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은 무기력했다”
“불법, 폭력 시위로 변질됐다”
“시위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시위를 해야 한다”

지난 14일에 열린 민중총궐기에 관한 방송뉴스 리포터들의 설명이다. 현장 취재기자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라는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종편 TV조선과 채널A, JTBC와 지상파 3사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중총궐기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내걸고 진행됐지만 이에 주목한 뉴스는 없었다. 보수매체들은 오히려 이날 집회에 ‘통진당 이석기 석방’ 구호 등이 나왔다는 점을 빌미로 집회 자체에 대한 색깔론을 제기했다. 공영방송인 KBS는 교통 혼잡으로 인해 ‘논술시험’을 보지 못한 수험생의 이야기가 보도했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대학로 집회는 연기돼 11시 30분에는 진행되지도 않았는데 KBS는 마치 이 때문에 학생이 피해를 봤다고 보도했다는 얘기다. 제대로 취재를 한 리포트였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민중총궐기 관련 보도는 이후에도 계속 마찬가지였다. 종편은 시위의 ‘폭력성’만 부각했다. ‘위수령’이나 ‘테이저건’에 대한 발언까지 나왔다. 지상파 뉴스는 ‘폭력성’과 ‘과잉진압’을 기계적 균형을 맞춰 다루면서도 은근슬쩍 폭력성에 무게를 실었다. 정부여권 측 인사들은 복면착용금지법 도입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박근헤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가 시위대를 IS 테러리스트와 비교하며 테러방지법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경찰이 쏜 물대포로 인해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씨에 대한 이야기는 방송 뉴스에서 사라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 이하 언론노조)이 집회시위 보도 관련 긴급좌담회를 개최한 까닭이다.

24일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언론의 집회시위 보도 이대로 괜찮은가> 긴급좌담회에서 패널들은 종편 TV조선을 중심으로 한 집회 생중계의 새로운 보도행태에 대해 “게임하듯 보여준다”, “경찰에 과잉진압을 선동·부추기고 있다”며 우려했다.

“민중총궐기 관련 단연 가장 큰 문제는 TV조선…언론이 충돌 부추겨”

민중총궐기 관련 신문·방송 보도 모니터 결과를 발표한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은 모든 언론을 통틀어 TV조선의 보도가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TV조선은 민중총궐기 전날부터 ‘불법집회’가 벌어질 걸로 예단했다”며 “당일에도 생중계에 가까운 시사토크쇼를 할애해 ‘시위대 강경진압’을 지시하는 말들을 뱉어냈다. 여기엔 종북몰이도 당연히 포함됐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당일 TV조선 보도에는 “강경진압은 왜 안하냐”, “경찰은 물대포를 쏘는 것 이외에 하는 게 없다”, “시위대는 두들겨 패야 한다”는 등의 막말들이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 24일 오전, <언론의 집회시위 보도 이대로 괜찮은가> 긴급좌담회가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열렸다. ⓒ미디어스

김연경 사무처장은 “TV조선은 경찰의 불신검문 등에 대한 대처 요령 등이 참가자들에게 전달된 것에 대해 ‘어플을 이용한 치밀한 사전준비’라는 등 거창하게 포장해 조직화된 사람으로 부각시켰다”며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로 피신한 것에 대해서도 한 위원장 개인을 넘어 신도들과의 갈등을 야기하는 등의 악의적으로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김연경 사무처장의 설명에 의하면 TV조선은 경찰의 물대포 사용 규정 위반 등 과잉진압에 항의하며 경찰인권위원을 사퇴한 한상희 건국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이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의 문제에도 눈을 감았다.

민언련 모니터 결과에 따르면, 채널A의 시사토크프로그램들에서 연일 “시위목적이 체제 전복이기 때문에 엄단해야 한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시위대 속에는 북한공작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청와대 진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애초 선동된 이들이다”, “물대포는 살인 목적이 없지만 시위대가 들고 있는 쇠파이프는 살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몰아가는 발언들이 노출됐다. TV조선은 또한 “집회 나온 사람들은 엄단해야 한다”, “(폭력을 쓴 시위대는)대한민국에서 살 수 없다는 걸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이 같은 시위대를 엄호하는 정당은 불법정당이다”라는 등의 발언들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김언경 사무처장은 “87년 이한열 군 최루탄에 맞고 쓰러지는 장면에 대해 당시 언론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정부에 자성을 촉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그런데 물대포로 인해 쓰러진 농민 백남기 씨에 대한 걱정은 방송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민언련의 모니터 결과에 따르면 지상파 뉴스 또한 이런 비판을 면할 수준은 못 되었다.

언론노조 MBC본부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이호찬 간사는 “집회시위 언론보도가 해가 갈수록 하향평준화되고 있는 것 같다”며 “지상파 방송들은 집회시위 보도를 하지 않아서 문제이고, 종편은 과도하게 자신들의 시각에 맞춰 보도하는 행태가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늘 ‘평화집회’를 주문하지만 방송사의 관점에서 볼 때 실제 평화집회가 이뤄지면 보도 가치가 떨어진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호찬 간사는 “집회시위가 있을 때마다 보도하느냐를 상의할 때 데스크들은 ‘그림이 되느냐(충돌여부)’고 먼저 묻는다. 그런 집회는 지상파 보도에서 잘 나가지 않는다”며 “언론이 충돌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호찬 간사는 또한 “민중총궐기의 경우, 경찰추산만 하더라도 6~7만명이 참가했다”며 “그 중 폭력가담자는 일부일 것이다. 통진당 이석기 석방을 요구하는 것도 극히 일부의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이호찬 간사는 “그 같은 일부가 전체 집회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도하는 언론에 회의를 느낀다. 집회 참가자들의 다수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진짜 폭동이 발생한다면 언론은 차분한 대응을 주문할 것…현장에만 초점 맞춘 보도는 왜곡”

인권침해감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미류'는 “(TV조선 등 종편처럼)정말로 폭력이 놓여 발생하는 상황이라면 저런 식으로 게임 다루듯 보도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졌다. 그는 “프랑스에서 발생했던 것 같은 폭동이 일어났고 사람들이 다치는 상황에 눈 앞에 보인다면 그 위험을 알리고 모두가 차분하게 대응해야한다고 주문하는 게 맞지 않느냐”며 “이미 언론매체들은 시위현장을 게임을 보여주는 것처럼 돼버렸다”고 비판했다. 집회를 보는 언론의 시각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미류 활동가는 “시위대는 같은 시간과 장소에 있는 것일 뿐 조직된 부대가 아니다”라면서 “그에 비해 경찰은 국가가 법을 조직한 물리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찰 내 물대표 사용 지침 위반에 대해서도 “한겨레와 경향도 마찬가지로 초반에 ‘과잉사용’에 주목해 보도했는데, 2008년 물대포와 관련해 ‘직사 사용 금지’ 조항이 문제로 대두되자 해당 조항을 아예 삭제해버렸다”며 “현재의 지침에는 직사사용에 대한 명시가 사라졌다. 시민보호가 아니라 경찰의 진압 정당화를 위한 방식으로 개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언론매체들이 ‘집회 현장’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부터 왜곡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류 활동가는 “보도가 현장에만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이쪽 편이냐, 아니냐 그 이상을 나가지 못한다”며 “집회시위의 자유는 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밝히고 실제 정책을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 점에서 어떤 맥락에서 집회가 개최된 것인지 등을 언론에서 짚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동개혁이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시민들의 여론이 어떠한지,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표출해왔는지, 그런 것들을 정부가 얼마나 묵살했는지의 과정을 보여줘야 집회시위에 대한 명확한 보도가 가능하다는 비판이다.

“TV조선 생중계, 사냥터 보듯…그것이 바로 국가테러”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규찬 대표는 민중총궐기 보도에서 사용된 ‘무법천지’, ‘해방구’, ‘체제전복’ 등의 표현에 대해 “5공을 떠올리게 한다”고 발언했다. 그는 “상식적으로 시민들이 왜 거리로 나왔는지를 다뤄야 하고 스케치, (집회의) 본질 등을 따지는 3~4꼭지의 보도가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지상파와 JTBC는 단순한 리포팅 수준이고, 조중동과 종편은 프로파간다로 가버렸다”고 비판했다. 집회·시위에 대한 보도에 있어서 저널리즘에 출실한 언론보도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 민중총궐기 다음날인 지난 11월 15일 채널A 종합뉴스 보도

전규찬 대표는 TV조선 등 종편 보도에 대해 “A와 B가 플레이를 하고 사냥하는 것을 게임으로 본다면 집회 장소는 사냥터”라면서 “총을 대신할 물대포 살수 등 경찰들의 물리력과 차벽이 등장하고 그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CCTV와 카메라 등을 통해 지켜본다. 이것이야말로 소스라치게 공포스런 테러”라고 비판했다. 집회에서의 행동이 아니라 이것을 보도하는 것 자체가 테러라는 이야기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올바른 집회·시위 보도 해법으로 △좋은 언론보기 운동, △옐로우저널리즘에 대한 감시, △언론인들의 인권교육 및 인권보도 강화, △경찰 과잉진압에 대한 진상규정 언론인들의 참여, △SNS에 대한 정부규제에 대한 대응 등의 방안이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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