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농민 백남기 씨가 경찰이 직사로 쏜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당연히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히려 ‘과격시위는 안 된다’, ‘집회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중총궐기와 같은 집회와 시위는 ‘불법’을 넘어 ‘테러’로 규정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IS까지 언급하면서 <테러방지법> 처리강행을 촉구했을 뿐 아니라, 복면착용 시위금지를 담은 <집시법> 개정을 전임 정권에 이어 다시 들고 나왔다.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법시위에 대한 논란으로 변질되는 데에는 언론이 큰 몫을 담당했다.

▲ 2015년 11월 17일자 조선일보 기사

대다수 언론은 이미 백남기 씨에 대한 관심을 거둔 상태다. 이와 관련해서는 조선일보 기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가 백남기 씨를 언급한 것은 딱 두 차례다. 11월 17일자 <시위 중상 60대, 운동권 출신으로 3차례 제적·3년 복역> 기사와 11월 20일자 <검찰총장 청문회, 시위자 중태 원인 놓고 격론> 기사가 그것이다.

“전남 보성 출신인 백 씨는 광주고를 졸업하고 1968년 중앙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1971년 10월 위수령 사태 때 시위를 벌이다 1차 제적됐고, 이후 복학했으나 1975년 전국대학생연맹에 가입해 활동하다 2차 제적됐다. 백씨는 1980년 중앙대 총학생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해 5월 18일 계엄령이 선포되자 중앙대 학생 운동을 주도하다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돼 3년간 복역했다. 이 무렵 세 번째로 제적됐고 결국 중앙대를 졸업하지 못했다고 한다”_조선일보 <시위 중상 60대, 운동권 출신으로 3차례 제적·3년 복역>기사 중

조선일보는 백남기 씨 소식을 전하면서 ‘운동권 출신’이라는 수식을 붙이고 '제적'과 '복역' 등의 단어를 부각했다. 조선일보는 또한 백남기 씨가 중앙대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복학생 왕고참’으로 불렸으며, 출소 이후 농사를 지으면서도 농민회 등에서 주요 간부직을 맡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또한 <검찰총장 청문회, 시위자 중태 원인 놓고 격론> 기사를 통해 새누리당 김도읍·김진태 의원의 발언을 전하면서 백남기 씨가 시위대 참가자에 의해 주먹질을 했다는 흑색선전을 퍼뜨리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1.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상습시위꾼’, ‘배후세력’, ‘떼법문화’ 담론 확산

조선일보의 행태에 대해서는 우리 언론이 집회·시위에 대한 보도를 하면서 '본질적' 내용을 제대로 전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언론에 대해 우리는 “없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2008년 촛불시위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추모집회 정도가 그나마 다각도로 조명된 사례라고 볼 수 있을텐데, 그조차도 ‘과격시위’, ‘충돌’ 프레임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지는 못했다. 오히려 어느 순간부터는 시위 참가자들에 ‘낙인’을 찍기는 도를 넘는 행태가 시작됐다. 그 시작이 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정부 출범과 함께 ‘떼법 문화 청산’을 내세운 바 있다. 법무부는 곧바로 업무보고를 통해 떼법 문화 청산을 위한 ‘무관용 원칙’ 및 집회·시위에 진압 경찰 과실에 대한 ‘과감한 면책’, ‘체포전담조’ 운영 등을 발표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상습시위꾼 엄정처리’ 방침이다. 2008년 촛불시위가 거세지는 국면에서는 ‘배후세력’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명박 정부가 본격적으로 과잉 진압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2009년 1월 19일 용산참사 국면이다. 이 때부터 언론들은 ‘상습시위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2009년 3월 10일 1면을 <주 서울경찰총장 “상습시위꾼 200여명 전원 검거할 것”> 기사에 할애했다. 이 기사에는 당시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은 용산참사 집회에서 경찰 폭행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해 “과격시위에 단골로 등장하는 200여명의 ‘상습시위꾼’을 파악하고 있다”면서 그들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민주노총, 전국철거민연합, 사회당, 진보연대 등에서 활동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이 강조돼있다. 조선일보는 또 사설을 통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 줌의 전문 시위꾼이 도심 복판 건물을 점거해 도로를 향해 화염병을 던지면서 1000만 시민이 사는 도시를 전쟁터나 다름없게 만드는 걸 더 방치해선 안 된다는 것”라며 ‘전문 시위꾼’을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서 당시 주상용 서울경찰총장이 “시위현장에서 잡힌 사람들은 시위에 소모품처럼 이용된 사람들뿐”이라며 “배후수사를 통해 시위꾼들을 추적, 검거하겠다”고 밝힌 것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선량한 국민들'과 '전문시위꾼'의 구분법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당시 이명박 정부는 <집시법> 개악을 통해 집회 시 복면착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추가하려고 시도했다. 이에 발맞춰 언론은 ‘상습시위꾼’, ‘전문시위꾼’, ‘운동권’ 등의 낙인찍기를 본격화했다.

‘상습시위꾼’에 대한 매도는 박근혜 정부 들어 심화됐다. 2014년 5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 추모행렬이 이어지자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상습시위꾼’에 대한 삼진아웃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야기했다. 이른바 '배후세력' 정도의 위상이 아니더라도 ‘3회’를 상습으로 규정해 단순 집회시위 참가자들도 엄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이런 구상은 실제로 작동됐다. 대한문 앞에서 천막농성에 가담했던 쌍용차 범국민대책위 관계자 22명을 정식재판에 회부했고 18명을 약식기소한 것이다.

#2. 세월호 유민아빠 김영오 씨는 금속노조 조합원?

박근혜 정부 이후, ‘상습시위꾼’, ‘전문시위꾼’ 낙인의 대표적 사례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인 ‘유민아빠’ 김영오 씨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광화문에서 단식농성을 통해 언론매체들의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 조선일보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편 TV조선은 김영오 씨의 ‘아빠의 자격’을 문제삼기 시작했다.

▲ 2014년 8월 25일 tV조선 <뉴스4> 캡처

당시 TV조선 <뉴스4>는 <금속노조 조합원…‘정치적 단식’논란>이란 제목의 리포트를 배치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김영오 씨가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밝혀졌는데, 결국 단식투쟁에 정치적인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눈여겨봐야할 대목은 '금속노조'라는 개념을 다루는 방식이다. 조중동은 금속노조가 민주노총 내에서도 '강성'에 속한다는 분석을 여러 차례 내놨다. 이런 논조는 TV조선 <뉴스7>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TV조선은 <뉴스특급>을 통해 <유민 외삼촌 “10년 전 이혼…이해 안 돼”>란 제목의 리포트 역시 배치했다. 김영오 씨가 10년 전 아내와 이혼을 했고 이후 두 딸을 돌본 적이 없는데 무슨 자격으로 단식 농성을 하느냐는 게 주요 내용이다. 사실관계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보도한 의도가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김영오 씨 스스로 ‘아빠의 자격’에 대한 답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왔다. 김영오 씨는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금속노조에 자동 가입됐다고 밝혔고, 아이들을 돌보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비정규직 월급으로 양육비를 정기적으로 줄 수 없어 몇 달에 한번 씩 보낼 때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보니 아이들을 자주 못 보고 살았던 것도 한이 맺히고 억장이 무너지는데’라는 심경 토로 역시 내놨지만 조선일보는 이를 무시했다.

전 처와 둘째 딸이 공개적으로 해명에 나서면서 이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조선일보와 TV조선의 김영오 씨에 대한 흑색선전은 언론의 역할에 대한 커다란 의문을 남겼다. 김영오 씨가 '고급 스포츠'인 국궁을 즐기는 귀족노조 조합원이라거나, 단식을 통해 거액의 보상금을 수령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거나, 야당이 비례대표 의원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는 식의 흑색선전이 퍼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3. '태극기훼손남'으로 세월호 1주년 추모를 오염시킨 언론들

언론의 이러한 '사회악'과 같은 행위는 세월호 1주년 추모 시위에서도 이어졌다. 2015년 4월 세월호 참사 1주기 국면은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국민적 추모의 물결이 광화문으로 모였던 때였다. 18일 1주기 추모집회 역시 집회가 ‘충돌'로 마무리됐다는 정도의 언론보도가 나올 것으로 우려됐다. 하지만 상황은 그 이상이었다. 조선일보가 그 선봉에 섰다.

▲ 2015년 4월 20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는 20일자 1면에 <태극기 불태운 시위대>라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 실린 사진은, 뉴스통신사 뉴스1이 촬영한 사진을 채널A가 보도한 영상을 다시 캡처해 사용했다. 이런 복잡한 방식의 사진 세탁(?)은 뉴스1과 사진공급계약이 돼있지 않아 생긴 문제로 보인다. 여기서는 조선일보가 경쟁사 매체의 방송을 캡처해 사용하는 무리를 하면서까지 굳이 이사진을 실어야만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세월호 추모 집회 참가자들을 반국가적인 폭력시위꾼으로 몰아가고자 하는 조선일보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보도가 나가자 경찰은 '태극기훼손남'을 ‘끝까지 추적해서 처벌하겠다’고 천명했고, 이 문제는 마치 블랙홀처럼 세월호 추모 집회의 모든 것들을 집어 삼켰다. 당일 지상파 뉴스들 또한 '태극기훼손남'에 대한 비난에 동참했다.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에서 일어난 태극기 훼손 사건은 아무리 양보해도 개인의 일탈적 행위로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조선일보 보도를 시작으로 추모의 의미는 퇴색됐다. 세월호 집회 참가자들은 어느새 반국가 집단으로 매도당했다. 당시 새누리당 이군현 사무총장은 “태극기를 불태우는 것은 국모를 불태운 것과 똑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 사례는 조선일보의 아젠다 세팅 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사례로 남았다.

#4. 전문시위꾼 박래군과 송경동

조선일보가 ‘전문시위꾼’으로 끊임없이 낙인찍는 인물에는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활동가(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와 송경동 시인을 빼놓지 않을 수 없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성향 매체들이 박래군 인권활동가를 ‘전문시위꾼’으로 낙인찍은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그 강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그 중심에는 또 조선일보와 TV조선이 있었다. 구체적 시기는 박래군 활동가가 청와대 게시판에 <청와대 게시판에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은 폐기되어야 합니다>라는 실명 글을 게재한 이후로 볼 수 있다. 조선일보는 박래군 활동가의 세월호시행령을 폐기해야한다는 주장을 담은 길고 긴 글 중 “박근혜 대통령을 괴물, 야수에 비유하며 맹비난했다”는 부분만 떼서 비난했다.

▲ 2015년 5월 6일자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 방송

당시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은 박래군 인권활동가의 과거 운동이력을 나열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이라크 파병 반대, 광우병 소고기 촛불집회, 국기에 대한 맹세 폐지 운동, 이석기 의원 구명운동, 황선·신은미 구명위원회 발족 참여 등의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 방송 출연자는 “진짜 인권 운동한 게 맞는지, 대한민국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인지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인지는 시청자들이 판단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덕분에 박래군 활동가에게는 ‘전문시위꾼’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과거 이력을 나열한 모습을 봤을 때 그를 ‘종북’으로 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인권운동가들의 역할을 조금이라도 인정하지 않는 조선일보와 TV조선의 태도는 그 후에도 계속됐다.

“좌파든 우파든 어떤 정치인이든 시위 전문 꾼이든 이런 사람들이 돌출발언을 했을 때 진정성을 알아보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발언이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서 도움이 되는 얘길 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헐뜯는 말인지 그 점을 갖고 들여다보면 바로 드러난다. 여러분께선 이 박래군이라는 사람 이 말 어떻게 보셨습니까”_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

▲ 2015년 5월 11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2015년 5월 11일자 <‘세월호 대책회의’에 웬 직업 운동가들만 잔뜩 모였나> 사설을 통해 박래군 인권활동가를 ‘정치로 오염된 단골 시위꾼’으로 묘사했다. 그러고는 “사회 각 분야에서 자기 권리를 제대로 못 찾거나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 적지 않다”며 “그런데, 박 씨 같이 늘 자리에서나 보던 인사들이 나서게 되면 ‘또 좌파 직업 운동꾼들이 정치적으로 몰고 가려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매도했다.

조선일보는 2014년 12월 4일 <“폭력 시위 불러온 ‘희망 버스’는 유죄”> 사설에서도 송경동 시인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이번 판결은)무슨 일만 터지면 멋대로 끼어들어 폭력 시위를 일삼고 사태를 악화시키는 전문 시위꾼들에게 울리는 경종“이라고 몰아붙였다. 여기서도 ‘전문시위꾼’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5. 낙인찍기에 재미 붙였던 조선일보, 자신의 발등을 찍다

이와 같은 사례들에서 ‘상습시위꾼’과 ‘전문시위꾼’이라는 낙인찍기에는 보수성향 매체 중에서도 조선일보가 앞장서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최근 스스로의 발등을 찍는 일이 벌어졌다.

▲ 2015년 11월 20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지난달 20일 <전교조 위원장 입에서 튀어나온 ‘인민’>이라는 사설을 게재했다. 제목 자체가 이 사설의 주요 내용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이 민중총궐기 전에 열린 전국교사결의대회에서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때부터 조선일보는 변성호 위원장을 ‘종북’으로 몰아가기 시작한다.

“‘인민’이라는 단어에 눈길을 멈춘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거의 쓰지 않는 단어이다. 우리는 ‘국민’이라고 쓰고 북한에서 ‘인민’이라고 하는 것이 굳어진 지 오래. 우리 사회의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말이 왜 전교조 위원장의 즉흥 연설에서 튀어나왔을까. 평소 성향이 무심결에 불쑥 튀어나온 것일 수도 있고, 굳이 ‘국민’ 대신 ‘인민'이라는 말을 골라서 썼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의 생각이 반영돼 있다”_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사상검증’ 비판이 제기될 것을 걱정했는지 “우리 사회 일각에선 이런 걱정을 ‘사상 검증’이라며 반발한다”며 “그러나 그 사람이 이미 망해버린 엉터리 이념을 남의 집 자식들에게 심어 놓으려는 교사라면 결코 묵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의 발언에 등장한 표현은 ‘인민’이 아니라 ‘빈민’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모든 비난이 조선일보로 집중됐다. 전제 자체가 틀린 엉터리 사설을 지면에 실은 것이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 등 공간에서는 조선일보의 해당 사설을 빗대 “(조선일보의)평소 성향이 불쑥 튀어나온 것”, “엉터리 사설을 독자들에게 심어 놓으려는 신문이라면 묵과할 수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조선일보는 곧바로 다음 날 “녹음 파일을 다시 면밀히 분석한 결과, 변 위원장이 ‘빈민’이라고 말한 것이 맞다”고 정정했다. 하지만 매체의 사설과 '바로잡습니다'라는 격의 차이는 비교하라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 집회·시위 좀 하면 안되나

민중총궐기 집회는 집회와 시위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근본적으로는 ‘과연, 한국사회에 집회·시위에 대한 자유가 보장돼 있는가’라는 의문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언론은 끊임없이 ‘상습시위꾼’, ‘전문시위꾼’, ‘직업운동가’ 등의 원색적인 단어를 동원해 시위자들을 공격했다. 이른바 '운동권'들은 집회에 참여하고 시위를 할 자유도 없다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는 걸 조선일보 또한 모를 리 없다. 그들은 노리는 것은 낙인효과와 ‘분리’다. 상습시위꾼과 단순 참가자들을 구분해 상습시위꾼들에게는 뭔가 정치적 의도가 있을 것이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백남기 씨에 대한 조선일보의 태도도 같은 맥락이다. 세 차례 제적당하고 3년 복역한 운동권이라는 보도가 주는 의미는 ‘그는 너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는 “운동권으로 명명하면서 그들이 집회와 시위를 통해 이야기하려는 내용을 시민들로부터 차단하는 것”이라며 “원래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세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민중총궐기는 ‘노동개혁’과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를 내걸고 진행된 집회다. 두 의제는 국민 상당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실제로 많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매체들이 집회의 본질은 도외시한 채 ‘운동권’이라는 낙인 찍기와 불법, 폭력시위 양상을 확대 선전하는 것에 천착하면서 사회적 갈등은 확대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애초 공약했던 ‘국민통합’이 아닌 너와 나의 편으로 구분 짓는 편협한 인식을 보이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면담을 요구하자 ‘순수한 유가족’이 아니라며 거부하겠다는 논리를 들이댄 것은 대표적 사례다.

조선일보의 ‘사회 각 분야에서 자기 권리를 제대로 못 찾거나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 적지 않다’라는 사설 문구로 돌아가보자. 물론 대한민국헌법은 그런사람들에게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집시법>은 집회·시위를 확대하는 방향이 아닌 점차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개악돼 왔다. 2차 민중총궐기 집회 불허 결정에서도 알 수 있듯 현행법령 역시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는 후진적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언론들은 집회·시위라면 ‘불법’, ‘폭력’에만 주목한다. 정부정책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반대하는 세력 조차 '운동권'이라는 낙인찍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판국에 도대체 '자기 권리를 제대로 못 찾고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무엇이 남아있나. 조선일보의 답이 궁금해진다.

오는 5일 제2차 민중총궐기가 열린다. 하지만 집회·시위에 대한 자유는 여전히 정부에 의해 허가받아야만 허용되는 개념일 뿐이다. 개최 자체가 불법이 돼버린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에 대한 조선일보의 흑색선전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영혼이 사라져버린 지상파 뉴스는 이런 흑색선전에 또다시 편승할 것이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전문시위꾼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며 혀를 끌끌 찰 것이다. 이런 일방적 만행을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은 그 집회에 국민적 대표성을 부여하는 것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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