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사장에 교학사 교과서 대표 집필자 이명희 공주대 교수가 내정됐다는 설이 파다하다. 유력인사로 손꼽혔던 이들이 전원 공모를 포기했고 유일하게 이명희 교수만이 지원한 상황에서 내정설은 매우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언론노동자 및 시민사회 활동가, 학부모단체들이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가 위치한 과천청사로 몰려온 까닭이다. EBS 사장 선임권은 법적으로 독립된 방통위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요구는 단 한 가지 “제발 EBS만큼은 내버려두라”는 것뿐이었다.

24일 오전 11시 30분 방통위 앞에서 <방통위의 EBS 이념편향, 정치편향 사장 선임 반대 EBS 구성원-시민단체 공동 결의대회>가 열렸다.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강화도 조약은 불평등 조약이 아니다”라는 발언 등으로 친일·극우 편향 인사로 분류되는 이명희 교수가 교육방송에 사장으로 오는 것만은 막아보자는 절박감이 담겨 있었다. 이와 관련해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는 총파업 찬반투표에 돌입한 상황이다.

송원재 선생님, “이명희와 유신철폐를 위해 싸웠는데…딴 사람이 돼 돌아왔다”

결의대회에는 이명희 교수와 유신시절 같은 학교를 다닌 동문 송원재 씨가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명희와는 상종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다시 입에 올리게 됐다”며 “이명희는 대학 2년 후배로 70년대 말 유신독재 시절 말기에 함께 대학을 다녔다”고 밝히는 걸로 발언을 시작했다. 송원재 씨는 전교조에서 활동하다 해직됐으며 현재는 전교조가 발행하는 '교육희망'의 편집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 24일 오전 11시 30분 방통위 앞에서 <방통위의 EBS 이념편향, 정치편향 사장 선임 반대 EBS 구성원-시민단체 공동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이명희 교수의 유신시절 같은 학교를 다닌 동문 송원재 선생님이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미디어스
송원재 씨는 “그때에는 누구나 그렇듯 이명희와 유신철폐를 위해 함께 손잡고 가두시위도 하고 그랬다”며 “이명희와도 민주화투쟁을 함께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 광주민주화운동이 터졌고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군홧발로 짓밟고 억울하게 죽어갈 때 이명희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겁이 났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명희 교수는 해외유학 후 몇 년 뒤 돌아왔는데 그 때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돌아온 이명희는 예전에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함께 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뉴라이트라고 불리우는 친일 역사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그런 정권의 하수인이 돼 돌아왔다. 이명희 교수를 개인적으로 만나 ‘자네가 갈 일이 아니네’, ‘당장 그만두게’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뭔가에 쓰인 듯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근현대사 ‘좌편향’ 파동이 벌어졌다. 그 선봉에 서서 좌빨 교과서라고 선 자가 이명희였다. 그것이 먹히지 않자 대안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해서 나온 게 교학사 교과서였다. 이명희는 교학사 대표집필진이다. 그것은 역사교과서라기보다는 휴지조각과 같은 처참한 교과서였다”_송원재 씨

송원재 씨는 “이명희가 EBS사장에 응모했다고 들었다”며 “KBS와 MBC가 재미없어진 후 EBS보며 ‘이런 것이 공영방송이구나’라는 맛으로 살았는데, 박근혜 정부는 이제 EBS마저 자신들의 나팔수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어, “EBS 사장에 이명희 같은 친일독재 옹호자를 임명하겠다는 것은 그런 사상을 청소년들에게 주입하겠다는 의미”라면서 “이미 끝난 줄 알았던 유신이 다시 도래하고 있다. 이명희 교수에게 마지막으로 간곡히 당부한다. EBS사장 공모 지원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유신의 잔재를 제대로 청소하지 못한 값을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학부모단체인 참교육학부모회 송환웅 대외협력국장은 “한국사회 교육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EBS에 이명희 교수가 사장으로 오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라면서 “모든 아이들로 하여금 주입식 암기 교육을 하고 있는 가운데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교육방송 책임자 역할을 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고 방통위의 현명한 선택을 당부했다.

EBS 홍정배 지부장, “역사를 바꾸려는 시도를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듯, 끝까지 싸울 것”

총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하고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 홍정배 EBS 지부장은 다시 한 번 결연한 투쟁의지를 밝혔다. 홍정배 지부장은 “이명희 교수는 두 번씩이나 사장공모에서 ‘부적격’으로 판단을 받은 사람”이라면서 “이미 내정됐다고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 EBS 사장은 정치적으로 결정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 24일 방통위 앞에서 <방통위의 EBS 이념편향, 정치편향 사장 선임 반대 EBS 구성원-시민단체 공동 결의대회>가 열렸다ⓒ미디어스
홍정배 지부장은 “방통위 최성준 위원장은 국회에서 (사장 선임에 대해) ‘EBS 설립목적에 맞는 인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며 “문제는 이 말을 믿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법률상 임명권자는 최성준 위원장이지만 실질 임명권자가 최성준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명희 교수는 친일파로 위안부문제와 강화도조약 등 왜곡된 역사인식으로 공주사대 동문 240여명이 ‘대학교수로서 학생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며 공주대를 떠나라고 한 사람”이라며 “그런 자가 교육방송 EBS 사장이 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홍정배 지부장은 “어떻게 EBS 사장에 이명희 교수를 앉힐 수 있느냐”며 최성준 방통위원장에 “국회에서 했던 약속 곡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만일, 스스로 한 약속을 저버리면 (방통위의 독립성을 훼손한)최성준 위원장을 고발할 것”이라면서 “역사를 바꾸려는 시도를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듯, 이길 수 없는 싸움일지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김환균 위원장은 “결의대회에는 비단 언론노동자들 뿐 아니라, 시민사회와 학부모들도 많이 참석해줬다”며 “이 자리에 모인 것은 단 하나, EBS만은 제발 부적격 인사를 내려보내지 말라는 요구 때문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청소년들의 교육을 망치지 않기 위해 좋은 사람을 골라달라고 하소연하기 위함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역사를 국정화하려는 시도를 국민들의 온갖 비판과 저항에도 밀어붙이고 있다. 여기에 이제 교육방송마저 국정화하려는 흐름이 감지된다”며 “교육마저 정치로 물들게 하려는 시도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고승우 이사장은 “EBS가 어떤 방송인가, 교육방송”이라면서 “교육은 헌법에서도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이명희 교수는 ‘언론계와 교육계 70% 좌파’라는 마녀주의적 발언을 하는 기울어진 인사다. 방통위가 그런 자를 EBS 사장으로 임명한다면 시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방통위는 24일(오늘) 오후 상임위원들 간 '티타임'을 통해 14명의 지원자 중 5명의 면접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언론노조 EBS지부는 현재 진행 중인 파업찬반투표의 결과에 따라 오는 27일 총파업 출정식을 예고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EBS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이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곳은 현재 EBS 사장 임명권을 가진 방통위 뿐이다.

▲ 24일 방통위 앞에서 <방통위의 EBS 이념편향, 정치편향 사장 선임 반대 EBS 구성원-시민단체 공동 결의대회>가 열렸다ⓒ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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