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시위에서 간혹 그리고 일부 시위대에 의해 ‘불법·폭력’이 발생하면 그를 비판하던 방송뉴스였다. 2차 민중총궐기 집회가 평화(?)롭게 진행되자 방송뉴스들은 일제히 “폭력은 없었다”라고 보도했다. 폭력이 있었다, 또는 없었다만 논하는 방송뉴스의 공통점은 집회·시위의 정확한 목적과 참여자들의 요구사항 등 집회와 관련한 본질적인 내용은 정확히 피해간다는 것이다. 애초 방송사들은 폭력의 발생 여부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해볼 수 있다. 언론매체들의 이러한 보도가 오히려 집회에서의 폭력을 유발시킨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2차 민중총궐기에 대한 보도에서도 이는 그대로 드러났다.

KBS <뉴스9>는 5일 <도심 대규모 집회·행진…마찰 없이 진행> 리포트를 통해 2차 민중총궐기 집회 관련 소식을 전했다. KBS의 보도는 “1차 집회와 달리 별다른 마찰 없이 진행됐다”, “보수 성향 단체들은 폭력 시위 규탄 집회를 열었다”는 앵커 멘트로 정리된다. 2차 민중총궐기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물리적 마찰 여부에 초점을 맞추면서, 보수 성향 단체의 '맞불 집회' 보도와 철저히 기계적 균형을 맞췄다.

2차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의 요구와 관련한 설명은 “집회 참가자들은 노동법 개정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등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는 한 문장이 전부였다. 민중총궐기 집회를 오로지 보수 성향의 단체 집회와 기계적 균형을 맞춰 보도하는 것에만 신경쓰는 게 KBS가 추구하는 공정보도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다른 언론처럼 KBS 역시 집회 참가자 수에 대해 ‘경찰추산 1만4000명’이라는 사실만 전했는데, 이것 역시 팩트에 기초한 것인지 의문이다. 물론 이런 것들을 오히려 KBS의 민중총궐기 집회에 대한 부적절한 관점 중 지극히 사소한 부분에 불과하다.

▲ 12월 5일 2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대한 KBS 보도

KBS의 민중총궐기에 대한 ‘보도’…정부의 ‘교통체증’, ‘폭력’에만 관심

KBS는 지난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대해 보도하면서 <교통 마비에 논술 수험생 발 ‘동동’> 리포트를 통해 “서울 시내 교통이 극심한 혼잡을 보이고, 지하철 이용자가 폭증하면서 애꿎은 수험생들이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고 보도했다. 집회·시위에 대한 일반적 반감을 조장하는데 앞장선 것이다. 이 보도에는 한 수험생이 대학로에서 11시 30분에 버스를 탔는데 민중총궐기 등에 따른 교통체증으로 다른 학교 고사장에 가지 못해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는 대목도 포함됐다. 이는 지난 2009년 철도파업에 대한 중앙일보 <파업으로 열차 멈춘 그날 어느 고교생 꿈도 멈췄다> 기사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중앙일보는 철도노조 파업 탓에 서울대 면접을 보지 못한 고등학생의 사연을 다뤘다. ‘서울대’라는 타이틀과 ‘가정형편이 어려워 자가용도 못 태워준 우리가 죄인’이라는 부모의 하소연이 어우러져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한껏 고취시킨 보도였다.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온 고등학생의 앞날을 철도노조 파업이 망쳤다는 얘기다.

▲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 관련 KBS 보도

하지만 해당 중앙일보 보도는 허위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 수시면접 보조위원의 증언에 따르면, 중앙일보 보도에 등장하는 학생은 제 시간에 서울대 면접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이 기사에 등장한 해당 학생이 다니는 학교 교장의 인터뷰도 사실이 아니었다. 언론중재위는 이에 “해당 수험생이 서울대 면접에 늦어 서울대에 불합격한 것과 철도노조 파업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며 정정보도를 결정한 바 있다.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대한 KBS 보도에도 당시와 같은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대학로 집회는 연기돼 11시 30분에는 진행되지도 않았다는 반박이 나온 것이다. KBS 보도에서 언급된 수험생이 교통체증으로 대학 입학 면접을 볼 수 없었다는 보도와 1차 민중총궐기 집회 사이의 연관관계를 설명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이 같은 ‘교통혼잡’은 경찰이 집회·시위를 불허하는 레토릭으로 흔히 활용하는 문구라는 점도 문제다. 2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대해서도 경찰은 <집시법> 제12조(교통 소통을 위한 제한)위반이라는 논리로 집회 금지 통고를 한 바 있다. 결국, KBS의 이 같은 보도 행태는 과거 중앙일보가 그랬던 것처럼 정부의 집회금지 논리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

▲ 2009년 12월 4일 중앙일보 기사

지난 5일 진행된 2차 민중총궐기 집회는 매우 평화롭게 끝났다. 차벽과 물대포가 없어 빚어진 결과다. 인권단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찰의 과잉된 대응이 시위대의 폭력을 부추긴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KBS 보도에서는 이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과격한 폭력 시위가 벌어졌던 지난 1차 집회와 달리, 별다른 마찰 없이 진행됐다’는 결과만 보도될 뿐이다.

지상파, 경찰의 “민주노총이 기획된 폭력” 주장 그대로 받아쓰기

KBS 외의 타 지상파 방송 뉴스 또한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MBC <뉴스데스크>는 5일 <3주 만에 폭력 사라진 도심 집회> 리포트를 전하면서 “경찰과 시위대 간에 또다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는 건 아닌지 다들 우려하셨을 텐데”라고 운을 띄우는 걸로 보도를 시작했다. MBC는 “'백남기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개최한 오늘 2차 민중 집회에는 경찰 추산 1만 4천 명, 주최 측 추산 4만 명이 참여했다”며 “지난달 1차 집회의 1/3수준”이라고 강조했다. SBS <8뉴스> 또한 <反(반)폭력 여론 통했다‥큰 충돌 피한 집회>, <곳곳 인간띠‥시위 문화 새 기로에> 제목의 리포트를 배치하며 비슷한 관점으로 일관했다.

▲ MBC '뉴스데스크'와 SBS '8뉴스'의 2차 민중총궐기 집회 관련 보도

2차 민중총궐기 집회가 ‘폭력’없이 끝난 후, 경찰은 6일 1차 민중총궐기에서 발생한 폭력이 민주노총이 기획하고 준비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브리핑했다. 경찰은 그러면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소요죄’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방송3사는 경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보도했다. KBS는 <“민주노총이 기획” “공안 탄압”>, MBC는 <“폭력시위 민주노총이 기획”>, SBS는 <“1차 집회 수사 대상자는 1531명”> 리포트를 배치했다. 경찰이 주장하는 ‘민주노총의 폭력시위 기획’에 확실한 근거가 있는지 그리고 현행법상 ‘소요죄’의 의미와 이를 한상균 위원장에 적용하는 것에 문제는 없는지 등 의문에 대한 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민주노총의 반발은 부차적으로만 다뤄졌다.

JTBC는 5일 2차 민중총궐기 집회와 관련해 <수만명 행진…차벽도 폭력도 없었다>, <‘폴리스라인’서 한발짝 물러선 경찰>, <각목 사라지고 쓰레기봉투까지 준비>, <각시탈서 산타까지…복면 대신 ‘가면’>, <조계사의 한상균, 내일 어떤 선택할까>, <3주전 집회와 ‘딴판’…무엇이 달라졌나> 등의 리포트를 배치했다. JTBC는 “1차 집회 당시에 차벽이 오히려 시위대를 자극해서 폭력집회를 부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며 “경찰은 차벽 없이 폴리스라인만 칠 경우에 손쉽게 시위대가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면서 불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지만 결국에는 우려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6일에도 JTBC는 <‘19일 3차 집회’ 경찰 허용여부 주목> 리포트를 통해 “경찰이 자의적인 판단과 추측만으로 또 다시 집회 금지결정을 내리긴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JTBC 또한 ‘평화집회’라는 점을 전제로 과잉진압을 다뤘다는 점에서 명확한 한계를 보였다.

▲ JTBC '뉴스룸' 2차 민중총궐기 집회 관련 보도

비폭력·법테두리 안에서의 집회의 한계, 언론보도는 말할 자격 있나

2차 민중총궐 집회에 대한 보도에는 이전부터 ‘평화’, ‘비폭력’이라는 문구들이 크게 대두돼 왔다. 1차 민중총궐기 집회 이후, 정부가 설정한 ‘폭력시위는 안 된다’는 프레임에 그대로 갇힌 모양새였다. 조선일보의 <평화 집회도 이젠 지겹다는 게 국민들 심정> 사설 게재는 폭력 대 비폭력이라는 프레임이 형성돼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논리였다. 이 프레임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더욱더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드러난 사례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폭력’ 여부로 판단할 수 없는 개념이다. 특히, 한국사회는 경우 법적으로 집회·시위의 자유가 극히 제한돼 있다. 경찰 ‘과잉진압’을 비판하고 경찰인권위원직을 내려놓은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토론회에서 집회·시위 앞에 붙는 ‘평화’ 수식에 대해 “아무런 분쟁이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라면서 “집회 자체가 분쟁을 함의한다. (집회는) 다중의 위력(물리력)을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시민들이 집회·시위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정책에 반영해달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다. 권력자들의 시선을 끌어 ‘우리의 이야기 좀 들어달라’는 적극적인 표현이라는 얘기다. 이 지점에서 ‘평화집회’란 무엇인가의 물음을 던져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복면 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한다. IS도 그렇게 지금 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자국민을 테러리스트로 비유해 논란을 야기했다. 당일 요구였던 ‘노동개혁’,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에 대한 것은 물론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에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 씨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2차 민중총궐기 집회는 그들의 요구대로 그야말로 평화롭게 끝났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시민들의 ‘반대여론’과 무관하게 7일에도 노동개혁 관련 법안의 연내 처리를 주문했다. 물론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일정에 맞춰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1·2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모였음에도 결국 달라지는 건 없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통해 민중총궐기 집회 관련 사안을 언급이라도 한 것은 오직 폭력이 등장했을 떄밖에 없었다. 결국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면 권력은 시민들의 집단행동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폭력시위의 유발의 원인은 다른 곳이 아니라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 오체투지단 '세월호 속에 있는 9명의 실종자 찾아주세요'(사진=오마이뉴스)

정권으로부터 외면당한 시민들은 시위를 넘어 단식, 삼보일배, 오체투지로 더욱더 극한 상황으로 내몰린 자신들의 처지를 표현해 왔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들은 크레인, 종탑, 광고판 위에 올라가 시위를 하지만 언론의 보도를 기대하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통으로 일관하는 박근혜 정권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시민들에게만 평화시위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또다른 폭력일 수밖에 없다.

언론매체들이 ‘평화시위’, ‘준법투쟁’을 주장하려면 스스로 집회·시위 보도에 대한 자성부터 해야 한다. 언론이 나서서 집회·시위의 자유가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기여해야 '평화'와 '준법'을 언급할 자격이 생긴다. 오늘의 언론은 그저 무자격자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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