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극은 새삼 퓨전이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이 모두 고증에서 자유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육룡이 나르샤' 역시 당연히 그렇다. 작가들이 흔하디흔한 조선 개국의 이야기에 개성과 차별성 그리고 가능하다면 재미까지 추구하기 위해 여섯 명의 영웅에 집중 혹은 분산의 기교를 부린 것이다. 50부작 장편 드라마이면서도 비교적 짧은 아역 시기를 가져갔던 것도 보통 한두 명의 주인공 위주로 흐르는 기존 사극의 틀을 깨고 노마드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지만 캐스팅을 보면 '육룡이 나르샤'는 사실상 이룡이 중심이 될 것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이룡은 말 그대로 용 두 마리. 즉 정도전과 이방원을 의미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이방원 하나만을 상징할 수도 있다. 변방의 이성계 일가가 수도 개경에 들어와 자리잡고 난적 홍인방과 길태미를 처리할 수 있는 위기 후 기회에서는 후자의 이룡 이방원이 빛났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그것도 정도전의 말처럼 폭두의 본성을 제대로 살린 무모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몰래 개간한 땅을 홍인방 가노들에게 빼앗기고는 관아의 곳간을 불 태워버린 분이를 보고는 “낭만적이야”라고 감탄사를 내뱉었던, 참 특이한 품성을 가진 이방원의 폭두 본능은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낭만이고 풍운아적 기질이라 할 것이다.

홍인방의 계략과 도발에 해동갑족은 딜레마에 빠졌다. 고려 개국 이후 온갖 정치적 풍랑 속에서도 고아하게 품위를 지킬 수 있었던 특권 계층인 그들은 오랜 무사안일에 젖어 홍인방의 도발에 대처할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았다. 결국 정략결혼이라지만 엊그제 시집보낸 딸의 시집을 배반하기로 결론을 내게 된다. 이대로라면 이성계 일가는 역모를 뒤집어쓸 수밖에는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정도전과 정몽주가 해동갑족의 수장을 만나 설득해보려 했었지만 이들은 휴양을 핑계로 만나주지도 않았다. 그때 이방원이 나섰다. 아버지 이성계와 형들에게는 입을 다물었지만 스승 정도전에게는 그 속내를 들켰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도전도 그런 이방원을 만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뜻대로 하라며 승낙을 해주었다. 천재적인 전략가 정도전의 생각에도 이 상황은 순리로 해결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본인의 확신에 스승의 동의까지 얻었으니 이방원은 거칠 것이 없었다. 먼저 말만 혼인을 했을 뿐 첫날밤도 보내지 않은 어색한 사이인 부인을 찾아갔다. 이미 부인 민다경은 아버지로부터 해동갑족의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후였다. 민다경 부녀는 홍인방과 이성계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지만 여차하면 이성계를 버릴 것이라는 뉘앙스가 충분했다.

이방원은 먼저 민다경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믿지도 못한다는 민다경에게 자신의 가문의 비밀이라면서 ‘역성혁명’이라는 글자를 내보였다. 그 자체로 이방원은 물론 일가가 몰살당할 물증이 되는 엄청난 도박이었다. 그러나 민다경도 보통은 아니어서 그런 이방원의 도박에 정면으로 응수했다. 결국 해동갑족의 움직임을 이방원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그것부터가 이미 해동갑족의 방향은 달라질 것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간만 충분했다면 이방원이 나서지 않더라도 민다경에 의해 해동갑족은 홍인방의 뜻을 꺾었을 것이다. 그러나 홍인방에 해동갑족에게 제시한 최종시한은 다음날 아침까지였다. 이방원은 이 다급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또 한 번의 도박을 시도했다. 화약상자를 품고 해동갑족의 회의장에 들이닥친 것이다. 그리고는 거꾸로 홍인방과 길태미를 탄핵하는 내용의 상소에 서명을 하라는 협박을 했다. 그리고 심지가 거의 다 타기 직전에 서명을 끝내고 심지를 잘라낼 수 있었다.

▲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중요한 것은 이방원 본인도 그 상자가 진짜 화약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방원은 해동갑족을 찾기 전에 창고에 화약상자와 돌이 담긴 상자 둘을 놓고 분이에게 둘 중 아무 거나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결과적으로 분이는 이방원에게 돌상자를 건넸다. 분이는 이방원의 의도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다소 의아한 심부름에 두 상자의 내용을 들여다봤고 당연히 위험하지 않은 돌상자를 건넸던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긴장을 원했던 이방원은 침착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자신도 모른다는 것에 몰두해서 심지가 타들어가는 상황에 연기가 아닌 실제의 공포를 드러낼 수 있었고, 그것이 민다경의 아버지이자 장인인 해동갑족의 수장을 끝내 굴복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목숨까지 간단히 도박에 거는 이방원은 미치광이이거나 혹은 범인은 따라갈 수 없는 지독한 낭만적인 인사가 분명하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혁명에는 피만큼이나 낭만 또한 필요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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