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음악웹진 <보다>의 김학선 편집장이 미디어스에 매주 <소리 나는 리뷰> 연재를 시작한다. 한 주는 최근 1달 내 발매된 국내외 새 음반 가운데 ‘놓치면 아쉬울’ 작품을 소개하는 단평을, 한 주는 ‘음악’을 소재로 한 칼럼 및 뮤지션 인터뷰 등을 선보인다.

그저 ‘가장 싼 해외여행’이나 할 생각이었다. 1995년은 지금처럼 일본인들이 한국을 찾는 게 그리 일반적이지 않은 시기였다. 맛있는 한국 음식이나 실컷 먹고 올 참으로 한국에 온 사토 유키에는 우연히 신중현과 산울림의 음악을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음악 애호가이자 일본에서 실제로 음악을 하고 있기도 했던 사토 유키에는 일본으로 돌아가 지인들에게 한국의 ‘이상한’ 음악에 대해 소개하고 아예 밴드를 결성한다. 신중현과 산울림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로크’ 음악을 커버하는 밴드였다. 팀 이름은 그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인 ‘곱창전골’로 정했다.

곱창전골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지금은 ‘양평이형’으로 유명한 하세가와 요헤이에게도 한국의 록 음악이 놀라운 건 마찬가지였다. 그가 처음 들은 한국의 록 음악 역시 신중현과 산울림의 음악이었다. 카세트테이프 A면은 신중현으로, B면은 산울림의 음악으로 채워져 있었으니 이만한 정수도 없었다.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울 음악 애호가였고 수집가들이었던 하세가와 요헤이와 사토 유키에게도 한국의 록 음악은 특별했다. 무엇보다 큰 관심이 없던 이웃나라에서 1970~1980년대 이런 록 음악이 자생적으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다. 둘은 더 자주 한국을 오가며 한국의 록 음악을 수집하고, 한국에서 공연을 갖기도 했다.

▲ 2011년 발매된 곱창전골 2집 '나와 함께 춤추자'
<안녕하시므니까?>. 한국에서의 활동 비중을 더 넓혀나가던 곱창전골은 1999년 첫 앨범을 통해 이렇게 인사하며 한국인들에게 자신들을 정식으로 소개했다. 신중현의 ‘미인’과 ‘아름다운 강산’, 산울림의 ‘그대는 이미 나’, 활주로의 ‘처음부터 사랑했네’ 같은 커버곡을 비롯해 자작곡을 담고 있는 첫 앨범은 한국 록 음악의 영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앨범이었다. 산울림 헌정 앨범인 <Tribute: 77 99 22>(1999)에 수록된 ‘문 좀 열어줘’와 한국의 옛 록·포크 음악을 커버한 컴필레이션 앨범 <Rewind>(1998)에서 들려준 신중현의 ‘안개를 헤치고’에서도 여느 한국 음악가들보다 더 빼어난 해석을 들려주었다. 말하자면 이들은 ‘국적’이라는 낱말이 무색하게 한국의 록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즐기며 오래 연구해온 음악가들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들이 그저 한국 록 음악의 커버 밴드로만 머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앨범 <나와 같이 춤추자>(2011)에서 이들은 1960년대의 사이키델릭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여기에 한국 록 음악의 기운을 입혔다. 수록곡 모두 사토 유키에의 자작곡으로 채워졌다. 그러면서도 곱창전골이란 이름이 갖고 있는 정체성과 특수성을 그대로 가져간 것이다. <그 날은 올 거야>(2013)는 가히 곱창전골 음악의 정점이라 할 만 했다. 이들이 계속해서 천착해온 사이키델릭 플라워는 완전히 만개했고, 또 반대편에는 한국과 일본을 넘어 동아시아인이라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정서를 담은 포크 송이 있었다.

곱창전골이 결성한지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20주년을 자축하며 발표한 베스트 앨범 <History Of The Kopchangjeongol>은 말 그대로 곱창전골의 역사를 담고 있다. 신중현과 산울림의 커버 밴드로 시작했던 이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자신들만의 것을 갖게 되었는지를 망라하고 있다. 일본이라는 사이키델릭 강국에서 자란 자신들의 성장환경에 한국의 록 음악을 자양분으로 삼아 독자적인 세계를 만든 것이다.

1집 <안녕하시므니까?>부터 작년에 나온 4집 <메뉴판>까지의 수록곡을 담았고, 또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미발표곡이나 구하기 어려웠던 EP <Blue Note City>의 수록곡을 추가했다. 사이키델릭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아름다운 음반 커버는 또 다른 볼거리다. <그 날은 올 거야>에 담긴 절정의 사이키델릭 에너지가 많이 빠져있어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곱창전골이라는 밴드가 가진 정체성을 보여주기엔 부족하지 않다. 이것은 일본인이 한국어로 부르는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다.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우리 음악’이다.

▲ 곱창전골의 20주년 기념 앨범 'History Of The Kopchangjeongol'

김학선 /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네이버 ‘온스테이지’와 EBS <스페이스 공감>의 기획위원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을 맡고 있다. 여러 매체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K-POP, 세계를 홀리다>라는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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