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나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이쪽이냐 저쪽이냐는 선택의 기로에 섰으며, 돌고 돌아 ‘서울’이라는 얼굴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얻게 된 것은 여전히 세상은 지랄같다는 객관적 사실과 그럼에도 ‘나는 소중하다’는 주관적인 체험이다.

3개의 언덕, 꾸역꾸역 타고넘기

올해 2월 둘째가 태어났다. 이 꼬마는 태어날 때부터 약간의 기형을 타고 났고, 이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2주간의 단식과 수술을 거쳤다. 매일 인큐베이터를 통해 본 아이의 모습은 아내를 포함한 주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모습이었고, 아직도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다. 아이가 태어나는 경험은 나에게 50년의 인생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인생, 그러니까 내 아이들의 인생과 아이들의 아이들의 인생까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런 경험이 올해 초 밥 좀 먹자고 광화문에 섰던 아이들을 단순한 연대의 대상에서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켠에 밀어두었던 환경 관련 책들을 다시 펼쳐들고, <녹색평론>을 좀더 꼼꼼하게 보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아이의 병치레와 함께 민주노동당의 분당이라는 경험에 던져졌다. 말 그대로 누구도 분당을 바란 사람이 아니었다는 의미에서, 나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들은 ‘주어진’ 상황에 놓였다. 이 일에 대해 나는 아직까지도 상식의 문제, 재론하자면, 당직자로서 당원들의 정보를 외부에 유출한 것이 타당했느냐와 같은 기초적인 내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객관적으로는 정파의 문제로 나타났고, 해서 나를 지칭하는 ‘PD’라는 정파를 이해해야 했다. 책장의 밑받침으로 전락했던 80년대 후반의 책들이 먼지를 털고 나오기 시작했다. 2005년에 사회구성체 논쟁을 특집으로 다뤘던 <역사비평>을 다시금 읽었고, 최근 개정판이 나온 <사회구성체와 사회과학방법론>을 보았다(개정판에는 화려한 느낌표들과 웃점들, 그리고 ‘sic’이 사라져 밍밍해졌다, 그리고 그린비 출판사에서 내는 부커진 2호에서는 사회구성체론을 특집으로 다뤘다).

민주노동당의 분당은 결코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정말로 비정파적인 일에 대해 정파적 해석이 난무하는 상황에 황당함을 느꼈다. 그리고 수십번 했을 술자리가 불편해져서 도저히 술이 넘어가지 않게 될 때 결심했다. 난 더이상 민주노동당이라는 배를 함께 탈 수 없다고 말이다.

그리곤 다시 ‘서울’을 마주 보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떠난 자리에 새롭게 등장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보다 상식적이지도 않았지만 전보다는 묘하게 인정을 받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창의문화도시 마스터플랜은 ‘돈 되는 사업’으로 칭찬을 받고, 재생과는 거리가 먼 ‘한강르네상스’ 사업이 환경정책으로 각광을 받았다. 더구나 보도블럭 교체사업이 ‘디자인거리 조성사업’이라고 이름만 바꾸자 디자인을 행정에 도입한 창조적 경영의 모범이 되었다. 그 와중에 서울시의원들은 서울시의회 의장을 누가 할 것인지 짬짜미를 하다가 돈을 돌렸고, 당사자인 김귀환 서울시의장은 근래에 보기 드문 버티기를 선보이다 결국 물러났다. 깃발조차 없는 서울지역에서 깃발을 들고 서있는 것 자체가 풍찬노숙이다. 그러다 보니 생산적인 비판이 왠지 도닦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반년을 버텼다. 그렇게 꾸역꾸역 세 굽이를 넘어 2008년의 끝자락에 서있다.

경제위기과 민주주의, 그리고 브라이슨

▲ 거의 모든 것들의 역사(빌 브라이슨 저/이덕환 역, 까치, 2003)
재미있는 것은 올해 초 내가 이사를 택하면서 은행이자를 털었는데 이게 주효했다는 사실이다. 월 50만원에 가까운 이자를 부담하다가 ‘하반기에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지인의 말을 들었다. 그러곤 일본 저널리스트가 쓴 <서브프라임>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은행이자를 먼저 해결한 것은 지금도 아내와 이불속에서 서로를 칭찬하며 큭큭대는 몇 안되는 공적 중 하나다. 몇 년 전 흥미롭게 보았던 이강국의 <다보스, 포르투알레그레 그리고 서울>을 다시금 읽었고 브레너의 <붐 앤 버블>을 보았다. 분명 세계 경제는 교차로에 서있었고, 나에겐 ‘론리 플래닛’이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연초부터 국민들의 자습활동을 자극한 MB 각하는 천민들에게 ‘민주주의가 뭐냐’는 화두를 던지셨다. 작년부터 설왕설래 되었으나 그닥 재미있지는 않았던 ‘진보의 재구성’ 논쟁은 올해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민주주의’ 논쟁으로 확대 재편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정당이냐 운동이냐와 같은 이분법적 논쟁부터 ‘사회운동적 정당’이라는 묘한 절충주의까지 하나의 공백이 있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적법하게 등장한 MB를 두고 가장 시급한 것은 ‘어떤’ 민주주의냐의 문제가 아니라 ‘왜 민주주의냐’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은하영웅전설>은 왜 부패한 민주정부가 개혁군주보다 우월한지를 설득해주었다. 몇 해 전 ‘스페이스 오디세이’이라는 근경에 ‘공화제 대 군주제’라는 원경으로 읽혔던 이야기의 구조는 올해 역전되어 ‘공화제 대 군주제’를 근경으로 당겨왔다. 자유동맹의 양 웬리는 부패한 민주정치에 대한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민주정부는 다시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반면, 군주제는 부패한다는 필연에 놓여있다.’ 역사를 좋아하는 캐릭터로 그려지는 양 웬리의 말은, 적어도 내게 최장집이나 하승우 선생보다 ‘태도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금 확신을 주었다.

그럼에도 분명 올해의 발견이라고 꼽으라면 빌 브라이슨을 들 수밖에 없다. 그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먼저 본 사람으로서 <발찍한 유럽산책>과 <아프리카 다이어리>는 분명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노르웨이에 가서 하루종일 날씨가 나쁘다며 투덜대거나, 자원해서 가는 주제에 아프리카에서 병에 걸릴까봐 ‘주접’을 떠는 그는 너무 유쾌한 사람이다. 더구나 아프리카에 간 주제에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마사이 족을 보곤 묻는다. “저 사람들은 어디에서 사나요?”

지긋지긋한 세상에 ‘환상’을 무기로

▲ 월간 판타스틱 (페이퍼하우스)
2008년 한 해는 너무나 많은 일들과 고민들을 던져준 해였기 때문에, 2008년이 너에게 무엇이었냐는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없다. 더구나 ‘너무나 사회적인 2008년’에 대해 순도 50% 이상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끼어들 틈이나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한 순간에 차베스의 자리를 바꿔 차지한 오바마의 등장이나, 워싱턴 콘센서스의 몰락과 남북관계의 경색은 돌고 도는 세상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세상에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게 굳어 견고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지긋지긋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구름위로 초월하지 않고 계속 땅에 발을 딛고 있어도 된다는 안도감의 증거다. 결국 세상은 하는 만큼 만들어지는 셈이고, 결국 지금 세상의 모습은 나의 손길도 닿아 있다고 믿는다. 온다 리쿠의 ‘노스텔지어’보다 미야베 미유키의 블랙 유머에 더욱 손길이 갔던 배경과 비슷하다.

그래서 한 차례 휴간을 거쳐 다시 나오는 월간지 <판타스틱>의 기사회생과 마찬가지로 세상은 결국 개인의 환상성을 무기로 맞설 수밖에 없다. (참고로 <판타스틱>은 내년부터 계간지로 바뀐다. 봄호가 3월쯤 발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오바마의 당선에 대해 ‘당신의 환영illusions을 이용하라’고 말했던 지젝의 권유만큼이나 요즘 세상은 어느 때보다 ‘나’의 중심성을 요구한다. 세상은 돌고 돌고, 2008년은 특히 빨리 돌았지만, 그 와중에서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나’라는 말뚝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삶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는 것이었고, 서른 해를 훌쩍 넘게 살아보니 세상 풍경은 돌고 돌았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에 아득바득하지 않고 좀 더 느슨할 수 있는 연대를 고민하고 있다. 한 달 전부터 ‘공부 좀 하자’에서 시작하여 술모임(거의 단체들 후원주점에서 보게 된다)으로 변했다가, 이제는 탁구모임으로 변질될 것 같은 정체불명의 모임이 소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누군가 그랬다. <내가 즐겁지 않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맞다. 덧붙여 <회의하는 세대를 위한 사회주의>에겐 <혁명이 다가오고 있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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