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원작과는 국적이 다른 뮤지컬이다. 작가 마가릿 미첼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동명 소설의 원산지는 미국이지만 뮤지컬은 프랑스에서 제작된, 원산지와 공연의 국적이 각각 다른 뮤지컬이라는 표현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 원작보다 뮤지컬에서 중점적으로 묘사되는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건 흑인 노예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다. 뮤지컬의 주인공인 스칼렛과 그의 주변에 있는 두 남자, 애슐리와 레트 버틀러 이 세 명의 출신지는 미국 북부가 아닌 남부다.

미국 남부는 북부와는 달리 값싼 노동력이 뒷받침되어야 경제 기반이 구축되는 목화 플랜테이션 지역이다. 한데 미국 백인의 노동력으로는 저렴한 노동력 공급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노동력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이는 저렴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흑인 노예의 노동력이 뒷받침될 때에야 가능하다.

▲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쇼미디어그룹 제공
주인공 스칼렛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건 흑인 노예의 노동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인데, 원작 소설과 달리 프랑스 뮤지컬이 주목하는 시점은 흑인 노예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다.

원작 소설이 백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구축되는 데 비해 뮤지컬은 남부 백인이 호사스러운 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든 흑인 노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노예장(長)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흑인 노예의 비참함과 서글픈 정서를 무대에서 토로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선견자((先見者)의 비애를 묘사하기도 한다. 뮤지컬의 서두는 스칼렛이 호화로운 파티를 영위하는 화려함에만 방점을 맞추지 않고 있다. 북부와 전쟁을 앞둔 전운(戰雲)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레트 버틀러는 남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부 남자들과는 달리 남부의 맹점에 대해 토로하기 시작한다. 애슐리를 비롯한 여타 남부 백인 남자들이 북부와의 전쟁을 피상적으로 혹은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에 비해 레트 버틀러는 독설을 날린다.

▲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쇼미디어그룹 제공
남부가 면화 재배라는 농업을 기반으로 경제 기반이 구축됐지만 북부는 공업화가 이뤄졌기에, 만일 전쟁이 터진다면 공업화를 기반으로 한 북부가 남부보다 전쟁에 유리할 것이라 객관화하여 설파한다.

이런 레트 버틀러의 이야기를 들은 남부 백인 남자들은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레트 버틀러가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적인 북부가 남부에 비해 전쟁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아니꼬웠기 때문이다. 파티에 참석한 남부 백인 남성들에게 듣기 좋은 말이 아닌 객관적인 분석을 내렸기에, 레트 버틀러는 남부 백인 남성들에게 힐난(詰難)과 비난을 한 몸에 받아야만 했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닌 바른 말을 했다는 이유로 곤경을 겪는 레트 버틀러의 비애는 남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남부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레트 버틀러라는 선견자(先見者)의 비애로 해석이 가능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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