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라고 했지만 지금까지 이 드라마의 재미는 오히려 육룡이 다 합쳐도 감히 어쩌지 못할 정도로 악인 길태미가 모두 짊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는 사실 많이 당황스러웠던 캐릭터였다. 고려시대에 마치 현대물의 게이를 연상시키는 분장과 말투가 너무도 낯설었고, 그 역할을 소화해내는 박혁권이라는 사실이 그나마 기대를 걸 수 있는 요소였다.

그러나 이후 육룡의 성장기부터 차근차근 캐릭터를 소개하는 과정의 지루함을 바로 이 악역 길태미가 지워주는 데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박혁권의 길태미는 낯선 듯 익숙했다. 누구나 할 것 같은데 지나고 생각해보면 박혁권 아니면 누가 길태미의 역할을 이처럼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완벽하게 해낼까 왼고개를 치게 된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그렇게 박혁권의 길태미에 빠져서 보다 보니 어느새 길태미가 악역이라는 사실도 가끔씩 잊게 된다. 심지어 귀엽기까지 했다. 악역이 귀엽게 느껴진다면 작가나 배우의 실수여야 하는데 길태미의 역할은 그 반대다. 이 최고의 악인 길태미에게는 귀여운 악마성이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육룡과 그에 맞서는 캐릭터들이 어떻게 성장해낼지는 알 수 없지만 길태미 이상의 캐릭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 길태미의 최후를 위해서 작가는 꽤나 심혈을 기울였다. 결국 이방지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길태미였지만 그 마지막 승부는 대단히 화려하고 훌륭했다. 많은 사극 검술장면을 보아왔지만 그 중 상위에 올려도 무방한 완성도를 보였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무엇보다 길태미를 홍인방처럼 포박되어 옥에 갇혔다가 참수를 당하는 평범한 패자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은 점에서, 작가의 애정 그리고 길태미의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길태미의 쌍둥이 형 길선미의 짧은 대사 하나로 좀 더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길선미는 동생의 최후를 보며 “그래도 다행히 죽는 순간만큼은 탐관오리가 아니라 검객이셨네, 그려”라고 말했다.

길태미답게 회개하지 않고 떠나는 모습까지도 좋았다. 저주인지 예언인지 모를 마지막 자기변명은 나름 울림까지 컸다. “천 년 전에도, 천년 후에도 약자는 강자한테 빼앗기는 거라고. 세상에 유일한 진리는 강자는 약자를 병탄(빼앗아 삼킨다)한다. 인탄(짓밟고 빼앗는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수천 년을 지배해온 현상일 뿐이라는 것을 길태미가 몰랐을 뿐이다. 현상이 지속되면서 그것을 진리라고 착각한 길태미였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그렇지만 하나의 역사가 쓰러지면 그 위에 새로운 역사가 일어서듯이 길태미의 죽음으로 땅새 아니 이방지의 시대가 열렸다. 상황으로 보면 무휼이 약간의 두려움에 머뭇거리는 새 땅새가 나타난 것이지만 사실 이 둘의 대결은 숙명이었다. 홍인방의 가노들에 의해서 땅도, 연인 연희도 모두 빼앗긴 땅새에게 길태미와 홍인방은 동격이었다. 이로써 땅새는 육룡의 보다 확실한 자격과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반면 그토록 공을 세워 이름을 날리기를 원했던 무휼은 안타깝게도 또 기회를 놓쳤지만 대신 장난기 반쯤으로 임명된 이방원의 호위무사에서 그런 직위를 벗어난 둘 사이의 끈끈한 연대감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그러니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닌 무휼이었다.

그렇게 길태미는 죽었지만 박혁권은 죽지 않았다. 길태미와는 다른 길을 걷는 길선미가 있기 때문이다. 길선미가 어떤 노선을 걸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육룡의 편에 서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인겸도 아닐 것이고, 그의 곧은 성격으로 보아 최영의 편에 서게 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동생의 목숨을 빼앗은 땅새와 다시 한 번 필연의 대결을 맞이하지 않을까 싶다. 그때가 너무 이르지는 않기를 바란다. 길태미가 아닌 길선미라도 박혁권이 드라마에 계속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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