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껌> 9회, 리환 모 박선영(배종옥 분)은 리환이를 가져 집을 나온 이후 선뜻 찾아가지 못하고 미루어 두었던 아버지와의 묵은 원한을 알츠하이머로 더 이상 정신을 놓기 전에 풀고자 마음먹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그녀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 오랜 투병 생활을 하던 아버지는 그녀의 사과 한 마디를 기다려주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오빠의 원망을 채 듣지도 못한 채 전화기를 떨어뜨린 선영, 힘들게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며칠 만에 깨어난 선영은 그녀의 아들 리환을 그녀의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만다.
가족이란 이름이 지워주는 무게에 대하여
이런 선영의 아들에 대한 기억 상실은 두 가지를 보여준다. 우선 대학 병원의 호흡기내과 의사라는 번듯한 직위에도 불구하고, 지난 세월 미혼모로 아들 하나를 키워내기 위해 그녀가 견뎌냈던 세월의 무게를 역설적으로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도 쉽게 다시 자신의 육친을 찾지 못할 정도로, 그녀가 가졌던 부와 명예를 상실케 했던 미혼모로서의 삶. 제 아무리 번듯한 직업을 가졌다 해도 여전한, 이 사회에서 미혼모로 살아냈던 삶의 무게를 전해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서 그토록 '당연시'여기는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에게 하중되는 부담의 무게를 느끼게 해준다. 선영은 아들 리환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버렸으며, 그 부모가 선사해줄 부를 외면해야 했다. 즉,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한 삶은 그녀에게 추운 방과 떨어진 천장으로 기억되는 삶을 기억에 새긴다. 가족은 그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유지되고 계승되는 것이라고 <풍선껌>은 말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닐 수도
하지만 아픈 선영에게 그런 이슬의 가계가 동아줄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이 마음을 두고 있는 사고무친 행아(정려원 분)를 멀리한다. 선영의 선택을 통해 이 사회 속 '가족'의 존재 이유와 존재 기반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 엄마에게 반기를 들면서도 행아를 선택하려 했던 리환은 하지만 10회 마지막, 결국 행아에게 이별을 고한다. 알츠하이머 엄마라는 무게를 같이 짊어지며 '가족'이 되려 했지만, 리환은 깨닫는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거기에 이모를 돌보느라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는 행아를 걱정해 주는 것은 그녀의 방송국 식구들이요, 리환의 곁에서 그를 형처럼 지켜주는 것은 그와 한의원을 함께하는 권지훈(이승준 분)이다.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이 '유사 가족'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혈연관계로 인해 고통 받은 행아와 리환이 의지하고 그들을 지켜주는 사람들이다. 즉, 가족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정작 위로를 받는 것은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다.
뻔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 같았던 <풍선껌>은 회를 거듭하며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관계들을 통하여, 현재 우리가 믿고 살아가는 이 사회의 편견과 속념들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가족의 절대성에 대하여, 가족의 무게에 대하여, 그리고 과연 '가족'만이 대안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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