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의 최택은 떠오르는 단어가 많은 인물이다. 바둑. 천재. 이창호. 우유. 담배. 양면성. 아름다움. 소년과 어른. 양지에서는 아이의 얼굴로 우유를 마시다가 불룩한 담뱃갑을 뒷주머니에 찔러 넣고 밤거리를 걷는 소년어른.

서글프게도 택의 흡연 사실이 덕선을 자극했던 건, 그가 남자임을 새삼스레 인식했다거나 하는 이성적 끌림이 아닌 골목길 만년 막내의 어른 생활을 목격한 누나의 상실감에 불과할 것이다.

▲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아이 취급에도 성내지 않고 꿀꺽꿀꺽 우유를 마셔줬던 택이다. 모성 본능을 일깨우는 택은 덕선은 물론 골목길 아이들의 공통 ‘아픈 손가락’일 만큼 돌보아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친구였지만, 실상은 또래들 중 가장 먼저 어른 세상에 뛰어 들어간 촉망 받는 커리어의 사회인 아닌가.

박보검은 미안하게도 너무 잘생겨서 도리어 기대치가 없던 배우였지만, 이 <응답하라 1988>에서는 가장 나의 마음을 울리는 연기를 하고 있다. 이게 없으면 배우에겐 죽음이나 다름없는, 자신만의 고유 콘텐츠가 확고하다. 처연함 그리고 아름다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구사할 수 있는 배우다. 그것은 그의 빛나는 이목구비만이 가진 가치가 아니다.

▲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섬세하고 아름다운 연기를 하는 그라 내 마음도 동했다. 그래서 사심으로, 백만분의 일의 가능성이라도 혹시나 하고 신원호, 이우정 콤비가 엘케이의 미덕을 본받기를 기대해봤다. 하지만 다 죽어가는 음악을 뒤로하고 고백의 환희를 늘어놓는 최택을 보며, 또한 그의 고백이 소중히 간직되지 않고 친구들 앞에서 공개 해부되었을 때는 새삼 꿋꿋이 지켜지는 <응답하라1988>의 시그니처가 원망스러웠다.

‘얼른 커서 누나한테 장가와야지’ 처음부터 너는 낚시용이라는 예고됐던 수순대로, 앞으로 최택은 절대 남주 김정환의 용기를 부추기기 위한 매개체이거나 덕선의 각성을 돕기 위한 각성제로 쓰일 것임에 분명하다.

남은 10회 동안, 그는 로맨스의 주연이 아닐 것이다. 그는 갈등이 필요해 탈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충실한 바리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그를 연상케 하는 무수한 단어들을 제쳐놓고 좋아했던 사람들이 깨부숴야 할 시련의 소재로만 쓰임 당해야 하다니, 퍽 애석하다.

▲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실컷 갖고 놀다가 제 자리로만 돌려놔줘.’ 부디 그 과정에서 회복될 수 있을 만큼만 스크래치가 나길.

“드라마에서 최택이 친구들이랑 같이 놀면서 우정을 쌓아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와 제일 다른 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릴 때 입단해 또래 친구가 없었다. 친구가 많은 최택이 너무 부럽게 느껴졌다” by. 이창호 9단 (출처 : 중앙일보)

이창호 9단은 최택의 로맨스에 감흥하지 않았다. 그가 부러워했던 것은 또래 친구를 갖고 우정을 쌓아가는 최택의 어린 시절이었다. 웅크린 택에게 다가간 골목길 아이들. 실존 인물을 모티브 삼은 최택은 이창호 9단에게 바치는 제작진의 선물일는지도 모른다. 사랑하지 않는 택이더라도 최택 그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마무리를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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