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미디어센터를 이용하면서 나도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장애인이 영상을 만든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인데….” (장애인 ㅍ씨)
“시청자미디어센터에 매일 오는 장애인입니다. 미디어로부터 소외된 장애인들이 스스로 발언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곳이 시청자미디어센터입니다. 시청자미디어센터가 장애인에게 보다 열려있는 기관이 되길 바랍니다.” (장애인 ㅇ씨)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소외계층의 목소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방송을 보는 눈을 새롭게 만들어 주었고, 우리에게 필요한 방송이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했습니다.” (주부 ㅂ씨)
“시청자미디어센터는 사회적 약자에게 꼭 필요한 곳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모든 교육이 무료로 꾸준히 제공될 수 있길 바랍니다.” (취업준비생 ㄱ씨)

부산MBC퍼블릭액세스(시민참여 프로그램) 방송을 만들기 위해 시청자미디어센터에 갔다가 만난 이용자들의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 2005년 11월 (구)방송위원회 시청자미디어센터가 문을 열었던 그날이 떠올랐다. 지금부터 나는 시청자미디어센터와의 질긴 인연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장애인과 얼굴을 마주한 채 이야기를 나눌 경험이 전혀 없었던 나는 그곳에서 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방법을 배운 장애인들은 미디어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일반적으로 ‘방송’, ‘영상’과 같은 단어들은 장애인과 아주 멀게 느껴지는 것이었지만 시청자미디어센터가 있어 그러한 고정관념도 깨질 수 있었다.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교육받은 장애인들은 장애인 당사자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골똘히 연구하며, 한 컷 한 컷 소중히 찍고 편집했다. 그 영상은 기존 텔레비전 방송에서 보기 힘든, 그야말로 감동적인 영상이었다. 거칠고 단순한 영상이었지만 어떤 전문가가 만들어낸 작품보다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만든 영상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하는 기쁨을 느끼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미 그들은 ‘권리’를 몸소 누리고 있는 ‘주인’이었다.

2006년 3월. 시청자미디어센터가 하는 공식적인 첫 교육 ‘미디어교육 교사 양성 과정’을 들었다. 당시 미디어교육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진 터라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바쁜 일과를 쪼개 강의를 들었다. 시청자미디어센터가 생기기 전에는 지역에서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비록 열 명이 조금 넘는 사람만이 교육에 참여했으나 그것이 단초가 되어 지역 미디어교육에 대한 고민은 조금씩 깊어졌다. 이어진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워크숍과 재교육 과정을 통해 미디어교육 활동가들은 ‘미디어교육을 왜 하는지’, ‘미디어 교육 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논의했고, 그 결과 우리 지역에 맞는 미디어교육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양한 미디어교육이 진행되면서 교육에 참여한 시민들은 미디어를 알아갔고, 더 나아가 스스로 미디어가 되고자 했다. 말 그대로 ‘방송에 접근’하는 시민을 보게 된 것이다.

지역에서 소외계층을 찾아가며 미디어교육을 해왔던 나는 시청자미디어센터의 도움과 지원으로 또 다른 교육을 할 수 있었다. 장애인학교를 찾아가 미디어로 소통하는 즐거움을 나눴고, 장애청소년들은 숨겨두었던 일상을 꺼내 라디오 방송을 할 수 있었다. 하교길 통근버스에서 <지금은 라디오시대>를 듣기만 했던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가 담긴, 자기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이들은 방송을 알게 되었고, 누구든 방송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여전히 우리가 만든 방송은 ‘촌스럽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비장애인은 모르는 장애인의 일상을 전하며 비장애인과 소통하고 싶다는 열망을 높였던 것도 사실이다. 미디어교육이 한 사람의 자존감을 높이고,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을 열게 한다는 경험은 미디어교육 현장에 서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그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시청자미디어센터는 교재제작과 장비지원이라는 멍석을 깔아 주었다.

시청자미디어센터는 다양한 계층이 만든 각양각색의 영상을 우리 지역 곳곳에 쏘아 올렸다. 그야말로 빛을 쏘아 미디어에 대한 관심, 미디어를 통해 제3자를 이해하는 마음을 키워냈다. 마을 놀이터에서, 해운대 바닷가에서, 작은 방에서, 시민들의 휴식공간에서 공동체 상영회를 열었고, 그것은 공동체의 결속력을 더욱 굳건하게 했으며, 내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배려를 만들었다. 어린이와 어른, 남자와 여자, 서민과 중산층,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진 감동의 순간마다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지원과 노력이 있었다. 그 과정을 지켜본 나는 부산국제영화제보다 더 멋진 ‘작은 영화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경험에 비춰보더라도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역할과 성과는 무수하다. 수많은 지역민들에게 미디어를 알게 하는 배움터로, 문화기반시설로, 미디어 놀이터로 자리잡아 온 미디어센터. 우여곡절도 많았고, 개선해야 할 것도 남아있지만 시청자미디어센터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공간이자 의미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 오게 했을까. 그것은 바로 시청자미디어센터 설립 당시 기본 운영원칙으로 정한 ‘전문성의 최대화, 자율성의 최대화, 지원의 최대화’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기본 원칙에 바탕을 두고 지역민의 의견을 대변한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시청자미디어센터를 운영한 것이 오늘의 성과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역 활동가들과 소통하고 시청자주권을 함께 고민해온 시청자미디어센터 직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운영위원회와 시청자미디어센터가 지역 시청자 권익 신장을 위해 지역사회와 끊임없이 소통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2008년 12월. 시청자미디어센터는 몹시 흔들리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1월5일 시청자미디어센터를 한국전파진흥원에 위탁 운영하는 것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운영주체가 바뀌는 중요한 사안인데도,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역 시청자들과 운영위원회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것은 정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시청자 주권’에는 관심이 없고, 더욱이 지역민의 목소리는 안중에도 없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한국전파진흥원이 과연 미디어센터를 위탁 운영할 적임자인가도 의문이다. 한국전파진흥원은 그 동안 전파정책 연구기관으로 전파법령 및 전파정책 개선방안연구, 주파수자원재개발과 같은 일을 해왔다. 그런데 시청자미디어센터는 시청자 권익을 증진하기 위해 미디어교육,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 제작 지원, 미디어 공공성 구현을 위해 일해 온 공공문화기관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역 시청자의 눈에는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는 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전문성을 최대화’ 하겠다는 약속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방송통신위원회는 12월 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한다.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결할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역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길 바란다. 지난 3년간 시청자미디어센터가 지역민과 미디어 소외계층을 위해 존재했음을, 그리고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유효한 이야기임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시청자미디어센터는 시청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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