그리고 홀로 자유로운 요소를 제거한 이후의 축구는 그야말로 ‘속도’의 ‘속도’에 의한 ‘속도’를 위한 경합과 빅뱅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의 '속도'는 과거 리베로 홀로 누리던 맹목적 속도가 결코 아니다. ‘압박’이라고 하는 공간적 개념을 탑재하고 전체의 평균 속도를 척도로 하는 그라운드 안 모두의 '속도'이다. 속도의 평균을 높이기 위해서는 균형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3-5-2 포메이션을 사용하던 독일이 퇴조하고, 4-4-2 포메이션으로 대표되는 프랑스가 세계 축구의 헤게모니를 인수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이마저도 옛날 얘기가 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스페인(유로2008 우승)과 첼시 등으로 대변되는 신진세력들은 4-4-2의 변형 버전이라고 할, 4-3-4 포메이션마저 허물었다. 지금 대세는 극단적 유기성, 물 흐르는 움직임과 포지션의 밸런스를 강조하는 이른바, 4-1-4-1 포메이션이다. 오래도록 방황하던 한국 축구는 이제 조금씩 ‘리베로’, ‘영웅’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다시, 리베로(libero)를 봐야 하는 불쾌함

▲ 'MB' 이명박 대통령ⓒ청와대 블로그
다시, ‘리베로(libero)’란 포지션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정치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 말이다. 언뜻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분명히, 이명박은 다시 돌아온 그 시절 그 리베로이다.

이제는 차라리 아련했으면 좋겠을 그 낙후된 시대를 이명박 대통령이 다시 불러내고 있다. 축구에서 리베로가 낭만의 기호라면 정치에서 리베로는 오만과 독선의 기의이다. 속된 말로 자기 마음대로 하는 막장 정치이다. 지금 그는 자기 맘에 들지 않는 플레이를 하는 후배를 구타하던 억압적 선배처럼 굴고 있다. 경제의 모든 부가가치가 ‘삽질’에서 나온다는 건설사 사장처럼 굴고 있다. 이명박은 계속해서 나라 경제 전체의 명운을 걸고 최악의 승부를 하고 있다. 그 종잡을 수 없는 자세만큼은 진정한 자유인이다.

유럽에선 훨씬 일찍, 한국에서도 2002년 정도를 기점으로 홀로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리베로를 꿈꾸는 제왕적 대통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믿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기엔 사회가 너무 변화무쌍하고, 대통령의 의중만 받들기엔 민주의식 자체가 너무 성숙해졌다. 모든 권력을 해체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의 속성은 정권을 잡는 순간부터 모든 걸 제 멋대로 하는 리베로적 대통령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어인 일인지, 이명박이란 돌발 요소를 만난 이후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속도’의 ‘속도’에 의한 ‘속도’를 위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 속도, 구역질나게 낯익은 속도이다. 과거, 리베로 홀로 누리던 그 맹목의 속도이다. 그래서일까, 같은 편이 드는 비유조차 구닥다리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조찬회동을 한 박희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신화적 돌파력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지금 엄청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며, “오늘은 낙동강, 내일은 영산강, 그리고 금강, 한강 등 현장에서 대통령이 지휘봉을 들고 진두에서 땀 흘리는 모습 보일 때 우리 국민들은 큰 감동을 받을 것”이라며, “현 상황에 맞는 새로운 이름”을 “속도감을 강조하는 그런 용어”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용어, 뭐라 부르면 좋을까? ‘새마을 속도’ 아니면 ‘새벽종 소리처럼 빠른 속도’.

물론, 이 과정에도 ‘반대’라고 하는 민주당적 개념이 간간히 대두되기도 하지만, 영원한 주장 홍명보와도 비할 수 없는 제왕적 권위를 누리고 있는 이명박에게 그것은 무시하는 것이 마땅한 하찮음일 뿐이다. 지금, 이명박의 맹목적 속도는 토건경제를 신봉하던 일본이 거품 붕괴에 넘어지고, 신자유주의 금융경제로 대표되는 미국이 경기를 포기한 과정을 전혀 돌아보지 못하는 완벽한 나 홀로 레이스이다. 이 맹목적 속도를 더 띄우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은 물길예산, 형님예산이 포함된 SOC 사업이 조속히 경기를 부양할 수 있도록 “당장 시행하라” 일갈했고, 아침 라디오에 나와선 옛날엔 더 잘 달렸다는 아버님 ‘주정’스러운 얘기와 한 말 또 하고 또 하는 낯 뜨거운 말씀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가 홀로 누리고 있는 맹목적 자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부자 세금 깎아 주고, 미분양 아파트는 정부가 사주고, 건설사가 빌려간 돈은 대신 갚아주고, 청년층 일자리는 늘리면서 빈곤층은 나라가 책임지고, 수돗물을 민영화하면서 미디어를 선진화시켜 국민 복지에 이바지하겠다는 야심찬 헛발질들이 쉴 틈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뭐라 해야 할까. 변형된 자본주의 혹은 진화된 사회주의, 그것도 아니면 그때그때 다를 뿐인 이명박의 리베로적 상상력. 하여간 세월이 다가올 텐데, 참으로 무상할 뿐이다.

언론이 대통령을 리베로로 만든다

홍명보라는 역사상 가장 탁월한 리베로의 기억에 오래도록 안주했던 한국 축구가 위기에 빠졌을 때, 언론들은 과하다 싶을 정도의 빈정거림으로 그 위기를 까댔었다. 현재, 국가대표팀을 맡고 있는 허정무 감독은 그 과정이 너무 괴롭고 많이 무서웠노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비판을 통과하며 한국 축구는 홀로 자유로운 리베로를 붙박이로 쓰고 나머지 모두가 그의 지배를 받던 수동적 시스템에서 탈피할 수 있었고, 그것을 낡은 관행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겨우 새로운 세대들의 에너지로 4-4-2를 구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옮겨왔다.

한국 사회가 위기란다. 모든 언론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런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 위기의 본질을 빈정 상할 정도로 까대는 언론은 없다. 외려, 언론의 대통령 말씀 받아 적기가 낯 뜨겁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무비판적으로 기사화되고, 그것이 교묘한 타협과 찬양의 술수로 배치되는 한, 이럴 바엔 차라리 경제 위기라도 극복한 ‘전두환이라도 벤치마킹하라’는 지적은 있으나마나한 야유가 되고 말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훗날 오늘의 언론에 대해 뭐라고 고백할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언론이 그 비판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언론은 끝내 한국 사회는 대통령을 제왕으로 알던 낡은 관행으로 주저앉혔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덧붙임>

리베로의 시절 한국 축구는 유난히 ‘투지’를 강조했다. 그 시절 그 ‘태권축구’는 언제 봐도 좀 안구에 습기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우연일까, 12/15 이명박 대통령은 주례 연설을 통해 국민들에게 ‘투지’를 강조했다. 참고로, 리베로의 영어식 표현은 스위퍼(sweeper)이다. 청소부란 말이다. 이명박은 정녕 시대의 청소부가 되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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