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임기를 시작한 KBS 고대영 사장이 4일 국장 인사를 끝으로 ‘고대영 체제 첫 인사’를 마무리했다. 내부에서는 ‘최악까지는 아니다’라는 반응이지만, 김인규 전 사장 측근 다수와 KBS 안팎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승만 다큐’ 제작자, MB 주례방송 지휘 인사 등이 포함돼 있어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 KBS 고대영 사장이 지난 4일 국장 인사를 끝으로 '첫 인사'를 마무리했다. (사진=KBS)

정지환 신임 보도국장은 장한식 신임 편집주간 직무대리와 함께 김인규 전 KBS 사장 측근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2010년 오마이뉴스 기고글에서 이정봉 보도본부장, 임창건 보도국장, 고대영 해설위원실장, 정지환 정치외교부장, 장한식 뉴스제작1부장, 박인섭 제주총국장, 김동주 제주총국장, 전종철 기자 등이 김인규 전 사장을 옹립하고자 했던 인물이라며 실명 비판을 한 바 있다. 이때 정지환 국장은 고대영 현 사장을 비롯해 KBS 전·현직 간부들과 함께 정연주 사장을 고소했다.

정지환 국장이 정치외교부장을 맡았던 2010년, KBS <추적 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이하 천안함 편)이 방송 보류된 일이 있었다.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새 노조)가 방송 보류에 대한 외압의 증거로 정치외교부 보고사항 문건을 제시했는데, 이 문건에는 “KBS가 반정부적인 이슈를 다룬다며 왜 그러냐는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 참고해야 할 것 같다”는 김연광 당시 청와대 정무1비서관의 발언이 담겨 있어 파문이 일었다. 정지환 국장은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이정봉 당시 보도본부장과 함께 “새 노조의 주장은 억측에 불과하다”며 “마치 KBS가 청와대의 눈치나 보는 것처럼 몰아감으로써 KBS 독립성과 신뢰성을 추락시켰다”고 맹비난한 바 있다.

천안함 3주기였던 2013년, KBS기자협회에서 천안함 특집뉴스 문제점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자 당시 편집주간이었던 정지환 국장은 “편집권 침해는 용납할 수 없다”는 국·부장단 성명에 참여했다. 편집회의 참석자 20여 명 중 평기자 대표는 기자협회장 단 한 명뿐임에도, 보도국 간부들은 “편집회의에서 협회장이 발언하면 부장들이 외압으로 느낄 소지가 있다”는 궤변을 내놨다. KBS기자협회는 보도국 간부들 성명에 대해 KBS 편성규약과 보도위원회 시행 세칙을 근거로 “평기자 대표는 뉴스 최종 편집과정에 참여할 수 있고 실무자들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제기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김정수 신임 교양제작국장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정수 국장은 지난 2011년, ‘이승만 미화 논란’으로 KBS 안팎을 뜨겁게 달구었던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제작한 인물이다. 당시 언론시민사회뿐 아니라 KBS PD들의 반발 또한 컸으나, 되도록 많은 의견을 수렴하고 신중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는 PD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2013년에는 다큐를 바탕으로 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경우 신임 라디오국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연설을 제작한 이후 고속 승진한 인물로 꼽힌다. 2010년, 선임 팀원이었던 이경우 국장은 15~18기 등 윗기수를 제치고 라디오1국 EP(부장)이 됐다. 이경우 국장은 2010년 3월 <교육을 말합시다> 담당 PD가 무상급식을 주제로 방송하려 하자 “학교급식을 교육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야5당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라며 해당 PD의 방송 진행을 저지하고, 같은 해 10월에는 ‘진보진영 내 북한 3대 세습 비판 논란’과 ‘황장엽 사망과 예우 문제’ 등에 대해인터뷰할 예정이었던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섭외에 대해 “꼭 이재정 대표를 (인터뷰) 해야 하느냐”며 토론을 고집해 결국 출연을 무산시킨 바 있다.

새 노조 라디오구역 조합원 일동이 낸 성명에 따르면 이경우 국장이 1라디오 부장으로 재임할 당시 경쟁채널에서는 발 빠르게 다뤄지고 있는 주요 아이템들이 KBS라디오에서는 누락되거나 시기를 놓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들은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내용은 물론 정치적으로 민감한 아이템이 사라지면서 1라디오는 무색무취의 채널이 되었고 이는 결국 경쟁력과 영향력 저하로 이어졌다”라며 “더구나 2012년 새 노조 파업 당시 정당한 쟁의활동 일환이었던 선전전을 채증하고 라디오위원회에서는 공식석상에 어울리지 않는 언행으로 파행을 주도하는 등 합리적 노사관계를 경색시킨 장본인”이라고 주장했다.

황우섭 인재개발원장은 심의실장으로 있으면서 프로그램 제작에 자주 개입해 논란을 일으켰다. 2013년 1월 <다큐 3일>은 쌍용차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치유를 위해 지어진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중심으로 60일 넘게 철탑 농성을 하고 있는 해고자들과 무급 휴직자들을 다룬 ‘다시 와락! 벼랑 끝에서 희망 찾기’를 방송했다. 이때 황우섭 원장은 철탑 농성 장면, 자살 언급 장면을 빼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왜 <다큐 3일>에서 이 소재를 다루느냐”고 반문했다. 이 때문에 이례적인 ‘다중심의’를 개최했으나 다른 심의위원들은 방송에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다.

황우섭 원장은 간첩으로 몰린 유우성 씨의 이야기를 담은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판결의 전말’에 대해서도 딴지를 놨다. 황우섭 원장은 류현순 부사장, 백운기 시사제작국장과 함께 담당 부장에게 지속적으로 수정 요구를 했고, 결국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인터뷰 장면과 ‘이석기 사태’를 언급한 클로징 멘트가 삭제된 채로 방송이 나갔다. 당시 새 노조에 따르면 황우섭 원장은 ‘피의자 친척 인터뷰가 많이 나와 편향적’, ‘표창원 전 교수는 정치적 편향성이 있다’, ‘황필규 변호사는 민변 소속’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는 정상적인 심의 과정도 무시한 채 구체적인 지시를 거듭 내렸다는 점에서 ‘제작자율성을 침해했다’는 내부 비판이 거셌다.

새 노조 “변화와 혁신 이끌 수 있을지 의문… 고대영 사장 각오해야”

새 노조는 7일 성명을 내어, 고대영 사장이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인사를 발탁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반대로 ‘불통 인사’를 했다고 지적했다. 새 노조는 황우섭 인재개발원장, 김정수 교양제작국장, 정지환 보도국장, 이경우 라디오국장 등을 예로 들어 “불통 인사를 대거 중용한 것이 (이번 인사의) 가장 큰 특색”이라고 꼬집었다.

새 노조는 “고대영 사장의 본부장 인사를 두고 ‘배신의 인사’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던 공영노조 위원장 출신 황우섭 씨는 정년이 2년 연장된 사람인데 인재개발원장을 맡겼다. 교양제작국장 김정수 씨는 길환영 체제에서 프로그램을 극단적 이념대립의 장으로 만들었던 책임이 있는 인물이다. 라디오의 이경우 국장도 ‘MB 라디오 주례연설’을 제작한 후 초고속 승진을 해, 라디오PD들의 냉소를 받은 인물”이라고 밝혔다.

이어, “보도본부 역시 고대영 사장 직할 체제의 인물들로 가득 채웠다. 편집주간, 런던총국장으로 돌아 보도국장에 선임된 정지환 씨를 비롯해 고대영 사조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인물들이 대거 국장으로 이름을 올렸다”며 “보도와 프로그램에서 전진 배치 또는 재기용된 이들 불통인사들이 보도, 제작 현장의 실무자들과 소통하지 않고 분열과 냉소를 고집한다면 그 모든 책임은 고대영 사장에게 향할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주장했다.

새 노조는 “KBS는 재정적 위기 못지않게 콘텐츠 경쟁력 상실, 보도 영향력 감소, 지상파 플랫폼의 위기 등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생존을 위한 과감한 변화와 혁신은 결국 구성원들의 간의 소통과 의기투합에 있고 그 중심에 인사가 있다”며 “경쟁력을 갖춘 능력인사가 안 보이고, 연공서열을 깨는 발탁인사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마디로 실망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역대 사장들은 하나같이 구성원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내리꽂기 인사’, ‘내편 심기 인사’, ‘줄대기 인사’로 출발부터 삐거덕거렸다”며 “출발부터 ‘삐거덕’ 인사를 해결하는 길은 구성원들과 직접 소통하는 길 뿐이다. 고대영 사장은 본인의 입으로 말한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발탁 인사가 무엇인지 스스로 입증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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