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송곳>의 가치는 시청률 기록만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 드라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노동과 자본 간의 ‘적대’라는 문제를 세밀하게 드러냈다. 평범한 개인이 ‘자본의 담지자’가 돼 가는 복잡한 사연도, 시시한 약자들이 ‘송곳’이 되는 내밀한 과정도 가감 없이 소묘했다. 그리고 ‘학대해고’와 ‘노조탄압’의 구체적인 방법과 사례를 낱낱이 보여줬다. 가장 평범한 ‘노동’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자본은 이들의 ‘불만’을 어떻게 관리하고 ‘노노갈등’을 부추기는지, ‘싸우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여줬다.

호평이 많았다. 우선 이 드라마는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투쟁백서’다. 그리고 시청자들에게는 ‘노동법 강의’이다. 삼성과 사돈지간인 족벌언론이 최대주주로 있는 방송사가 노동운동 드라마를 내보낸 것에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웹툰 <송곳>을 드라마화하자는 기획안은 다른 방송사를 거쳐 JTBC에 온 것으로 전해졌다.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선 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 법이야” “고생한 사람에 대한 보상은 없습니다. 우리가 성공하면 모두가 성공할 것이고 실패하면 아마도 우리만 실패할 겁니다.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짐만 지세요” 같은 대사도 계속 회자되고 있다.

<송곳> 이전에도 송곳은 많았다. 푸코의 말마따나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고, 비버리 실버가 묘사한 대로 자본이 가는 곳에 갈등은 따라 간다. 굳이 유럽의 담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노동자들이 싸운 역사는 우리 자신에서도 숱하게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했을 때에도 원산총파업 같은 대규모 파업이 있었다. 해방공간의 출현과 함께 출범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는 당시 가장 대중적인 조직 중 하나였다. 박정희 정권에서는 노동법을 불태운 전태일의 투쟁이 있었고, 똥물을 뒤집어쓰며 싸운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 있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경유하면서는 ‘민주노조’가 대규모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상황은 '송곳'이 나오기 힘든 상황으로 변해갔다. 값싼 노동과 높은 배당률을 찾아 자본이 이동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시작됐고 '관리자'들은 자본과의 동맹을 공고히 하면서 노동을 배제했다. 한국사회는 1980, 1990년대 이르러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에 완전히 편입됐다. 신자유주의 교리에 따라 정부와 기업은 노동을 쪼갰다. ‘가족임금’은 깨졌다. 자본은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를 ‘저임금’으로 활용했고 노동의 ‘교섭력’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자본 편향적인 기술진보, 자본과 금융의 세계화는 이른바 ‘바닥을 향한 경주’를 본격화했다.

▲ 드라마 <송곳>의 한 장면

드라마 <송곳>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가장 조직하기 어려운 ‘밑바닥 노동’의 삶을 그렸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무대가 된 대형마트는 1990년대 후반부터 경쟁적으로 생겼는데, IMF 이후 노동시장에 쏟아져 나온 여성노동자들이 주로 마트 일자리를 채웠다. 이들은 저임금과 비정규직이라는 악조건을 감내하면서 돈을 벌었다. 직접고용 정규직은 열에 한 명 정도였다. “매출이 안 나오면 나이 많은 여성 순서대로 자르겠다”는 엄포를 들어야 했다. 드라마의 시간대인 2000년대 초반에는 대형마트의 개점효과가 사라질 때인데, 자본은 이 시기 인원을 감축해 비용을 줄이려 시도했다.

대형마트인 까르푸에도 노동조합이 있었다. 조직을 확대하는 일은 어려웠다.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은 ‘투쟁조끼’ 대신 ‘기본급 3만원 인상’을 택했다.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2000년 중계점 샐러드바에서 일을 시작한 이경옥씨, 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사무처장이 노동조합에 가입했을 2011년 5월에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300일 파업을 했지만 조합원은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2002년 본조 사무국장을 맡을 때 “5명에게 노조 조끼를 입히는 것도 힘들 때였다”고 이경옥 사무처장은 회고했다.

2003년 초 이경옥 사무처장이 일동점 김경욱 과장(드라마 ‘이수인’의 모델)의 가입신청서를 팩스로 받았을 때도 노동조합의 사정은 어려웠다. “노조 조끼를 입지도 못하고, 입더라도 한 시간 만에 벗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한다. 그래도 노동조합을 지켜야했다. “베이커리 정규직 여성 노동자 한분이 집에서 돌아가셨다. 당시 매출 압박이 심했고, 시간외 수당도 받지 못하고 주말과 휴일도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죽으려면 여기서 죽자’고 생각한 계기였다.” 일동점을 시작으로 조합원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까르푸노동조합은 2003년 봄에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사측은 노동조합의 세를 위축하기 위해 “김경욱 과장을 노조 위원장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노조는 이를 거부했다. 그 동안 투쟁과정에서 해고됐던 동료들은 현장에 복귀했다. 그리고 단체협약 체결 직후, 김경욱 과장이 이끌던 일동점이 파업에 들어갔다. 그는 “파업 첫날 조합원 80여명이 모두 참여한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노조는 끝내 이 싸움마저 이겨냈다. 2003년 까르푸 일동점에서의 싸움은 2007~2008년 이랜드-홈에버 투쟁의 동력이 됐다. 점거투쟁 등 512일 간의 투쟁으로 노조 핵심간부들이 해고됐으나 노조는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 이랜드투쟁은 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이 사회적 연대로 이어져 끝내 이긴 몇 안 되는 사례다.

언론을 넘어 대중문화의 영역에서까지 이 싸움을 기록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각자 코너에서 개별화된 노동을 하는 대형마트 노동자들, 특히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은 지금 우리사회와 노동이 처한 곳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야기는 책(‘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과 다큐멘터리(‘외박’)를 시작으로 웹툰, 상업영화(‘카트’)와 드라마로 이어졌다. 노동착취와 노조탄압이라는 측면에서 2000년대 초중반과 지금은 한치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이 이 같은 작품들을 유도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평범한 사람들, 가장 시시한 약자들의 싸움을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

이경옥 사무처장은 “사돈에 팔촌까지 따지면 누구나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가 경쟁하던 시기에 자본은 착취를 경쟁했다. 그리고 마트가 포화된 요즘 착취는 이미 포화상태가 됐다. 이마트, 홈플러스에 이어 롯데마트까지 3대 마트에 노동조합이 생겼지만 이경옥과 김경욱이 당했던 탄압은 지금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드라마 <송곳>은 주인공 이수인이 ‘컴퓨터 없는 사무실’에 발령을 받은 내용으로 끝이 난다. 이 장면은 올해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가 회장으로 있는 ‘이지테크’에서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노동자가 당했던 이야기와 정확히 같다.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송곳> 이후의 송곳에도 지지를 보내고 연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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