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 중에 말에 관련된 것들이 참 많다. 요즘은 속담을 즐겨 쓰지 않는 분위기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몇 개가 있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라든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등은 속담이 사라져 가는 요즘에도 자주 사용되는 것 같다. 응답하라 1988 8회의 주제는 ‘따뜻한 말 한 마디’였다.
작가의 생각인즉, 그때와 달리 지금의 시대는 따뜻한 말 한 마디의 힘이 부쩍 줄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응답 시리즈가 단순히 추억을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리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때와 다른 지금, 그래서 그때의 장점들을 고스란히 가져오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리워는 해보자는 간곡한 심정이 느껴진다.
또한 응팔의 주요 정서는 가족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에피소드는 성동일과 이일화의 부부싸움으로부터 발전했음을 눈치 채야 한다. 술김에 가짜 세척제를 사온 것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다가 그만 성동일의 눈을 밤탱이로 만드는 불상사가 생겼다. 부부는 말을 곱게 쓰지 않아 싸움이 잦다는 생각에 서로 존대를 하기로 합의를 봤다. 물론 어색하다. 그 어색함에 복선이 있다.
다시 노을이 여자 친구 이야기로 이제 넘어가야 한다. 노을의 여자친구 수경이는 소위 노는 아이다. 노을이가 대단히 소심한 것을 알기에 너무도 맞지 않는 커플인데, 노을이 본인도 그것을 알고 헤어지자고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 건지고 주워 담아야 했다. 노을이 입장에서는 수경이가 행실이 불량하긴 해도 일단 예쁘니까 동기가 충분하다. 그러나 수경이가 노을이를 좋아하는 것이 통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도 중요한 힌트고 복선이다.
요즘은 학교폭력이 하도 심각한 사회문제화가 되어 그러기 힘들 수 있겠지만 그때만 해도 애들 싸움은 부모에게 맡기는 편이었다. 파출소에 먼저 도착한 것은 덕선의 엄마 일화였다. 일화가 보기에도 수경은 한눈에 딱 불량소녀였고 의심 없이 수경에게 욕을 해댔다. 잠시 후 수경의 언니가 나타났다. 언니도 차림이 야시시한 게 동생과 다름없는 음전치 못한 처녀였다.
수경에게는 부모가 없었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언니가 부모 대신 동생을 돌보지만 수경은 졸지에 고아가 돼서는 방황하는 아이였다. 언니는 그런 동생이라도 보살피기 위해 미용학원에 다니느라 차림이 다소 야했던 것이다. 일화는 뒤늦게 그런 사정을 알고 미안한 마음도 들고, 딱한 심정도 든다. 그런데 곧이어 소식을 듣고 달려온 동일과 동네 이웃이자 쌍문고 학생주임까지 수경 자매에게 큰소리를 내고야 만다. 일화가 눈짓을 보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싸우고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이제나 그때나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수경은 웬일로 밥을 참 잘 먹는다. 심지어 밥 한 공기를 더 먹기까지 한다. 그리고 애들은 애들이었다. 덕선은 노란 수경의 머리를 보고 어떻게 한 거냐고 묻고, 또 대답도 한다. 그때 동일이 수건을 목에 걸치고 방에 들어오면서 그 말을 듣고 신체발부에 근거한 훈계를 동일다운 거칠 입담으로 해댄다.
마침내 수경의 등장과 동일 부부의 싸움 등이 말하고자 하는 ‘따뜻한 말 한 마디’의 정체가 드러났다.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사람을 변화시킬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가족끼리는 그 따뜻함은 오히려 따가운 말에 더 잘 담긴다. 그것을 설명하는 역설의 방법이 참 좋다. 그래서 응팔에 모두가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