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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법을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릴레이 기고-나를 해임하라] ② 해직된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이용석 / 평화활동가 | 승인 2008.12.15 18:25

 <학교에서 배운 것>                                        

                                                                    - 유하

인생의 일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아마 그랬을거야
매맞고 침묵하는 법과 시기와 질툴 키우는 법
그리고 타인과 나를 끊임 없이 비교하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 하는 법

그중에서도 내가 살아가는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그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

저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초중고 12년에 대학교까지 무수히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는데, 설마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지는 않겠죠? 기억을 곰곰이 더듬어 보면 강화도조약이 몇 년도에 맺어졌는지, 청록파 시인들이 누구누구인지 이런 것들을 배웠던 것 같아요. 그래도 이런 지식들은 쓸모는 없을지언정 엉터리는 아니었지요. 세상에 그 부끄럼많고 자기고백적이던 윤동주를 ‘저항시인’이라는 틀에 가두어버렸던 문학시간은 정말이지 윤동주에게 미안해서 수업시간엔 잠만 잤습니다. 꿈에서 윤동주 만나서 사과하려고…. 그래도 이 정도는 양반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에게는 잘사는 집 아이들과 못사는 집 애들이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차별받는지를 배웠고, 중3 때 도덕에게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는 애들은 인간 취급도 못받는다는 것을 배웠고, 고3 때 담임에게는 공부 못하고 집도 못살면 이름조차 기억해주지 않는 사회라는 것을 배웠지요. 그 사람들 직업명이 ‘선생님’이었을지 몰라도 저는 절대로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그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존경보다는 경멸 쪽이 훨씬 가까운데, 속과 다르게 겉으로 “선생니임~”하면서 위선 떨고 싶지 않아요. 이건 어쩌면 진부한 이야기들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학교 다닌 사람이면 저와 같은 경험과 기억들 모두들 한 뭉텅이씩 가지고 있을 거예요.

아마 그 때문이었을 거예요. “서로 짓밟지 말자고 가르치고 싶었습니다”라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나의 몸에 흘러들어왔을 때의 느낌. 죽을 때까지 그 느낌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마치 12년 동안 감옥생활 후 이제는 수감생활마저도 희미해져간다고 생각했을 때, 잊고 있었거나 혹은 너무 익숙해져 의식 못한 내 마음 한 귀퉁이의 상처에서 한 방울 눈물이 흐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뒤늦게나마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는 분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제고사’라…. 그 이름도 참 구리네요. 무슨 일제시대 때의 구닥다리같은 아직도 떨쳐내지 못한 지저분한 유물같아요. 어쩌면 사실은 스스로의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이름일지도 모르겠네요. 일제고사를 둘러싼 재미없는 소문들은 솔직히 일제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이야기들이니까요. 사람들을 한 날 한 시에 똑같은 시험지 앞에 앉혀놓고 게다가 4가지의 선택지밖에 없는 대답만을 강요한다는 발상은 이미 20세기 초반에 사려졌어야 하는 생각들이지요. 아이들에게 그 따위의 시험을 보지 않을 기회를 준 일은 100만 번 훌륭하신 일이라고 생각해요.

   
  ▲ 지난 10월 14일 청소년들이 서울 파이넨셜 빌딩 앞에서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민중의소리  
 
하지만 쉽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일제고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저로서는 참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교육현장에 몸담고 있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아무리 말도 안되는 거지같은 시험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거부하기까지는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을 거예요. 말로야 세상을 하룻밤에도 몇 년 뒤엎을 수 있지만, 삶에 있어서는 아주 사소한 것 하나를 바꾸는 것 조차도 많은 노력과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하자나요. 물론 시험을 보기로 결정한 학생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어쨌든 우리는 저 생각없이 사람들을 한 줄로 세울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부류의 인간들과는 달라야 하니까요. 그런데 정말 예의도 없게 선생님의 그 진지했던 고민과 학생들의 신중한 실천들을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선생님들이 마치 학생들을 시험 못보게 시켰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뭐 눈에는 뭐 밖에 안보인다고, 지들이 학생들을 억지로 시험보게 시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누군가에게 행동을 강요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 치들의 말 중에 가장 지저분한 말이 “자기반 학생들은 시험 안보게 하고 자기 딸만 시험 보게 했다”는 말이예요. 저는 오히려 선생님이 자신의 확고한 의사를 반 아이들과 선생님의 자녀에게 강제로 주입시키려고 했다면 무척 실망스러웠을 거예요. 설사 그 의지가 ‘일제고사’ 같은 잘못된 것에 대한 저항이라고 해도 말이죠.

아이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기회를 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 때문에 선생님이 해직되었다면서요. 해직교사라니 참 무시무시한 말처럼 들리네요. 듣자하니 성실의무 위반에 명령불복종이라고 하던데, 참 어처구니 없는 이유들이예요. 학교가 군대인가요? 위에서 시키는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하나요? 심지어 군대에서도 잘못된 명령을 따르는 것이 항상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2차 대전 후의 전범재판에서 나치에 복역한 일반 사병들에게도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유죄 판결을 내리자나요. 교사들이 성실해야 하는 대상은 학생들이겠지요. 학생들에 대한 성실은 무엇일까요? 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학생들의 생각을 지우고 억지로 우겨 넣은 4가지 중 한 가지 정답으로 성적이라는 가격표를 붙여서 한 줄로 세우는 일은 차마 교사가 학생에게, 아니 사람이 사람에게 할 짓은 아닌 것 같아요.

차마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을 시키는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누구에게도 없어요. 소로우의 말처럼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뿐입니다. 또한 우리는 법과 명령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정의와 인간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하겠지요. 이것이 바로 학교에서 이론으로만 배웠던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자나요. 잘못된 결정이나 부당한 권력에 대해서 불복종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말장난일 뿐이예요. 선생님이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고 학생들에게 시험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기회를 준 것, 그리고 학생들이 자신들을 공부노예로 전락시키는 시험을 스스로 거부한 것은 바로 이런 불복종을 통한 민주주의의 구현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선생님을 완벽한 영웅으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아요. 분명 어떤 면에서는 학생들에게 권력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선생님도 사람인데 반의 모든 아이들을 똑같이 사랑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불복종이 더욱 소중한 거 같아요.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내 삶에서 최소한 지켜가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성찰하고 그 가치들이 침해당할 때는 거침없이 행동하셨자나요. 물론 이 정도의 징계까지 내려질지는 저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요. 아마도 겨울이 더 추워야 하나 봐요. 참 23일에 또 일제고사를 치른다면서요? 그 때 또 다른 선생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제 마음은 우울해지겠지요. 그러면 정말 이번에 해직된 선생님만 희생양이 되어버리자나요. 하지만 여러 명의 또 다른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면 그것 역시 슬픈 일이 될거예요. 새롭게 만나게 될 선생님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 또한 만만치 않을 거예요. 잘못된 세상과 불협화음을 내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일이 이렇게 슬픈 일이어야 할까요? 겨울이 추워야 한다면 우리 몸 붙이고 온기를 나누고, 세상 사는 일이 슬픈 일이라면 함께 마주보고 실컷 울어 버리면 좋겠어요. 온기를 전해주셔서, 우는 법을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용석 / 평화활동가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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