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양심과 신념 때문에 감금된 ‘양심수’의 숫자는 인권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주요 지표 중 하나다. 한때는 ‘이제 양심수는 사라졌다’는 말이 도는 ‘호시절’이 있었다. 가장 많은 양심수를 발생시키는 국가보안법을 두고, 어느 대통령은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10년이 흐른 한국의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다.

<2015 인권 콘서트> 준비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었던 지난달 12일께만 해도 감옥에 있는 양심수의 숫자는 50명이었다. 그러나 2주 만에 73명으로 늘었다. 열흘 남짓 동안 국가보안법,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참가, 노동사건 등의 이유로 23명이 구속된 셈이다. 감옥과 영장의 숫자만 헤아리자면, 한국사회의 인권은 계속 후퇴하는 중이다.

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2015 인권 콘서트>가 열렸다. “잘 지내셨느냐는 인사가 무색하리만큼 정말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분노하고 인내하며 여기까지 왔다”는 천주교인권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의 인사는, ‘무시’와 ‘침해’가 일상이 돼 이제 소리 내어 말하기조차 멋쩍어진 ‘인권’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말이었다. 하지만 <인권 콘서트>에 좌절과 한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의 선택과 행동을 지지하는 격려가 넘쳤다. 다시 ‘희망’을 말했다.

“민중총궐기는 국민들의 비명…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야기 콘서트 <놈놈놈>에서는 ‘방금 나온 놈’, ‘곧 들어갈 놈’, ‘변호해 줄 놈’으로 소개된 인권중심 사람 박래군 소장,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 민변 황필규 변호사가 등장했다. 관객들은 이들의 차림새를 보고 그야말로 ‘빵 터졌다’. 최근 새누리당이 주축이 돼 발의한 복면금지법에 저항이라도 하듯, 박래군 소장과 황필규 변호사는 가면을 쓰고 나왔고 박진 활동가는 모자를 쓰고 긴 목도리를 휘감아 이른바 ‘국정원녀 패션’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 이야기 콘서트 <놈놈놈>에 출연한 박래군 소장과 황필규 변호사는 가면을 쓰고 나왔고 박진 활동가는 모자를 쓰고 긴 목도리를 휘감아 이른바 ‘국정원녀 패션’을 선보였다. ⓒ미디어스

각자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인권’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들이니만큼, 자꾸만 뒤로 갔던 인권 현실에 대한 개탄을 쏟아냈다. 우선 황필규 변호사는 UN 자유권위원회의 강력한 권고도 무시로 일관하는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황필규 변호사는 “자유권위원회는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자유권과 관련된 인권을 다루는 UN 기구다. 우리나라는 (자유권위원회로부터) ‘모호하고 자의적이며 사실상 통제를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국보법에 대해 수없는 권고를 받았다. 특히 7조 찬양 고무죄는 반드시 폐지시켜야 한다고 명확하게 밝힌 바 있다”며 “정당 해산 역시 최후의 수단으로 가장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정부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일반적 원칙 아래 한 것이므로 (UN 권고는)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발의된 복면금지법을 두고도 “난민 신청하는 버마인들이 대사관 앞에서 시위할 때 ‘얼굴을 가리고 조용히 해야지, 난민 인정이 되려고 혈안이 돼서 얼굴을 드러내 놓고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었다. 그런데 국민들에게는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다”며 “정말 어이가 없다”고 꼬집었다.

박진 활동가는 11월 14일 열린 민중총궐기는 ‘국민들이 지르는 비명’이었다고 소회했다. 박진 활동가는 “콜트콜텍 단식 농성, 삼성 앞 반올림 농성 며칠 째냐. 하늘에서 농성하는 기아차, 생탁, 풀무원 노동자들도 수백일째 하고 있다. 국정교과서 문제도 있고, 세월호 참사는 600일이 다 되어 가는데 해결된 건 없고… 거의 절망의 벽 앞에서 국민들이 지르는 일종의 비명이라고 생각한다”며 “마땅히 그 손을 잡아주고 국민들을 어루만져줘야 하는데 국가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진 활동가는 “백남기 씨는 (물대포를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정부는 한중 FTA를 체결했다. 말이 되는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래군 소장 역시 “하지만 정부는 백남기 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미안하다는커녕 유감이라는 표현조차 없다. 아예 무시하고 가는 것이다. 그런 일(공권력 남용으로 인한 국민 피해)는 아예 없는 것처럼 하고, (시위 참가자들만) 폭도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필규 변호사는 “물대포를 쏘는 규정은 불분명한데 그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민중총궐기 당시에는) 법치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명확한 불법이다. 경찰은 시위가 확보되지 않아서 쏜 것이라 잘못이 없다고 하고, 선진국에서는 시위대에 대해 발포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도 시위대에게 발포한 역사가 있었다. 518과 419가 그랬다”며 “(정부가) 바로잡고 싶은 역사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결국 ‘희망’을 말했다. 박래군 소장은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고 벼랑 끝으로 자꾸 떨어져가고 있다. 정권은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채 계속 질주해 우리를 몰아댄다”면서도 “여기에 주눅들지 말고 우리가 같이 손잡고 힘을 합치면 역사를 또 바꿀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해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박진 활동가는 “<인권 콘서트> 제안 왔을 때 수락한 마음은 이랬다. 슬프고 힘들고 다 지쳤을 때도 ‘나 혼자 있는 건 아니다. 곁에 누군가 있다’는 생각이 힘이 된다. 우리가 혼자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다”며 “모두 서로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자”고 말했다.

희망을 다섯 글자로 표현해 보자는 제안에 박래군 소장은 “행동하는 나”, 박진 활동가는 “두려움이다”, 황필규 변호사는 “공포탈출 예(yeah)~”라고 답했다. 박래군 소장은 “각자가 행동하자. 그래서 잊지 않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말했고, 박진 활동가는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살아 있는 인간은 빼앗으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 싸운다”는 웹툰 <송곳>의 대사로 설명을 대신했다.

황필규 변호사는 “공포와 혐오를 내세워서 우리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자들은 대한민국의 일부가 될 수 없다.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진정한 정부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에 당당히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공포와 혐오를 극복해야 한다. 그런 용기와 양심을 계속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권 ‘콘서트’였던 만큼, 시와 음악, 연기 등이 어우러진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졌다. 킹스턴 루디스카는 흥겨운 음악으로 관객들을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게 했고, 노래마을은 ‘그 바람 앞에 서면’,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를 열창해 환호를 받았다. 심보선 시인과 송경동 시인은 각각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만 있다면’과 ‘솔직히 말해보자’는 시를 낭독했고, 류성국 배우는 ‘진리를 고독해도 날마다 더욱 담대하다’는 주제로 마임을 선보였다.

▲ 가수 이은미 씨가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미디어스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은 이은미였다. 이은미는 “보이는 곳에서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 가지 압박과 자극을 받고 있는 처지”라며 “그들의 기준으로 보면 저는 확실한 빨갱이다. 오늘 <인권 콘서트>에 함께 한 무대 때문에 어떤 외압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여러분들과 희망을 얘기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은미는 1, 2층 한 바퀴를 돌며 관객들과 호흡해 뜨거운 환호를 받았고 열광적인 앵콜 요청에 ‘애인 있어요’로 화답했다.

3시간 동안 이어졌던 <인권 콘서트>는 서로의 신념과 행동을 지지하는 응원 릴레이로 마침표를 찍었다. ‘탈핵’을 외치는 밀양 할매들, 농성 중인 기아차 노동자들, 송전탑 건설 반대를 위해 싸우는 청도 주민들, 생탁 노동자와 택시 노동자, 장애인 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는 광화문공동행동, 탈핵 주민투표를 승리로 이끈 영덕 주민들,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을 막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싸우는 무지개공동행동, 인천 구월동 철거반대투쟁 주민, 안전 사회 건설을 바라는 세월호 유가족, 강제 노점상 철거에 맞서는 상인들, 삼성에 산재피해 책임을 요구하는 반올림 황상기 씨, 장기 투쟁 중인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청소년들,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 발달장애인과 가족들, 강정마을 주민들, 국가보안법 피해자들, 노동개악 반대 투쟁자들,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들, 용산참사 피해자들,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 경찰의 물대포 직사로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 씨… 차례로 이어진 ‘격려’의 마지막은 우리 모두의 차지였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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