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니는 내가 참 편하고 좋제. 내는 오빠 한 개도 안 편하다.” ('응답하라 1994' 나정의 대사 중에서)

선우의 골목길 그녀는 역시나 보라였다. 골목길 아이들이 넷이었을 때 언제부턴가 선우는 둘에 설렜으리라. 보라누나를 만나러 가기 위해 덕선의 사전을 구걸하고 화이트와 샤프심을 빌려갔다. 그가 덕선을 친구 이상의 호의로 대했던 것 역시 ‘부인이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 절을 한다’는 심산이었는지도 모른다. 애꿎게도 그 얄궂은 호의 때문에 착각에서 비롯된 가련한 사랑의 희생양을 양산하게 되었지만.

"너 말고 니 언니."

▲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아, 돌이켜보니 덕선이 조금 귀엽다는 그의 대답 또한 로맨스는 모조리 덕선에 겹친 보라누나를 향한 것이요, 나머지 십분의 일의 호의는 미래의 처제를 향한 립서비스에 불과했던 것이다.

‘Winter is coming’ 공개된 선우의 감정선이 몰고 온 계절, 겨울이 왔다. 응답하라 월드에서 가장 불편하면서도 흥미로운 시기가 왔다. 등장인물 모두 각자의 조커를 공개했고, 시청자는 패를 뒤집은 자의 얼굴을 살핀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정환과 덕선은 각기 다른 이를 바라보며 불안해하고, 보라는 곧 선우를 불편해할 것이다. 한 수 앞을 보는 일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비밀병기, 게임의 제왕 택의 눈에 드디어 생기가 돌았다. 이제야 모두가 판에 올라와 섰으니까.

▲ tvN '응답하라 1994’
나정이는 끊임없이 쓰레기를 향해 외쳤다. '내는 오빠 니가 불편하다. 하나도 편하지가 않다.' '지구가 멸망을 해. 세상의 모든 만물이 죽고 오빠랑 나랑 누군가만 남았다. 결혼도 해야 되고 종족 번식도 해야 된다! 내가 여자야. 걔가 여자야?" 고백의 결과로 나정은 유사가족을 잃었고 내내 불편해야 했다. 최상의 안락과 불편을 맞바꾼 것이다. 응답하라 월드에서 불편은 곧 사랑과 성장으로 다가서는 매개체다.

“오빠 니는 내가 참 편하고 좋제. 내는 오빠 한 개도 안 편하다.”

▲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의 아이들은 가족의 결핍을 서로에게 갈급하지 않는다. 이 골목길에서 아이들은 형제와 친구가 분간되지 않는 매일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처 없이 철 드는 아이란 없다. 그들에게 가장 소중하고 편했던 관계, 형제 같은 우정에 생채기를 내면서, 최상의 안락함을 불편과 맞바꾸길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은 사랑하고 또 성장하리라.

“나는 네가 불편해.”

응답하라 월드에선 그야말로 최상의 고백. 택은 언제부터 덕선이 불편해졌고 정환은 언제쯤 불편을 고백할까. 정환의 유사 백허그를 받으면서도 불편은커녕 놀이기구 타듯 신나하기만 했던 덕선이 한 개도 안 편한 대상을 찾을 때, 그가 바로 여자가 된 덕선의 남자일 것이다.

▲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덧) 박보검에게 강제 개안해주는 미모 외에 별다른 바람이 없었는데 남자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안겨 토닥임을 받다가 자기 차례에서 멀리 서 옷을 툴툴 털고 있는 덕선이를 향해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응큼한 기대를 하는 수컷의 느낌을 동시에 살리는 연기를 해줘서 놀랐다. 그런데... 안을 때는 또 사무치게 순수한 벅참이 울려서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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